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을 전해 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오늘은 이조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미국을 바꾼 혁신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20세기 미국의 생활과 정치, 문화를 통째로 바꿔놓은 물건, 텔레비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전구 하면 에디슨, 전화 하면 벨을 떠올리지만, 텔레비전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미국인들도 대부분 모릅니다. 오늘 그 사람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실험실이 아니라 아이다호의 감자밭이었습니다.
진행자: 감자밭이라고요?
기자: 네, 1921년 여름이었습니다. 아이다호주 리그비 인근 농장에서 열네 살 소년이 말을 끌고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쟁기를 끌고 한쪽 끝까지 갔다가 돌아서서, 조금 옆으로 옮겨 다시 반대편으로 가고, 그렇게 밭 전체가 나란한 줄로 채워지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이랑을 내려다보던 소년의 머릿속에 생각이 하나 스쳤습니다. 그림도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진행자: 화면을 줄로 나눈다는 발상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하나의 영상을 가로줄로 잘게 쪼개서 한 줄씩 차례로 훑어 보내고, 받는 쪽에서 다시 그 줄들을 쌓아 그림으로 되돌리는 방식입니다. 사람의 눈은 그것이 충분히 빠르면 하나의 움직이는 그림으로 봅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필로 테일러 판즈워스였습니다. 그리고 판즈워스가 당시 생각한 이 방식은 이후 수십 년 동안 텔레비전이 실제로 작동한 원리 그대로입니다.
진행자: 열네 살이면 배운 것도 많지 않았을 텐데요.
기자: 네, 판즈워스는 유타의 통나무집에서 태어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농장에서 자랐습니다. 여섯 살 때 기관차를 보고 발명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하고요. 농장 헛간에서 과학 잡지 더미를 발견해 읽으면서 당시 세계 곳곳에서 영상을 전송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만 그때까지의 방식은 구멍 뚫린 원판이나 회전 거울 같은 기계 장치로 영상을 쪼개는 것이었습니다. 판즈워스의 발상이 달랐던 점은 움직이는 부품을 다 없애고 전자로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진행자: 그 생각을 누구에게 이야기했습니까?
기자: 이 대목이 나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듬해인 1922년, 고등학교 화학 시간이었습니다. 판즈워스는 저스틴 톨먼이라는 선생님을 붙잡고 자기 구상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칠판에 장치의 구조를 그려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그 그림을 기억해 뒀습니다.
진행자: 실제로 만드는 데는 얼마나 걸렸습니까?
기자: 6년입니다. 캘리포니아로 옮겨가 샌프란시스코에 실험실을 차렸고, 아내 펨과 처남 클리프 가드너가 함께 일했습니다. 처남은 유리를 다루는 기술을 따로 배워 진공관을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하루 열두 시간의 작업 끝에 1927년 9월 7일,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옆방 수신기 화면에 무언가가 나타났는데요. 그건 선 하나였습니다. 곧은 검은 선 하나. 그것이 세계 최초의 전자식 텔레비전 영상이었는데요. 당시 판즈워스는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진행자: 지난 7일이 99주년이었군요. 투자자들도 있었겠죠? 반응이 어땠습니까?
기자: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돈을 댄 사람들이 언제쯤 수익을 낼 수 있느냐고 묻자, 판즈워스는 다음 실험에서 달러 표시를 화면에 띄워 보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왜 이 사람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기자: 거대 기업과의 싸움에서 이기고도 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국 방송의 절대 강자는 RCA였습니다. 라디오에 관한 거의 모든 특허를 쥐고 있어서, 다른 회사가 라디오를 만들려면 RCA에 돈을 내야 했습니다. RCA는 텔레비전도 자기 것이 돼야 한다고 봤고, 판즈워스의 특허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진행자: 개인이 그런 회사와 어떻게 싸웠습니까?
기자: 여기서 그 칠판 그림이 등장합니다. 1930년대 특허 분쟁에서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 저스틴 톨먼이 증인으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12년 전 제자가 칠판에 그렸던 그 그림을 기억에서 되살려 다시 그려 보였습니다. 그 증언이 결정적이었고, 판즈워스가 이겼습니다. 1939년 9월 RCA는 결국 그의 특허를 쓰는 대가로 100만 달러 규모의 사용료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미국에서 RCA가 특허 사용료를 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진행자: 이겼는데 왜 잊혔습니까?
기자: 시간이 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RCA는 1939년 뉴욕 만국박람회에서 텔레비전을 대대적으로 선보이며 사실상 자기 발명처럼 알렸습니다. 이어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텔레비전의 상업화가 몇 년간 멈췄고요. 전쟁이 끝났을 무렵 그의 핵심 특허는 만료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이 미국의 모든 거실에 들어가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던 1950년대에, 정작 그 원리를 만든 사람은 거기서 얻은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진행자: 본인이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은 있습니까?
기자: 딱 한 번입니다. 그것도 이 이야기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인데요. 1957년 7월 3일, CBS의 퀴즈 프로그램 '아이브 갓 어 시크릿(I’ve Got a Secret)'에 나갔습니다. 출연자의 비밀을 패널이 알아맞히는 형식이었는데, 진행자는 판즈워스를 '미스터 X'라고만 소개했습니다. 그의 비밀은 "나는 전자 텔레비전을 발명했다"였습니다. 패널들은 끝내 알아맞히지 못했습니다. 그는 상금 80달러와 담배 한 상자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진행자 게리 무어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자기는 실직자였을 거라고요.
진행자: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기자: 복잡했습니다. 판즈워스는 원래 텔레비전이 사람들을 더 많이 배우게 하고, 서로 다른 문화를 잇고, 나아가 전쟁까지 막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온 방송 내용에 크게 실망했고, 자기 아이들에게도 텔레비전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판즈워스는 1971년 폐렴으로 예순넷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 300건이 넘는 특허를 남겼습니다.
진행자: 지금 판즈워스를 기리는 것이 남아 있습니까?
기자: 여기에 최근 소식이 있습니다. 1990년부터 워싱턴 D.C. 연방의사당 안에 그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각 주가 두 명씩 인물을 보내 세우는 국립조각상홀 소장품이었는데, 유타주를 대표하는 인물이 판즈워스였습니다. 그런데 2018년 유타주 의회가 그를 다른 인물로 교체하기로 결정했고, 2020년 3월 동상이 의사당에서 옮겨졌습니다. 지금은 유타밸리대학교에 있습니다. 판즈워스의 동상이 있던 의사당 자리는 유타 최초의 여성 주 상원의원이자 의사였던 마사 휴스 캐넌의 동상이 채웠습니다. 2024년 12월에 제막됐습니다.
진행자: 교체를 두고 논란도 있었다고요?
기자: 네, 상당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유타 주 의회가 교체안을 승인했습니다. 지금 연방 의사당을 찾는 사람들은 유타를 대표하는 인물로 브리검 영과 마사 휴스 캐넌의 동상을 보게 됩니다. 텔레비전을 만든 사람의 동상은 이제 그 자리에 없습니다. 다만 샌프란시스코의 옛 실험실 자리에는 기념 명판이 남아 있고요. 1983년에는 판즈워스를 기리는 우표가 발행됐습니다.
진행자: 아이다호 감자밭의 이랑에서 시작해 미국의 거실 풍경을 바꿔놓은 텔레비전의 발명가 필로 판즈워스 이야기, 이조은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