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아메리카 250] 미국 독립혁명의 상징, 자유의 기둥과 깃발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미국 혁명 박물관에 전시된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의 '자유의 나무(Liberty Tree) 모형.

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김미옥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미국 독립혁명의 상징인 ‘자유의 나무(Liberty Tree)’와, 그 나무 아래 모여 영국에 저항했던 시민조직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 이야기, 앞서 전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그런데 상징적인 자유의 나무가 없는 도시에서는 어떻게 했을까요? 나무 대신 ‘자유의 기둥(Liberty Pole)’을 세우고, 그 위에 자유를 상징하는 깃발을 내걸었는데요, 오늘도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전, 독립혁명을 이끈 상징인 ‘자유의 기둥’과 ‘자유의 깃발’ 이야기 전해드리겠습니다.

진행자: 자유의 나무에서 시작된 저항의 상징이 기둥과 깃발로 이어진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영국군도 자유의 나무가 지닌 상징성을 잘 알고 있었고, 독립전쟁이 시작된 뒤인 1775년 8월, 보스턴의 자유의 나무를 베어버렸습니다. 독립운동의 상징을 없애 시민들의 사기를 꺾으려 했던 건데,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나무는 사라졌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은 더 널리 퍼졌고, 다른 식민지에서도 자유의 나무와 자유의 기둥이 잇따라 저항의 상징으로 등장했습니다.

진행자: 자유의 나무를 베어버리면서 오히려 미국 식민지 곳곳으로 확산됐군요.

기자: 맞습니다. 1760년대 후반부터 여러 식민지에서 저마다의 ‘자유의 나무’가 등장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신문에 "오늘 오후 자유의 나무 아래에서 모인다"는 공고가 실리기도 했고, 각 지역의 ‘자유의 아들들’은 나무 아래에 모여 소식을 나누고, 연설을 들으며 영국 상품 불매운동을 논의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이런 상징적인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자유의 기둥’을 세웠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시민들이 'Liberty Pole', 즉 '자유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보통 20미터가 넘는 긴 통나무를 세우고, 꼭대기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깃발이나 장식을 달았습니다.

진행자: 20미터가 넘는 기둥이면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겠네요.

기자: 그렇죠. 자유의 기둥은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시민들이 모이는 집회 장소였습니다. 또 꼭대기에 깃발을 달아 중요한 소식을 알리는 신호탑 역할도 했는데요, 기둥 위에 깃발이 오르면 사람들은 "오늘 모이는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광장으로 모여 영국의 정책에 맞설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진행자: 영국군이 그 기둥을 그대로 둘 리는 없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뉴욕에서는 자유의 기둥을 둘러싼 갈등이 여러 해 동안 이어졌습니다. 1766년 인지세법이 폐지되자 뉴욕의 자유의 아들들은 이를 기념해 시청 앞 광장에 높은 기둥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은 곧바로 기둥을 잘라버렸고, 시민들은 더 크고 튼튼한 기둥을 다시 세웠습니다. 영국군은 또 부숴버렸고, 시민들은 또 다시 세우고, 계속 반복됐습니다.

진행자: 세우고 자르고, 다시 세우고. 자유의 기둥을 둘러싼 대결이 계속된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 싸움을 '기둥 전쟁(Pole Wars)'이라고 불렀습니다. 결국 갈등은 폭력 충돌로 어졌고, 1770년 1월 뉴욕 시민들과 영국군이 맞붙은 ‘골든 힐 전투(Battle of Golden Hill)’ 가 벌어졌습니다. 보스턴 학살보다 약 6주 앞서 일어난, 식민지 주민과 영국군의 대표적인 초기 충돌로 평가됩니다.

진행자: 영국군이 쓰러뜨리면 시민들이 다시 세운, 그야말로 저항의 기둥이었군요. 그 기둥 위에는 자유의 깃발이 걸렸던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다만 '리버티 깃발(Liberty Flag)'은 하나의 공식 깃발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립전쟁 전후 자유와 식민지의 단결을 상징했던 여러 깃발을 통틀어 부르는 말인데요,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자유의 아들들 깃발(Sons of Liberty Flag)'입니다. 처음에는 인지세법 회의에 참가한 아홉 개 식민지를 상징하는 아홉 개 줄무늬였고, 그 뒤 열세 개 식민지를 뜻하는 열세 개 줄무늬로 발전했습니다. 역사학자들 가운데는 이 줄무늬가 오늘날 미국 성조기 디자인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진행자: 자유의 나무에서 시작된 저항이 자유의 기둥과 깃발로 이어졌군요. 독립혁명의 상징 자유의 기둥과 깃발 이야기, 김미옥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