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혁신, 문화, 그리고 미국 50개 주 소개까지, 미국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USA', 오늘도 조상진 기자와 함께합니다. 오늘은 미국 50개 주를 구석구석 알아보는 시간인데 어떤 이야기가 준비돼 있나요?
기자) 지난주에 이어 캘리포니아주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주에는 골드러시의 역사와 할리우드, 그리고 웅장한 자연까지 캘리포니아의 얼굴을 살펴봤다면, 오늘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캘리포니아의 또 다른 힘, 첨단산업과 농업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첨단산업을 말씀하시니까 저는 이게 딱 떠오르던데요. 캘리포니아 하면 역시 첨단 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이 동네도 원래는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은 세계 최고의 기술 중심지지만, 1930년대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과수원과 농장이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이었습니다. 변화의 계기는 스탠퍼드대 졸업생이었던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도시 팔로알토의 작은 차고에서 창업하면서 시작됐는데요, 이 차고가 지금은 '실리콘밸리의 탄생지'라는 이름의 사적지로 지정돼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회사, 지금의 휴렛패커드(HP)의 첫 제품을 사 간 고객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월트 디즈니사였다는 겁니다. 음향 측정 장비 8대를 구입해 애니메이션 '판타지아' 제작에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가 이렇게 일찌감치 연결돼 있었던 셈입니다.
진행자) 그런데 '실리콘밸리'라는 이름, 막상 들으면 좀 뜬금없게 들리기도 합니다. 밸리는 골짜기니까 알겠는데, 실리콘은 어디서 온 건가요?
기자) 최첨단 산업에 빠지면 절대 안 되는 핵심 부품이 바로 반도체 칩 아니겠습니까? 반도체 칩의 핵심 재료가 바로 실리콘, 바로 규소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지역에 실리콘을 이용해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들이 잇따라 자리 잡았기 때문인데요. 1971년 전자산업 전문지 ‘일렉트로닉뉴스(Electronic News)’의 기자 돈 회플러(Don Hoefler)가 이 지역을 '실리콘밸리 USA(Silicon Valley U.S.A.)'라고 부르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그럼 그 반도체 회사들은 또 어떻게 여기 다 모이게 된 걸까요?
기자) 여기서부터가 진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시작은 배신이었습니다.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천재 과학자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가 미국 최고의 젊은 엔지니어들을 끌어모아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천재 과학자이긴 했지만, 좋은 직장 상사는 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직원들을 의심하고 몰아붙이는 통에 견디다 못한 엔지니어 8명이 1957년에 한꺼번에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갔습니다. 화가 난 쇼클리는 이들에게 '8인의 배신자'라는 딱지를 붙였는데요, 이 '배신자들'이 차린 회사가 바로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인데, 창업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으로 급성장했습니다. 당시 만든 반도체가 아폴로 우주선에도 들어갈 정도로 유망한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페어차일드 출신들이 다시 독립해 인텔을 비롯한 수많은 회사를 세우면서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쇼클리와 직원들의 갈등에서 시작된 퇴사 사건이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기업 생태계를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된 셈입니다.
진행자) 그럼 지금은 어떤 기업들이 이 지역을 대표하고 있는지 한 번 볼까요?
기자) 애플과 구글, 메타, 엔비디아 같은 이름만 들어도 모두 아실 만한 세계적인 굴지의 기술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또 최근 통계를 보면 미국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금의 절반 이상이 캘리포니아 기업으로 향할 정도로,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에 투자되는 자금이 이곳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캘리포니아의 기술 산업에 관해서 알아봤는데요. 캘리포니아가 기술뿐 아니라 농업에서도 비중이 상당하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캘리포니아 중부의 센트럴밸리는 미국 최대 농업 지대인데요, 전 세계 아몬드의 80%가 이곳에서 생산됩니다.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여름과 온화하고 습한 겨울을 가진 지중해성 기후가 아몬드 재배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아몬드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농산물 수출품 가운데 하나인데요. 2024년 캘리포니아 전체 농산물 수출액은 238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또 아몬드뿐 아니라 포도와 딸기, 토마토, 피스타치오까지, 미국인이 먹는 과일과 견과류의 상당 부분이 이곳 센트럴밸리에서 나옵니다.
진행자) 캘리포니아 농업 하면 와인도 빼놓을 수 없죠?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 와인 업계 단체인 와인인스티튜트(Wine Institute)에 따르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81%가 캘리포니아산입니다. 그만큼 캘리포니아가 미국 와인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데요. 그중에서도 나파밸리(Napa Valley)는 캘리포니아 전체 와인용 포도 수확량의 4%에 불과한 작은 지역이지만, 프리미엄 와인 시장에서는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토양과 기후가 고급 포도 재배에 특히 적합하다 보니, 이 작은 계곡 하나가 미국 와인의 상징 같은 지역이 된 겁니다. 이렇다 보니 관광 산업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요, 세계 각지에서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찾는 관광객이 몰리면서 와인 관광도 지역 경제의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진행자) 이렇다 보니 캘리포니아 경제 규모 자체가 웬만한 국가를 능가한다는 얘기도 있죠?
기자) 그렇습니다. 캘리포니아의 2025년 국내총생산은 약 4조2천500억 달러에 달합니다. 2024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국가와 비교할 경우 세계 4위 규모에 올라섰는데요. 인구 약 4천만 명의 주 하나가 세계적인 경제 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입니다.
진행자) 네, 골드러시의 과거와 실리콘밸리의 미래가 공존하는 곳, 캘리포니아의 두 번째 이야기였습니다. 조상진 기자와 함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