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전문가들 "북한 억류 한국인, 무관심 속 방치...정부가 적극 나서야"

북한에 장기간 억류된 한국인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씨. 사진 출처: AP(왼쪽), Reuters(가운데, 오른쪽)

미-일 정상이 최근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협력을 거듭 다짐한 가운데, 워싱턴에서는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들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미국 정부까지 나서 석방 노력을 기울이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와 달리 억류 한국인들은 자국 정부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2017년 6월 30일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억류 미국인 석방’을 북한과의 대화 재개로 이어질 수 있는 “올바른 여건”의 예로 들었습니다.

[녹취: 문재인 대통령] “예를 들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도발을 중단할 것이라고 약속한다면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북한이 지금도 억류하고 있는 미국 국민 3명을 석방한다면 그것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문제 때문에 긴장이 한껏 고조된 상황에서 대화를 촉진할 일반적인 환경을 제시한 것이지만, 당시 워싱턴 일각에서는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 6명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던 문 대통령이 미국인 석방 필요성을 우선적으로 거론한 데 대해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후 미국의 인터넷 청원전문 사이트인 ‘체인지닷오그(change.org)’와 한국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을 통해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인 6명의 송환을 촉구하는 청원 운동이 벌어졌지만 한국 외교부는 주무 부처가 통일부라는 입장을, 통일부는 “조속한 송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을 내놓고 있습니다.

워싱턴의 인권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자국민 보호 정책은 다른 선진국의 접근법에 크게 못 미친다며, 정부의 무관심 속에 북한에 수년째 억류 중인 한국인들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과 일본 정부의 경우 북한 문제의 최우선 순위를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 석방에 둔다는 점을 한국 정부와의 큰 차이점으로 꼽았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20일 VOA에 “미국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인 3명의 석방과 혼수상태에 빠진 미국인(오토 웜비어)의 귀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예를 들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The United States prior to the Singapore summit made clear that there would be no summit unless the 3 Americans held were released and the American in a coma brought back home.”

실제로 북한은 첫 미-북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둔 2018년 5월 10일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김상덕, 김학송 씨를 전격 석방했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새벽 2시에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워싱턴 DC 인근 메릴랜드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찾아 직접 맞이했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게 할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며 “백두산 정상에 올라 (김정은과) 손을 잡고 담소를 나누면서 어떻게 자국민 억류 문제를 잊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녹취: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President Moon certainly had the opportunity to do that. If you're going to stand together on top of Mt. Baekdu and hold hands and have a chat, what about the citizens of your country? How can you forget above them? I would say that this is unforgivable.

현재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공식 확인된 한국 국민은 선교사 3명과 탈북민 3명 등입니다.

2013년 10월 8일 밀입북 혐의로 체포된 김정욱 선교사는 무려 7년 6개월째 억류 중입니다. 북한은 김 선교사에게 국가정보원과 내통했다며 국가전복음모죄와 간첩죄 등을 적용해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했습니다.

또 2014년 10월 체포된 김국기 선교사와 같은 해 12월 붙잡힌 최춘길 선교사도 무기노동교화형 선고를 받고 억류돼 있습니다.

2016년 7월 평양에서의 기자회견으로 억류 사실이 공개된 고현철 씨 등 나머지 3명은 탈북민입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북한에 의해 억류된 것으로 확인된 자국민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은 선진국이자 경제 강국이고 민주주의 국가인데, 어떤 선진국이라도 이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삼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녹취: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What is really difficult to understand is wh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s not speaking up, why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s taking no action on known South Korean citizens who are being held by North Korea. South Korea is a very developed country, a true economic powerhouse, a democracy and any developed nation would place this at the very top of the agenda.”

이어 “미국과 일본에 자국민 납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인데, 한국 정부는 유독 여기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In the case of the United States, US citizens abducted by state or non-state actors is a very important issue. In the case of Japan, the abduction of Japanese nationals by North Korea is a very important issue. It was a very important issue to Prime Minister Abe and his cabinet, continues to be a very important issue to Prime Minister Suga and his cabine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just been really really shy about this issue.”

코헨 전 부차관보도 “한국 관리가 북한 관리와 마주 앉아 자국민의 처우와 귀환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며 “한국은 자국민 6명의 석방을 북한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요구에 대한 조건으로 제시하거나 그들의 석방을 담보하기 위한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It should be unthinkable for South Korean officials to sit down with north korean officials without discussing the treatment and return of their citizens. It should condition the release of the 6 on the political or economic requests NK puts forward or provide incentives to secure their release.”

이어 “미국과 일본 정부는 모두 (억류된) 자국민의 처우를 쟁점으로 삼고 그들의 가족과 정기적으로 접촉했다”며 “한국도 그에 못지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Japanese government have made a Cause Celebre of their citizens’ treatment and have been in regular touch with their families. South Korea should do no less.”

