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얼어붙은 생선이 바꾼 미국인의 식탁, 냉동식품의 혁신

슈퍼마켓에서 한 쇼핑객이 냉동 식품을 둘러보고 있다. (자료사진)

진행자: 미국의 혁신, 문화, 그리고 미국 50개 주 소개까지, 미국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USA', 오늘은 '미국을 변화시킨 혁신' 시간입니다. 조상진 기자와 함께합니다. 조 기자, 오늘은 어떤 혁신을 소개해 주실 건가요?

기자) 오늘은 미국 슈퍼마켓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냉동식품' 이야기입니다. 냉동 피자부터 채소와 과일, 생선, 아이스크림, 간편식까지 이제는 냉동식품 없는 미국인의 식탁을 상상하기 어려운데요, 이 거대한 산업의 시작에는 약 100년 전 캐나다 북동부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생선을 유심히 관찰했던 한 미국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클래런스 버즈아이입니다.

진행자) 냉동식품의 아이디어가 식품회사 연구실이 아니라 북극에 가까운 지역에서 시작됐다는 건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인 버즈아이는 자연학자로 일하다, 1912년부터 몇 년간 캐나다 래브라도 지역에서 모피 상인으로 일했는데요, 그곳에서 이누이트 원주민들이 갓 잡은 생선을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순식간에 얼리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몇 달 뒤 그 생선을 녹여 먹어봤더니 맛과 식감이 상당히 잘 유지돼 있었다고 하는데요, 버즈아이는 '얼린다는 것' 자체보다 '얼마나 빨리 얼리느냐'가 식품의 품질을 좌우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진행자) 빨리 얼리는 것과 천천히 얼리는 게 그렇게 큰 차이가 있습니까?

기자) 그렇다고 합니다. 음식을 천천히 얼리면 내부에 비교적 큰 얼음 결정이 생겨서 세포 조직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반면 아주 빠르게 얼리면 얼음 결정이 작게 형성돼 조직 손상을 줄일 수 있는데요, 버즈아이는 이 원리를 상업적으로 구현할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포장된 식품을 차가운 금속 표면 사이에서 빠르게 얼리는 장비와 공정을 개발해 관련 특허를 잇따라 확보했고, 그의 사업과 기술은 이후 미국의 대형 식품기업에 인수됐습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버즈아이(Birds Eye)'라는 이름은 미국을 대표하는 냉동식품 브랜드로 성장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버즈아이의 급속냉동 관련 특허 가운데 일부는 1930년 8월 12일 등록됐는데요, 바로 96년 전 이맘때였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아무리 잘 얼려도 금방 녹아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1900년대 초반에는 냉동고가 흔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팔았습니까?

기자) 바로 그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공장에서 완벽하게 얼려도 운송 도중 녹거나 슈퍼마켓에 보관할 곳이 없다면 소용이 없었는데요. 1930년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냉동식품을 시험 판매할 당시, 냉장 철도 차량으로 제품을 운송하고 소매점에는 특별히 설계된 냉동 진열장을 설치했습니다. 식품 하나를 새로 만든 게 아니라, 공장에서 운송을 거쳐 판매점까지 냉동 상태를 유지하는 새로운 유통망도 함께 만들어야 했던 셈입니다.

진행자) 처음부터 미국 소비자들이 냉동식품을 좋아했습니까?

기자)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소비자들에게 냉동식품은 낯설었고, 무엇보다 각 가정에도 냉동고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 후반부터 냉동 공간을 갖춘 가정용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집에서 냉동식품을 보관할 수 있게 되자 냉동 채소와 생선 등이 빠르게 대중화됐는데요, 계절이나 지역에 관계 없이 다양한 식품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이 미국인의 식생활을 바꿔놓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냉동식품 하면 미국에서는 역시 'TV 디너'를 빼놓을 수 없죠?

기자) 그렇습니다. 냉동식품이 미국인의 생활 방식 자체와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요. 1950년대 식품회사 스완슨이 고기와 채소, 감자 같은 음식을 칸이 나뉜 알루미늄 접시 하나에 담아 통째로 오븐에 데워 먹을 수 있는 냉동식사를 내놓았는데요, 이름부터 당시 미국 사회를 휩쓸던 새로운 문화인 텔레비전을 가져와 'TV 디너'라고 붙였습니다. 1950년 미국 가정의 10%가 채 안 됐던 텔레비전 보급률은 불과 5년 뒤 60%를 넘어섰는데요, TV 앞에 앉아 재밌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한다는 새로운 생활방식과 냉동식품의 간편함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겁니다.

진행자) TV 디너가 탄생한 과정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1953년 스완슨이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칠면조 수요를 잘못 예측하는 바람에 260톤 정도의 냉동 칠면조가 남았다고 합니다. 회사 영업사원 제리 토머스가 비행기 기내식 칸막이 식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남은 칠면조 고기에 반찬을 곁들여 알루미늄 접시에 담았고, 이것이 TV 디너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다만 누가 정확히 이 아이디어를 처음 냈는지를 두고는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 분명한 건 이 제품이 아주 큰 성공을 거뒀다는 점인데요, 1954년 첫해에만 약 1천만 개가 팔려 나갔습니다.

진행자) 냉동식품의 등장이 미국 가정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급속냉동 기술은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거리와 계절의 제약을 크게 줄였고, 냉동 운송과 슈퍼마켓의 냉동 진열장, 가정용 냉동고 같은 새로운 유통 환경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기에 TV 디너와 냉동 피자 같은 간편식이 등장하면서, 미국인이 음식을 사고 보관하고 조리하는 방식까지 달라졌습니다. 북극에 가까운 캐나다 래브라도에서 얼어붙은 생선을 바라본 한 미국인의 관찰이, 결국 미국 슈퍼마켓의 풍경과 식탁을 바꾼 셈입니다.

진행자: 네, 북극의 얼어붙은 생선에서 시작해 미국인의 식탁을 바꾼 냉동식품의 혁신 이야기, 조상진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