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여정 “일본 총리 평양 올 수도”…전문가 “미한일 공조 균열 등 노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하는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미한일 대북 안보 공조 강화와 외교적 고립 심화에 맞선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북일 정상회담 추진 발언과 관련해 “일본이 관계 개선의 새 출로를 열어나갈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면 두 나라가 얼마든지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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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부부장은 15일 발표한 담화에서 “일본이 우리의 정당방위권에 대해 부당하게 걸고 드는 악습을 털어버리고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양국 관계 전망의 장애물로만 놓지 않는다면 두 나라가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기시다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다만 이런 입장이 “개인적 견해”라며 자신이 “공식적으로 북일관계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는 않다고 선을 긋기도 했습니다.

김 부부장은 “북한 국가지도부는 북일관계 개선을 위한 그 어떤 구상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접촉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기시다 총리의 속내를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앞서 지난 9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북일 정상회담 추진 관련 질문에 “구체적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김 부부장은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발언이 과거의 속박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북일관계를 진전시키려는 진의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면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그동안에도 일본을 향해 핵과 미사일 개발, 그리고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의제로 삼지 않으면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지만 김 부부장이 직접 나서 기시다 총리의 관련 발언에 공식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이례적입니다.

전문가들은 김 부부장이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했지만 북한의 대외총괄 역할을 맡아 온 만큼 담화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담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16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김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한 것에 유의하고 있다”며 김 부부장이 “납치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북한이 자신들의 핵 무력 고도화에 대응한 미한일 안보 공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띄운 행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납북자 문제는 북일 정상 간 정치적 결단으로 풀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저조한 국내 지지율에 시달리고 있는 기시다 총리로선 북일 정상회담 카드가 매력적일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고 명예교수는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도전하고 있는 11월 미 대선 등을 염두에 두고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 일본과 양자 협상을 통해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관계를 개선하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고유환 명예교수] “핵을 가지면서 미국과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해서 그 것을 하나의 억지력으로 삼고 공존하겠다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전략의 일환으로 정치적 결단으로 가능한 일본에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봐야겠죠.”

기시다 총리는 그간 일본 정부의 숙원 과제인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실현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3월과 5월, 최소 두 차례 동남아시아에서 일본 정부 관계자와 북한 노동당 관계자들이 비밀리에 접촉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김 부부장의 담화가 비록 ‘개인적 견해’을 전제로 했지만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측의 긍정적인 태도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부부장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와 일본인 납치 문제 배제를 달았지만 그렇게 되면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 의미없는 대화임을 북한도 알 것이라는 게 임 교수의 설명입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이 전제조건을 내세우면 대화 재개가 안되기 때문에 우선은 대화의 문턱을 낮춰서 대화를 하고 그 과정에서 상호 간 신뢰가 쌓인다면 상호 간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는 그런 속내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보는 거죠.”

일본 정부는 현재 납북자 12명이 북한에 남아있다고 보고 있고, 북한은 아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양측은 오랜 시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양측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해법을 찾는다면 실무접촉의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일본과 수교까지 이뤄지면 경제적, 안보적으로 크게 유리하겠지만 대화가 진행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미한일 공조에 균열을 만드는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과의 대화 단절이 장기화되고 있는 미국은 동맹국인 일본이 북한과 대화하는데 부정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다며 대화가 진행되더라도 미한일 공조에 미칠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기시다가 만난다고 해서 한미일의 기본적인 협력이 훼손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이나 일본 모두 이건 북한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는 것이고 그건 현존하는 위협이기 때문에 북한이 결정적으로 위협 요소를 제거하거나 낮추지 않는 한 그것이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김 부부장의 담화가 한국과 쿠바의 외교관계 수립이 발표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나온 때문에 이에 대한 맞대응 성격도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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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넘는 ‘형제국’이었던 쿠바의 새로운 선택에 충격을 받은 북한이 일본과 관계 개선 가능성을 시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외교적 고립 이미지를 벗고 한국을 흔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겁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입니다.

[녹취: 김현욱 교수] “뭔가 한국에 대해서 공세적인 입장을 펴고 한미일의 고립정책을 타개하려는 그런 정책을 계속 취했는데 갑자기 쿠바와의 수교가 크게 타격으로 다가오니까 이걸 만회하려는 그런 정책적인 또 하나의 수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한국 정부는 김 부부장이 담화와 관련해 북일 간 접촉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안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는 북일 접촉을 포함해 북 핵과 북한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고, 미한일은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복귀시키기 위해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