전문가들은 특히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미국 정부의 완전히 다른 태도에 주목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를 비롯한 미국의 역대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공언하고 실제로 북한과의 대화에서도 이들의 석방을 촉구해 왔습니다.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 동석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푸른 리본 모양 배지를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국무부는 그동안 억류 한국인 문제에 대해선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며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왔습니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21일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억류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가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묻는 VOA의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바이든-해리슨 행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의하며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며 “인권을 외교 정책의 중심에 두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 “The Biden-Harris administration is conducting a North Korea policy review in close consultation with our allies, including the ROK. We are committed to placing human rights at the center of our foreign policy.”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이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 국민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할 의무는 없다”면서 “미국이 일본인 납치자 석방을 강력히 지지했던 것은 일본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Government does not have an obligation or responsibility or even standing to raise questions regarding the citizens of other countries. The United States has been very supportive, for example, of the Japanese abductees. We have supported the Japanese, we've indicated how we support them, and occasionally, at the request of the Japanese, we have raised an issue with North Korea when we've had an opportunity to do that.”

하지만 “자국민 억류 사건을 남북한 문제로 여기는 한국은 이에 문제를 제기해 다른 나라가 관여하게 만드는 것을 꺼려왔다”면서 “당사국이 생각하는 최선의 석방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로, 미국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할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I think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as been more reluctant to raise the issue and get other countries involved because this is an inter Korean issue and I think that may be why they have done that. But it's primarily a question of how the government whose citizens are being held thinks they can best achieve the result of getting these people released, and we work with them wherever they want us to do.”

하지만 인권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을 직접 상대하며 자국민 석방 노력을 기울일 수 없다면 동맹국에라도 도움을 요청하라고 촉구합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한국은 외교에서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 6명을 우선순위로 삼지 않았다”며 “한국이 억류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 없거나 북한으로부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면, 다른 나라라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South Korea, however, has failed to make the 6 a priority in its foreign policy. If South Korea is unable to speak publicly about the 6 or has been warned by the North Koreans against it, it should make sure that others do speak out.”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미국이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두고 일본 정부의 석방 노력을 적극 지지하는 반면, 한국인 억류 사건은 거의 거론하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동맹국이 어떤 신호를 보내는가에 달렸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자국민 납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신호를 계속 전달하면서 미국 민주·공화 양당 행정부 모두의 관심을 끌어낸 만큼, 한국도 자국민 억류에 대해 그런 신호를 보낼 경우 미국 정부는 이 문제를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녹취: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Japan has signaled that this issue of Japanese abductees is very important to the government and people of Japan, and thus across multiple administrations, both Democratic and Republican, we have paid attention to this issue. I have absolutely no doubt that if a signal came from South Korea that this is an important issue to the government and people of South Korea, the US government, the State Department other agencies would likely pay a very close and keen attention...We cannot volunteer to jump to the rescue of South Korean citizens, unless our South Korean allies signal that this is needed.”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한국이 그런 신호를 보내지 않는 한 미국이 한국민 석방 노력에 뛰어들 순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동안의 행적을 고려할 때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에 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 “Unfortunately, given the track record, I'm not very hopeful that President Moon will actually raise this issue with the North Koreans.”

전직 인권 관리들은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북한이 과거 억류했던 미국과 호주 국민 등은 모두 석방했으면서도 유독 한국인들에 대해선 영사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고 가혹한 조치를 일삼고 있다며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습니다.

킹 전 특사는 “억류 한국인 문제는 상대방에 대한 자신들의 어떤 행동도 개의치 않는 북한 정권의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This is again an example of the North Korean regime being totally insensitive to what they're doing to other people. It's consistent with the record that North Korea has on violating human rights, they were criticized very harshly for by the United Nations. It's outrageous.”

코헨 전 부차관보는 “북한은 정당한 절차 없이 한국인 6명을 체포해 고된 노동형을 선고하고 가족이나 영사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1963년 채택된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을 위반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By arresting and sentencing the 6 without due process, subjecting them to backbreaking labor, denying them visits from family members or consular officials, North Korea is violating the 1963 Vienna convention on consular relations which obliges it to provide protection to foreigners in custody.”

앞서 유엔 산하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은 지난해 2월 VOA에 북한이 한국인 억류 문제 해결 요구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며 “북한이 동일한 답변만 내놓는 식으로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데 대해 실무그룹은 거듭 우려를 제기해왔다”고 밝혔습니다.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는 이달 초 공개한 보고서에서 최소 6명의 한국인이 북한에 억류돼 무기노동교화형 등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지만 북한 정권은 이들에게 변호사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등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해주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