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앙정보국 CIA와 국무부에서 30년 넘게 북한 정보를 분석했던 로버트 칼린 스탠포드대 객원연구원은 미 정보당국의 경직된 분석이 대북정책 실패로 이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CIA 출신인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대북 협상에서 진전을 내지 못하는 데 따른 불만을 정보당국의 분석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1970년대부터 미국 정부에서 북한 정보를 다뤄온 전문가가 미 정보당국의 북한 분석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로버트 칼린 미 스탠포드대 객원연구원.
로버트 칼린 스탠포드대 객원연구원은 최근 북한전문 매체 ‘38노스’에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의 신간 ‘비커밍 김정은: 북한의 수수께끼 같은 젊은 독재자에 대한 한 전직 CIA 요원의 통찰’에 대한 서평을 기고했습니다.
칼린 연구원은 제목에서 나타났듯이 이 책이 상당 부분 CIA의 북한 분석을 다루고 있다며, 책 내용을 넘어 CIA의 북한 분석 전반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그는 “이 책이 결국 보여준 것은 북한과의 접촉에 있어 미국이 왜 수 십 년 동안 늪에 빠져있었는지 설명이 되는 ‘불편한 예시’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2012년에서 2016년 북한의 비약적인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발전이 일정 부분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실패와 미 정보당국의 북한 분석 실패 때문이라고 독자들이 생각하지 않을까?”라고 되물으며, 결국 정보 분석 실패가 대북정책 실패로 이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칼린 연구원은 “특히 ‘접근 불가 국가’(denied areas)를 다루는 CIA 분석관들은 기관 외부에서 실질적인 현장 경험을 거의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무부 고위 당국자들이 CIA 분석을 참고하지만, 실상은 CIA 분석관들 보다 외교관들이 더 사람과 사건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칼린 연구원은 또 CIA가 답을 찾기 힘든 문제들에 대해 “어쩌면-아마도-또한 무엇일 수도” 접근법을 택한다면서, 이 때 제시되는 가능성들이 상충된다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정 박 연구원의 책을 통해 드러나는 점은 CIA가 수 십 년 간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핵심 사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은 절대로 미국을 진실하게(sincere) 대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도발과 매력공세를 반복하는 각본을 따른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칼린 연구원은 결론적으로 이 책이 “김정은의 모든 제안은 속셈이 있으며, 그를 상대하는 것은 함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런 논지로는 북한에 대해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거나, 지난 20년 간 실패한 정책인 ‘최대 압박’을 구사하는 결과로만 이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이 책에 나타난 ‘북한이 과거 약속을 계속 어겨왔고, 북한의 발언은 아무 의미 없고, 따라서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다’며 외교를 등한시 하는 태도는 북한에 대한 CIA의 관점을 압축해서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정 박 미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
한편 정 박 연구원은 최근 트위터에 “미국이 북한과 진전을 내지 못한 책임이 CIA 조직에 있다는 암시를 하는 언급들이 있다”며 CIA의 북한 분석에 대한 의견을 밝혔습니다.
정 박 연구원은 “중요한 정책 결정으로 이어지는 정신없이 급한(hair-on-fire) 임무를 받으면 다른 기관을 호출하고, 국방정보국(DIA), 국가안보국(NSA), 지리정보국(NGA), 에너지부(DOE),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연방수사국(FBI), 재무부, 국가정보국(DNI) 동료들이 보안가방을 갖고 보안장치가 된 회의실에 모인다”며, 이렇게 직접 만나기 어려우면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이견을 조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며 긴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특정 분야 전문가, 30년 이상 경력이 있는 선임분석관, 정보 수집자와 상의하고 모의분석을 체계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차분히 시간을 갖고 분석할 때라도, 최종 분석에는 주의사항이 있고, 미묘한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일어날 수 있는 각본을 제시한다며, 정보분석관들이 확신을 갖고 특정한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고 정 박 연구원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분석관의 역할은 “로또 번호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일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놀라는 일을 줄이며,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박 연구원은 특히 “우리는 인적 정보인 휴민트를 포함해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을 내렸기 때문에, 북한 외교관들이 미국 협상가들에게 주장하는 말들을 확증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대북 협상에서 진전을 내지 못하는데 따른 불만을 CIA 등 정보당국의 분석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 박 연구원은 미 국가정보국장실 동아시아 담당 부정보관과 CIA 북한 분석관 등으로 일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