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김미옥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도시 가운데 하나죠. 복잡한 도시 뉴욕에서, 수십 층 고층 빌딩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맨해튼을 걷다 보면 고층 빌딩 숲 사이에 넓고 푸른 공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센트럴파크인데요, 오늘은 미국 여러 도시에 공원을 만들어 도시 모습을 바꿔 놓은 현대 조경 건축의 아버지,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를 소개합니다.
진행자: 뉴욕 맨해튼에 갔을 때 센트럴파크를 보고, 세상에 맨해튼 한가운데 이런 공원이 있다니 하며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그 공원을 만든 사람이 옴스테드군요.
기자: 네, 센트럴파크를 시작으로 뉴욕 모닝사이드파크, 브루클린의 프로스펙트파크 등이 옴스테드 작품입니다. 또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주변 조경을 설계했고, 필라델피아의 페어몬트파크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미국 곳곳의 공원과 녹지 공간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진행자:센트럴파크를 만든 옴스테드, 이름은 다소 낯선데요, 어떤 인물이었나요?
기자: 옴스테드는 1822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는 부유한 상인인 아버지를 따라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예일대학 진학을 준비하다가 옻나무 독에 시력을 크게 손상해 대학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옴스테드는 지형 엔지니어, 상인, 기자 등 여러 분야의 직업을 가졌고, 이때의 경험이 조경설계사 기초지식을 쌓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남북전쟁 직전에는 뉴욕타임스의 의뢰를 받아 미국 남부 노예제도를 취재했고, 이 경험을 정리해 ‘목화의 왕국(The Cotton Kingdom)’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지금도 남북전쟁 이전 미국 남부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진행자: 조경이라고 하면 보통 나무를 심고 정원을 꾸미는 일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옴스테드의 조경은 어떤 점이 달랐나요?
기자: 지금은 도시를 만들면서 공원을 함께 조성하는 게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생각이었습니다. 1800년대 중반만 해도 대도시에는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대규모 공원이 거의 없었는데요, 부유층은 교외 별장으로 가서 쉬었지만 노동자와 서민들은 휴식할 공간이 없었습니다. 옴스테드는 도시는 건물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숨을 돌리고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현대 도시공원의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진행자: 당시로서는 시민 모두를 위한 대형 도시공원 자체가 낯선 개념이었겠네요.
기자: 옴스테드가 도시공원의 중요성을 깨달은 결정적인 계기는 1850년 영국 여행이었습니다. 영국 리버풀 인근의 버큰헤드파크(Birkenhead Park)를 방문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영국에는 일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잘 정비된 공원들이 있었는데요, 공원이 귀족이나 부유층만의 공간이 아니라 일반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거죠. 옴스테드는 “가장 가난한 농부도 영국 여왕만큼 자유롭게 공원을 즐길 수 있다”는 식의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영국 공원을 본 경험을 통해 도시의 모든 시민이 계층에 상관없이 자연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고, 나중에 센트럴파크 설계에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진행자: 당시 뉴욕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도시가 빠르게 확장되던 때였죠?
기자: 맞습니다. 1850년대 뉴욕은 산업화와 도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인구가 급증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몰려온 이민자들로 도시가 갈수록 복잡해졌고, 주택과 상업시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시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녹지 공간은 매우 부족했습니다. 옴스테드는 이렇게 복잡한 도시일수록 시민들이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뉴욕에도 영국처럼 모든 시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대형 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그런 생각이 어떻게 현실이 된 건가요?
기자: 뉴욕시는 대형 공원 조성을 결정하고 설계 공모전을 열었는데요. 옴스테드는 영국 출신 건축가 칼버트 복스와 함께 '그린즈워드 플랜(Greensward Plan)'이라는 설계안을 제출했습니다. 공모전에서 옴스테드의 안이 선정되면서 두 사람은 센트럴파크 조성을 맡게 됩니다.
진행자: 공모전에 선정되면서 옴스테드가 꿈꾸던 도시공원이 실제로 만들어지게 된 거군요.
기자: 그렇죠. 센트럴파크는 단순한 도시공원이 아니라, 근대 도시공원의 모델로 평가받는 공간입니다. 센트럴파크를 걸어보면 옴스테드의 조경 설계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직접 느낄 수 있는데요. 지금은 마치 원래부터 자연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 부분이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간입니다.
진행자: 제가 걸었던 숲이 원래 숲이 아니었다는 건가요?
기자: 언덕과 호수, 숲길, 초원까지 대부분이 계획적으로 설계됐습니다. 바위와 일부 지형은 원래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풍경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옴스테드의 혁신은 도로 설계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데요. 센트럴파크를 걸어보면 자동차가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당시 뉴욕에는 마차와 화물차가 끊임없이 다녔는데요. 옴스테드는 공원을 가로지르는 교통로를 지면 아래로 낮게 만들었습니다.
진행자: 공원 이용객들은 차를 거의 안 보게 되는 거군요
기자: 네, 지금도 도시공원 설계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아이디어입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공사가 진행됐는데요, 센트럴파크 부지는 바위가 많고 울퉁불퉁한 지형이어서 대규모 발파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센트럴파크를 조성하는 데 사용된 화약의 양이 나중에 남북전쟁의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사용된 양보다 많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또 수많은 흙과 바위를 옮기고, 수십만 그루의 나무와 관목을 심는 등 19세기 미국 최대 규모의 공공 토목 사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진행자: 뉴욕을 숨 쉬게 만들고, 미국 도시의 모습을 바꿔 놓은 혁신가.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