북한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입니다. 최원기 기자와 함께합니다. 오늘은 어떤 문제를 다뤄볼까요?
기자)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입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북침설’과 ‘전승절’이 사실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진행자) 한국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이 지났는데 북한 주민들은 아직도 ‘북침설’과 ‘북한이 승리했다’고 믿고 있나요?
기자)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73년이 흘렀으니까, 3세대가 지난 겁니다. 남북한 모두 전쟁을 겪은 세대는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90% 이상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들어선 겁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 대다수는 김정은 정권의 역사 왜곡과 선전선동으로 아직도 ‘북침설’과 ‘북한이 승리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진행자) 하나씩 짚어보죠. 북침설이란 남한과 미국이 먼저 북한을 침공해 한국전쟁이 시작됐다는 북한의 주장을 말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은 관영 매체, 학교 교육 그리고 대외 선전물을 통해 1950년 6월 25일 새벽, 옹진반도에 있던 한국군 제17연대가 38선을 넘어 황해도 해주와 금천 방향으로 침공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북한 인민군이 남한의 침공에 맞서 ‘정당방위 차원의 반격’을 가하고 이 과정에서 서울을 점령하고 남진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진행자) 사실 국제사회는 받아들이지 않는 주장인데, 북한이 그렇게 주장하는 어떤 근거는 뭔가요?
기자) 한국전쟁 초기 북한은 서울을 점령해 경무대와 육군본부 등에서 미처 파기하지 못한 외교 전문, 군사 보고서, 지도 등을 수집해 1951년 ‘조선 동란을 일으킨 자들의 정체를 밝히는 자료’ 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한 문서에 ‘북진 통일’, ‘북벌’ 등의 표현이 들어가 있고, 관련된 작전 지도가 포함된 것은 북침을 사전에 기획한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하지만, 진실이 아니라고요?
기자) 북한이 공개한 문서 속에는 정작 한국군이 먼저 38선을 넘으라는 ‘군사 작전 명령서’나 ‘개전 명령서’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구호였던 ‘북진 통일’이나 국방 차원의 대비 계획을 북한이 선전용으로 부풀린 것이었습니다.
진행자) 앞서 옹진반도에 있던 한국군이 북진했다는 주장은 뭔가요?
기자) 북한군이 쳐들어오자, 한국은 큰 혼란에 빠졌고, 국민과 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대변인 발표나 신문 보도로 “우리 군이 옹진 전선에서 반격을 펼쳐 해주를 점령했다”는 식의 과장·허위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그러자 북한이 이 당시 언론의 오보를 빌미 삼아 “남한이 먼저 해주를 쳤다”고 왜곡한 겁니다. 실제로는 6.25 당일 옹진반도의 한국군 17연대는 북한군 제14연대의 맹렬한 기습 공격을 받고 해상으로 철수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진행자) 미 국무부는 한국전쟁 발발에 대해 어떤 기록을 갖고 있습니까?
기자) 미 국무부 문서들은 한결같이 이 전쟁이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시 서울에 있었던 존 무초 주한 미국 대사는 6월 25일 새벽 국무부에 “북한군이 개성, 춘천, 강릉 등 전 전선에서 기습 공격을 개시했다. 이는 정교하게 기획된 전면 침공이다”라고 긴급 타전했습니다.
진행자) 유엔에도 관련 문서가 있겠죠?
기자) 유엔 문서도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한반도에는 전쟁 발발 전부터 38선 일대의 군사 동향을 감시하던 유엔 한국위원단(UN Commission on Korea)이 상주하고 있었는데요. 유엔 위원단은 6월 25일 전쟁이 터지자 ‘북한군이 38선 전 전선에 걸쳐 기습적인 전면 공격을 시작했다’는 보고서를 유엔 본부에 발송했습니다. 또 유엔 안보리도 6월 25일 채택한 결의안 82호를 통해 북한군의 한국 공격을 ‘평화의 파괴이자 무력 공격’으로 규정하고, 즉각적인 적대 행위 중단과 38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진행자) 한국전쟁에 관한 결정적인 자료는 러시아가 제공한 문서가 아닐까 싶은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이 종식되자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1994년 한국 정부에 300여 종, 1천200여 쪽의 외교 문서와 기밀 자료를 넘겨주었는데요. 이 문서를 보면 북한 김일성 주석이 전쟁 이전에 옛 소련에 48번이나 남침 승인을 요청해 스탈린이 결국 이를 승인하고 중국의 마오쩌둥도 남침에 동의한 사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또 소련의 대대적인 무기 지원과 소련 군사 고문관들이 세운 작전 계획에 따라 북한군이 기습 남침한 내용이 자세히 나옵니다.
진행자) 북한은 또 한국전쟁을 승리한 전쟁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떤 근거로 그러는 건가요?
기자) 한국전쟁 정전협정에 서명한 사람은 마크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입니다. 클라크 전 총사령관이 1954년 펴낸 회고록 서문을 보면 ‘나는 승리 없이 정전협정에 서명한 미국 육군 역사상 첫 번째 사령관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러자 북한이 “미군 통수권자(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항복 문서나 다름없는 정전협정서에 직접 서명했다. 미국이 역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휴전협정에 서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라는 주장을 한 겁니다.
진행자) 북한 내부의 정치 상황과도 관련이 있었나요?
기자) 맞습니다. 김일성의 목표는 ‘남한의 적화통일’이었으나 실패했습니다. 만약 실패를 인정하면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에게 엄청난 정치적·역사적 책임이 돌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김일성의 무능과 전쟁 실패 책임을 감추기 위해 한국전쟁을 ‘미제를 물리친 위대한 승리’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 밖에도 전쟁 분위기와 대미 적개심을 고취하고 체제 결속을 위해 7월 27일을 ‘전승절’로 둔갑시켜 기념하고 있는 겁니다.
진행자) 지금까지 북한이 주장하는 ‘북침설’과 ‘전승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