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아메리카 250] 미국인의 희망과 자부심 ‘골든게이트 브리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린 카운티의 마린 헤드랜즈 전망대에서 일출 무렵 골든 게이트 브리지 사이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모습.

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김미옥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오늘은 대공황 시기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샌프란시스코 하면 떠올리게 되는 유명 랜드마크를 소개해 드립니다. 처음에는 '절대 못 짓는다,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고, 완성된 뒤에는 ‘미국 기술력의 상징’이 된 골든게이트 브리지, 즉 금문교로 가보겠습니다.

진행자: 금문교는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사진 속에 꼭 등장하는 다리죠. 안개 속에 붉게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그런데, 이름이 골든게이트, ‘황금빛 문’인데, 금문교는 붉은색 계열이죠?

기자: 골든게이트는 다리가 생기기 전 이곳 해협의 이름이었습니다. 1846년에 탐험가 존 프레몬트가 샌프란시스코만과 태평양이 만나는 좁은 바닷길을 '황금의 문', ‘골든게이트 해협(Golden Gate Strait)’이라고 불렀고, 그 해협 위에 다리가 세워진 거죠.

진행자: 직접 걸으면, 다리 한쪽 끝에서 끝까지 걸으면 3~40분 정도 걸리고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데요, 처음에는 이곳에 다리를 만들 수 없다고 했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처음 건설하자는 말이 나온 게 1800년대 후반인데, 수십 년 동안 '불가능하다'는 말이 따라다녔습니다. 이 해협은 조류가 빠르고 안개가 자욱하고, 바람도 강합니다. 게다가 수심도 깊고 지진대 위에 있어서 1920년대까지 많은 전문가가 이곳에 다리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셉 스트라우스(Joseph Strauss)라는 교량 엔지니어가, 1921년에 샌프란시스코 시에 다리를 짓겠다며 제안서를 냈습니다. 처음엔 아무도 안 믿었고, 관련 논쟁이 10년 넘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1930년, 주민 투표에서 3분의 2가 '우리 집, 우리 농장, 우리 사업장을 담보로 잡아도 좋다'며 찬성했습니다. 그런 다음 3천500만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고, 1933년 1월 5일, 대공황이 한창이던 때 착공했습니다.

진행자: 대공황으로 미국이 가장 어려울 때, 이 다리가 지어졌군요.

기자: 공사 기간이 대공황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골든게이트 브리지 건설로 일자리 수천 개가 만들어졌습니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공사 현장으로 몰려왔고, 매일 수백 명의 노동자가 투입됐습니다.

진행자: 대규모 공사라 쉽지 않았겠어요?

기자: 그렇습니다. 해저 20미터 아래 암반에 기초 공사를 해야 했고, 짙은 안개 때문에 화물선이 공사용 가교를 들이받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약 4년 만에 완공해서, 1937년 5월 27일 개통했습니다. 개통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습니다. 다리 총 길이가 약 2.7킬로미터, 주탑 높이는 약 227미터로, 60층 넘는 빌딩이 물 위에 솟아 있는 거죠. 케이블이 두 개인데, 각 케이블 하나에 강철 와이어가 2만7천 개가 넘게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리는 고정된 게 아닙니다. 강풍이 불면 좌우로 최대 8.4미터까지 흔들리도록 설계되어 있고, 차량 하중에 따라 위아래로도 움직입니다.

진행자: 이렇게 웅장한 다리가 완공됐는데, 이름이 골든 게이트니까 이왕이면 황금색으로 칠해도 되지 않았을까요?

기자: 다리의 공식 색상 이름은 ‘인터내셔널 오렌지’입니다. 붉은색과 주황색 중간 정도 되는 색인데요. 원래는 철이 녹슬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먼저 칠하는 특수 페인트 색이었습니다. 처음에 해군은 선박이 잘 볼 수 있게 검은색에 노란 줄무늬를 요구했고, 육군 항공대는 항공 안전을 위해 빨간색 흰 줄무늬를 제안했는데요, 그런데 설계자들은 이 색이 바다와 언덕,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안개와 너무 잘 어울렸고, 안개 속에서도 눈에 잘 띈다고 주장하며 정식 색상으로 채택했습니다.

진행자: 골든 게이트는 1년 365일, 다리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페인트를 칠한다는 말이 있던데요?

기자: 그런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부식이 심한 부분을 집중 보수하는 겁니다. 짠 바닷바람과 안개가 워낙 심하니까 사실상 끝이 없는 작업이어서 그런 말이 나왔죠.

진행자: 그 시대에 대형 공사를 하면서 규모에 비해 사고가 적었는데, 그 이유가 안전장치 덕분이라고요?

기자: 네. 1930년대 당시에는 대형 건설 현장, 특히 높은 곳에서 일하다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잦았습니다. 금문교 건설 총책임자였던 조셉 스트라우스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안전 대책을 도입했습니다. 공사 구간 아래에 거대한 안전망(Safety Net)을 설치해서, 작업하다가 추락하면 바다로 떨어지기 전에 받아주는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이 안전망 덕분에 실수로 추락한 작업자 19명이 목숨을 건졌는데, 스스로를 '지옥까지 반쯤 간 클럽', 영어로 ‘Halfway to Hell Club’이라며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반쯤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이란 거죠. 또, 지금은 건설 현장에서 안전모 쓰는 게 당연하지만, 1930년대에는 안전모 착용이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스트라우스는, 안전모와 눈 보호 장비 착용을 강조했고, 안전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진행자: 세계 최대 현수교가 개통식 때 실감이 안 났을 것 같은데, 더구나 대공황 때라 더 감격이 컸겠어요.

기자: 1937년 5월 27일, 개통 첫날은 ‘보행자의 날’로 선포해서 차는 못 다니게 하고 사람들에게만 개방했습니다. 첫날 약 20만 명이 골든게이트 위를 걸었습니다. 개통 행사장 곳곳에서는 밴드 공연과 군악대 연주가 있었고, 새벽부터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정장 입고 걷는 사람, 유모차 끌고 나온 가족, 춤추는 사람까지 있었고, 지금 관광객들처럼 다리 한가운데서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요, 신문들은 이 모습을 ‘인류가 바다 위를 산책하는 날’로 표현했습니다. 하루 뒤, 자동차 통행이 시작됐을 때,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워싱턴 D.C.에서 전신 버튼을 눌러 개통을 축하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아직 대공황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금문교를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미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진행자: 1930년대 미국인들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안겼던 골든게이트 브리지에 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