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탈북 학자 “김정일은 부끄럼 많았던 학생”

북한을 탈출한 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학자가 미국의 저명 외교전문지에 북한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린시절에 대한 글을 게재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 소재 조지 메이슨대학의 김현식 교수는 과거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어 실력을 평가했다며, 김 위원장은 수줍은 모습의 학생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자세한 소식을 김근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팔리시(Foreign Policy)' 최신호에는 '김정일의 숨은 이야기(The Secret History of Kim Jong Il)'라는 글이 실렸습니다.

평양사범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1970년대에 김일성 주석 일가의 가정교사를 지낸 탈북 학자 김현식 교수가 쓴 이 글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의 어린시절 모습을 묘사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 교수가 처음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것은 1959년 10월. 당시 김일성 주석은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어 실력이 형편없다며, 김 교수에게 김정일 위원장이 다니는 남산고급중학교의 교육 방법을 점검하고 김 위원장의 실력도 직접 평가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김 교수는 17살이던 김정일 위원장이 통통하고 붉은 볼에, 질문 하나하나에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수줍은 소년이었다고 기억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어 독해와 번역은 실수 없이 해냈지만, 회화 실력은 떨어져서 더듬거리며 답했습니다.

김 교수는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당시 김 위원장이 서툰 러시아어로 말한 답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김 교수의 질문에 "나는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나는 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 종합대학에 입학할 계획입니다" "나는 운동을 하는 것보다 영화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김현식 교수는 1991년 모스크바에서 교환교수로 재직하던 중 미국에 살던 누나와 만난 것이 북한 정부에 발각되면서 탈북을 선택했습니다. 이후 10년 간 한국에 살았고, 지금은 버지니아 주 조지 메이슨대학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김 교수는 `포린 팔리시'에 쓴 글에서 한국에 온 뒤 아내와 아들, 딸 손주들까지 수용소에서 처형됐다는 소식을 듣고 수많은 낮과 밤을 자책감과 슬픔에 몸부리쳤다며, "김정일을 죽이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는 상상을 수없이 했지만 이제는 김정일을 용서했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제 유일한 희망은 김정일이 북한의 닫힌 문을 열고, 배고픔에 지친 북한주민들이 한국과 미국 등 많은 나라의 국민들과 같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것"이라면서 "김정일이 문을 연다면, 당장 평양으로 돌아가 교육자로서 헌신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현재 미국에서 북한말 성경 발간과 북한 학생을 위한 영어사전 만들어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