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아메리카 250] 미합중국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

앤드루 잭슨 미국 제7대 대통령

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소식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김미옥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미국 역대 대통령들을 만나는 시간이죠. 오늘은 미합중국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 만나보겠습니다. 가난한 고아 소년에서 전쟁 영웅, 그리고 대통령까지 오른 미국식 성공 신화의 상징이고요, 미국 20달러 지폐에 얼굴이 실릴 만큼 미국 역사에 큰 영향을 남긴 대통령입니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대통령 가운데 한 명입니다.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었다는 평가와 미국 역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는 비판이 지금도 함께 따라다니는데요. 그만큼 미국의 정치와 사회를 크게 바꿔놓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앤드루 잭슨이 어떤 대통령인지 더 궁금하네요. 어떤 삶을 살았는지부터 살펴보죠.

기자: 앤드루 잭슨은 1767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시골 지역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은 비극적이었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었고, 열 몇 살 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국 독립전쟁 때는 13살 나이에 대륙군 연락병으로 활동했습니다.

진행자: 이전의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앤드루 잭슨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법을 공부해 판사까지 지냈습니다. 당시 개척지였던 테네시로 이주한 뒤에는 땅을 사들이고 면화 농장 운영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요, 테네시 민병대 지휘관으로 활동하면서 원주민 부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다가 뉴올리언스 전투 영웅이 된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앤드루 잭슨을 미국 최고의 전쟁 영웅으로 만든 사건이 바로 뉴올리언스 전투입니다. 1815년, 잭슨은 민병대와 지원병들을 이끌고 영국군에 맞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사실, 이때는 미국과 영국은 이미 평화조약에 서명한 상태였지만, 소식이 전달되는 데 시간이 걸려 양측 모두 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영국군은 2천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지만 미군 피해는 수십 명에 그쳤습니다. 이 승리로 앤드루 잭슨은 국민적 영웅이 됐고, 결국 182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제7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진행자: 앤드루 대통령 취임식 날 풍경도 이전 대통령들과는 많이 달랐다고 하죠?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까지 미국 대통령들은 대부분 부유한 집안 출신의 엘리트였지만 앤드루 잭슨은 가난한 개척지 출신의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는데요, 시민 수천 명이 ‘보통 사람들의 대통령’을 보기 위해 워싱턴으로 몰려왔습니다. 취임식이 끝난 뒤 백악관이 개방되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진흙 묻은 장화를 신고 카펫 위를 걸어다니고, 가구가 부서질 정도로 소동이 벌어졌는데요, 이를 두고 일부는 ‘무질서하다’고 비판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백악관이 처음으로 국민에게 열린 날’로 평가했습니다.

진행자: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을 말한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김: 취임식 날 풍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앤드루 잭슨은 미국 정치를 엘리트 중심에서 대중 정치 시대로 바꾼 대통령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전에는 재산이 있어야 투표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앤드루 잭슨 시대에는 조건이 완화돼 더 많은 평범한 백인 남성이 투표권을 갖게 됐습니다. 또 1832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연방법 무효화 움직임에 강경하게 대응해 미국의 통합을 지켜냈고, 부유한 금융가들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고 보고, 당시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제2미합중국은행의 재인가를 거부해 결국 문을 닫게 했습니다.

진행자: 앤드루 잭슨 하면 역시 논란도 빼놓을 수 없고, 그래서 지금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죠?

기자: 그렇습니다. 앤드루 잭슨의 가장 큰 오점은 원주민 강제 이주 정책입니다. 1830년 인디언 이주법에 서명하면서 체로키족과 촉토족, 크리크족 등 수만 명의 원주민이 고향을 떠나 서부로 강제 이주했는데요, 특히 체로키족의 강제 이주는 '눈물의 길'로 불리며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앤드루 잭슨을 원주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긴 대통령으로 평가합니다.

진행자: 앤드루 잭슨 관련 유적지도 남아 있죠?

기자: 네. 가장 유명한 곳은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허미티지(The Hermitage)'입니다. 앤드루 잭슨이 40년 넘게 살았던 농장이자 사저인데요. 당시 사용했던 가구와 편지, 집무 공간이 그대로 남아 있고, 부인 레이철과 함께 묻혀 있는 묘지도 볼 수 있습니다. 또 뉴올리언스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루이지애나주의 잭슨 스퀘어도 대표적인 앤드루 잭슨 명소입니다.

진행자: 앤드루 잭슨은 서부 영화 주인공 같은 일화가 유명하죠?

기자: 총과 관련된 일화인데요, 앤드루 잭슨은 결투와 총격전에서 총알을 맞았는데, 총알 두 발을 몸속에 품고 평생 살았습니다. 또, 1835년 미국 최초의 현직 대통령 암살 시도까지 겪었는데요, 놀랍게도 범인이 쏜 권총 두 자루가 모두 불발되면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잭슨은 결투로도 유명했는데요. 1806년 찰스 디킨슨과의 결투에서 가슴에 총을 맞고도 끝까지 버텨 상대를 쓰러뜨렸다는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앤드루 잭슨이 키우던 앵무새가 '폴(Poll)’인데요, 누구에게 욕설을 배웠는지, 장례식 날에도 욕을 멈추지 않아 결국 장례식장 밖으로 쫓겨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진행자: 미국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