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당국이 대북 제재 대상 선박에 기국 등록 서비스를 제공한 혐의로 자국 선박 관리 회사와 대표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싱가포르가 대북 제재 위반 혐의로 기업과 개인을 기소한 이례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대상 선박에 기국 등록 서비스를 제공한 싱가포르 선박 관리 회사와 대표가 지난달 31일 싱가포르 법원에 기소됐습니다.
싱가포르 경찰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뉴에 선박등록소(Niue Ship Registry)'는 지난 2022년 5월 18일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 선박인 ‘페트렐 8호(PETREL 8)’에 기국 등록 서비스를 제공한 혐의를 받습니다.
기국 등록이란 선박이 특정 국가의 국기를 달고 항행할 수 있도록 해당 국가에 등록하는 것으로, 선박의 법적 국적을 결정하는 절차입니다.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를 통해 제재 위반 선박에 대해 기국 말소, 지정 항구 입항 금지, 자산 동결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회원국에 부여하고 이를 이행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국 등록 서비스를 제공하면 제재 선박이 합법적인 국적을 얻어 국제 항로를 자유롭게 운항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상 제재를 무력화하는 행위여서 많은 나라에서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페트렐 8호는 지난 2017년 10월 유엔 안보리 결의 2317호 및 2375호에 따라 북한으로부터 금지 품목을 운반한 혐의로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선박입니다.
결의 2317호는 2016년 채택된 대북 제재 결의로 북한산 석탄과 철광석 등 주요 수출품 거래를 금지하고 있으며, 결의 2375호는 2017년 채택된 결의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 차단을 위해 원유와 정제유 공급을 대폭 제한하고 제재 위반 선박에 대한 기국 말소와 입항 금지 조치를 담고 있습니다.
한편, 뉴에 선박등록소 대표 데이비드 정 궉용(49)도 회사가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방조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습니다.
싱가포르 국적인 정 대표는 2022년 5월 18일부터 8월 18일까지 페트렐 8호를 남태평양 자치령 뉴에의 기국 아래 등록했으며, 당시 이 선박이 북한의 금지 품목 운반에 관여된 제재 대상 선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회사에는 '유엔 대북 제재 규정 2010' 위반 혐의 1건이, 정 대표에는 같은 조항 위반 방조 혐의 1건이 각각 적용됐습니다. 이 규정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유엔 안보리가 부과한 제재를 이행하기 위한 싱가포르 국내법입니다.
유죄 판결 시 정 대표는 최대 10년 징역 또는 50만 싱가포르 달러(미화 약 38만 7천 달러)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으며, 회사에는 최대 100만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 경찰청은 성명을 통해 "싱가포르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국제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며 "싱가포르 법규를 위반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주저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