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와 화려한 스타일로 미국 연예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컨트리 음악 가수이자 작곡가, 사업가인 돌리 파튼이 25일 별세했다고 유가족이 성명을 통해 밝혔습니다. 향년 80세입니다.
사인은 보도 시점까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 게시글에서, 25일 오후 6시부터 일주일 동안 파튼을 기리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성조기를 조기로 게양하도록 지시한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장 위대한 컨트리 가수 가운데 한 명이자 그 이상인 돌리 파튼이 방금 세상을 떠났음을 전하게 돼 매우 슬프다”고 썼습니다. 이어 “이는 수백만 명에게 진정한 손실입니다. 그녀 같은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 편히 쉬어요. 돌리! 세계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파튼의 경력은 60년 가까이 걸쳐있으며, ‘졸린(Jolene)’, ‘코트 오브 매니 컬러스(Coat of Many Colors)’,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를 비롯한 명곡들을 남겼습니다. 파튼의 음반은 전 세계적으로 1억 장 넘게 판매됐고, 온라인 스트리밍은 10억 회를 넘었습니다.
테네시주 출신 의원들도 파튼을 추모했습니다.
마샤 블랙번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돌리 파튼을 잃은 데 대해 우리 가족과 사실상 모든 테네시 주민이 느끼는 슬픔을 충분히 표현할 말이 없다”고 썼습니다. 이어 “돌리, 우리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파튼의 고향인 세비어 카운티를 지역구로 둔 다이애나 하시바거 하원의원도 X에, 파튼은 “한 번도 우리 중 한 사람이 되기를 멈추지 않았다”면서, 이스트 테네시가 “우리 중 한 사람을 잃고 슬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파튼은 1946년 1월 19일 테네시주 피트먼 센터에서 태어났습니다. 12남매 가운데 한 명이었는데,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이었다고 묘사했습니다. 어린 시절 교회와 지역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노래를 불렀고, 13살 때 내슈빌의 ‘그랜드 올 오프리(the Grand Ole Opry)’에 출연했습니다.
파튼은 196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내슈빌로 이주했습니다. 컨트리 가수 포터 왜고너와의 협업과 왜고너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출연은 파튼이 음반 계약을 따내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파튼은 독자적으로 음반을 내기 위해 왜고너를 떠날 당시 작별을 고하는 의미로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를 작곡했습니다.
파튼은 노래 약 3천 곡을 작곡했고 약 450곡을 녹음했습니다. 25곡이 빌보드 컨트리 차트에서 1위에 올랐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이 1992년 녹음한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는 판매 기록을 깼습니다.
파튼은 1980년 제인 폰다, 릴리 톰린과 함께 출연한 ‘나인 투 파이브(9 to 5)’로 영화에 데뷔했고, 타이틀곡으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2006년에는 ‘트래블린 스루(Travelin' Thru)’로 다시 후보에 올랐습니다.
파튼은 테네시주 동부에 ‘돌리우드’ 테마파크를 열었고, 미국과 해외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책을 보내는 ‘이매지네이션 라이브러리’를 설립했습니다. 2020년에는 밴더빌트대학교의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연구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파튼은 그래미상에 55차례 후보에 올라 10번을 수상했으며, 레코딩 아카데미의 평생공로상도 받았습니다. 202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VOA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