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목사 유족 등, ‘북한 소유 주장’ 7천100만 달러 압류 추진…해킹 피해자와 우선권 공방

김동식 목사 부부.

북한에 납치돼 고문·살해된 것으로 미국 법원이 판단한 김동식 목사의 유족 등 북한 상대 판결 채권자들이 북한 소유라고 주장하는 7천100만 달러 상당의 가상자산 압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킹 피해자 측은 자신들에게 돌려줘야 할 돈이라고 맞서면서, 같은 자산을 놓고 어느 피해자가 먼저 돌려받아야 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됐습니다. 조상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해킹으로 탈취됐다가 동결된 수천만 달러의 가상자산을 북한의 재산으로 인정해 북한 피해자들의 미지급 배상금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가 미국 법원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최근 뉴욕 남부연방법원에 제출된 문건에 따르면 이번 공방은 지난 4월 발생한 가상자산 해킹 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에이브는 이용자들이 가상자산을 맡겨 이자를 받거나 이를 담보로 다른 가상자산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분산형 금융 서비스로, 에이브 측에 따르면 당시 해커는 실제 가치가 뒷받침되지 않은 가상자산을 정상적인 담보인 것처럼 이용해 에이브 프로토콜에서 이용자들이 맡긴 이더리움을 빼냈습니다.

이후 이더리움 거래를 더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하도록 만든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아비트럼 측이 해커가 가져간 자산 가운데 약 7천100만 달러 상당의 이더리움을 되찾아 동결했습니다.

최근 김동식 목사의 유족 등 북한을 상대로 배상 판결을 받은 원고들은 이 돈은 북한 해킹 조직이 탈취한 북한의 재산이라고 주장하며 압류 절차에 나섰습니다.

법원은 지난 5월 원고 측이 아비트럼 운영 조직에 자산 처분을 금지하는 통지와 판결 집행 영장을 전달할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이에 에이브 측은 동결된 자산이 북한의 재산이 아니라 해킹으로 피해를 본 에이브 이용자들의 재산이라며 처분 금지 조치를 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또 해커가 북한과 연계됐다는 원고 측 주장은 인터넷에 게시된 추정에 근거했을 뿐, 검증 가능한 증거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첫 번째 쟁점은 해당 자산을 탈취한 해커가 실제로 북한과 연계돼 있는지입니다.

두 번째 쟁점은 해커가 북한과 연계됐더라도 불법으로 탈취한 자산을 북한의 재산으로 볼 수 있는지입니다.

미국의 기존 판례에 따르면 절도범은 훔친 물건을 갖고 있더라도 합법적인 소유권까지 얻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이 원칙이 가상자산에도 적용되는지와 이번 해킹을 단순 절도 또는 사기성 거래 가운데 어느 쪽으로 봐야 하는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원고 측은 이번 사건을 사기성 거래로 볼 경우 해커가 자산에 일시적인 법적 권리를 얻었으며, 이에 따라 해당 자산을 북한의 재산으로 압류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세 번째 쟁점은 북한을 상대로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과 가상자산 해킹으로 돈을 잃은 피해자들 가운데 누구에게 우선권을 인정할지입니다.

이번 압류 절차에 참여한 김동식 목사의 유족들은 북한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실제 배상금은 받지 못했습니다.

김 목사는 북한 주민들을 돕는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지난 2000년 중국에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됐습니다.

미 연방법원은 북한이 김 목사를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해 고문하고 살해했다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김 목사의 아들 김한 씨와 동생 김용석 씨는 지난 2015년 북한을 상대로 3억3천만 달러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김 목사의 아내 김영화 씨와 다른 두 자녀인 대니 버틀러 씨와 김춘국 씨도 지난해 별도의 소송에서 모두 3억6천60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북한이 판결금을 지급하지 않자 유족들은 미국에서 북한 소유로 의심되는 가상자산을 찾아 배상금을 회수하는 절차에 나섰습니다.

유족 5명은 지난 6월 가상자산 업체 서클을 상대로도 소송을 내고,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주장되는 최소 250만 달러 상당의 달러 연동 가상자산 USDC를 넘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원고 측 법률대리인은 이와 비슷하게 북한과 이란 등을 상대로 받은 판결을 가상자산으로 집행하려는 사건 20건을 하나로 합쳐 심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들 사건의 미지급 판결금은 이자를 제외하고도 모두 20억 달러가 넘습니다.

법원은 아직 7천100만 달러를 탈취한 해커가 북한과 연계됐는지, 동결된 자산이 북한의 재산인지, 어느 피해자에게 우선권이 있는지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건은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판결을 받고도 실제 자산을 찾지 못해 배상금을 받지 못했던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판결 집행 방법이 인정될지를 가르는 시험대가 되고 있습니다.

법원이 북한 소유로 입증된 가상자산에 대한 압류를 허용할 경우, 이번 결정은 다른 북한 인권·테러 피해자들이 동결된 북한 자산에서 배상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중요한 법적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VOA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