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자유주간의 마지막 공식 행사가 1일 워싱턴 레이번 하원 의원회관에서 열렸습니다. 11명의 탈북민이 직접 연단에 서서 북한 인권의 실상을 증언하고, 행사 후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탈북민 김지영 씨는 “북한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은 무력이 아니라 정보”라며 “정보는 사람을 바꾸고, 변화된 사람은 결국 사회를 바꾼다”고 말했습니다.
자유북한방송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 씨는 2022년 이후 탈북한 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인용해, 응답자의 66%가 북한에서 주 1회 이상 외부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러한 외부 정보가 탈북을 결심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 정보”라며 “이미 많은 북한 청년들이 세상이 자신들이 배운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탈북한 양일철 씨는 북한을 “거대한 교도소”에 비유했습니다. 이어 “일반 교도소와 다른 점은, 관리 방식에 의문을 품거나 신앙을 가지려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런 현실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외부 정보를 통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탈북한 이재희 씨는 고난의 행군 시기 부모와 동생을 모두 굶주림과 병으로 잃고 친척 집을 전전했다고 눈물로 증언했습니다. 이 씨는 “돌격대에 가면 밥이라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희망으로 청년돌격대에 들어갔지만,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또 다른 절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8년간 강제노동을 하면서 단 하루도 배부르게 잠든 적이 없었고 제대로 된 급여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씨는 이후 인신매매 피해를 겪은 뒤 북한을 떠났으며,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처음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오징어잡이를 하다 당국에 체포돼 2년 2개월간 억류됐던 최춘혁 씨는 강제북송 위기 속에서 국제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최 씨는 “북한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순실 씨는 세 살배기 딸과 함께 탈북했다가 인신매매를 당해 딸과 생이별한 사연을 증언했습니다. 자신은 45만 원, 약 380달러에, 딸은 18만 원, 약 150달러에 팔렸다며 “제 눈앞에서 아이가 물건처럼 팔려가는 모습을 봐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행사 후 VOA와의 인터뷰에서 탈북민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짧지만 간절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김가영 씨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희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희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살아남아 함께 통일의 문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최정훈 씨는 “더 노력하겠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전했습니다.
최춘혁 씨는 “굶주림과 추위 속에 있을 동포 여러분, 자유를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배광민 씨는 “바깥세상에는 여러분을 지켜줄 수 있는 이웃들이 있다”며 “절대로 삶을 포기하지 말고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견뎌달라”고 했습니다.
이순실 씨는 인신매매로 생이별한 딸에게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며 “엄마는 너를 향한 그리움의 끈을 놓지 않고 살고 있으니, 끝까지 살아서 꼭 만나자”고 전했습니다.
가장 최근 탈북한 양일철 씨는 비무장지대를 넘어 탈북하던 당시 임진강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듯, 자유를 향한 의지 또한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VOA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