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인권 기구 “북한 노동자 강제노역 수사 촉구”

지난 2006년 3월 폴란드 북부 항구도시 그단스크의 조선소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가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네덜란드 인권 기구가 자국 검찰을 상대로 북한 노동자 강제노역 사건을 재차 수사해 달라며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네덜란드 검찰이 지난해 북한 노동자의 강제 노역으로 이득을 취한 자국 기업 2곳을 기소하지 않기로 한 데 불복한 것입니다. 박승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둔 국제 비정부기구(NGO) ‘라 스트라다 인터내셔널’은 18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북한 노동자 강제노역을 수사해 달라는 내용의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 NGO 라 스트라다 인터내셔널] “In our appeal, we argue that the two Dutch shipbuilding firms knew or reasonably could have known about the inhumane, severe exploitative conditions that North Korean workers were subjected to, but still went ahead with ordering ship components. Deliberately taking advantage of the exploitation of another is criminalized in the Netherlands.”

라 스트라다 측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항소장에서 네덜란드 선박 회사 2곳이 북한 노동자들이 처한 비인간적이고 극심한 착취 상황을 알고 있거나, 충분히 알만 했는데도 선박 부품 주문을 발주했다는 논리를 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타인이 착취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이를 이용하는 것은 네덜란드에서 범죄로 간주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라 스트라다는 지난 2020년 네덜란드 선박 회사 2곳이 북한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알면서도 북한인들이 다수 고용된 폴란드 조선소에 일감을 발주했다며 네덜란드 형법에 따라 ‘인신매매를 통한 수익 창출’ 혐의로 해당 회사들을 법원에 고소했습니다.

네덜란드 검찰은 그러나 1년의 수사 끝에 지난해 12월 선박 회사들의 유죄를 증명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기소를 포기하고 수사를 중단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 항소 건에서도 원고 측 변호를 맡은 네덜란드 로펌의 바바라 반 스트라텐 변호사는 20일 VOA와의 통화에서 “검찰 역시 조선소에서 강제 인신 동원과 착취가 행해진 것을 인정했다”며 “그러므로 선박들은 범죄로 인해 건조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바바라 반 스트라텐 변호사] “The prosecutor also admitted that there was human trafficking and exploitation going on at the shipyard. All those vessels have been built with crime. That's an argument that the prosecutor does not address in its dismissal, and which we would very much like a Court of Appeal to look at.”

반 스트라텐 변호사는 “검찰이 기소를 포기하는 문서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항소법원에서는 이런 부분에 주목해주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2018년에도 네덜란드에서는 폴란드 조선소에서 수 년 동안 일했던 북한 노동자가 네덜란드의 원청 선박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노동자는 북한 정권에 의해 외화벌이에 내몰렸고, 여권을 압수당한 상태에서 하루 12시간씩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면서 외출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그의 변호를 맡았던 반 스트라텐 변호사는 북한 노동자가 폴란드 현지 노동자의 절반 수준 임금을 받았으며, 그나마 북한 당국이 임금을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네덜란드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반 스트라텐 변호사는 당시 원고였던 탈북 노동자가 이후 항소를 원치 않아 사건이 종결됐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라 스트라다와 함께 맡은 이번 사건의 경우 네덜란드 선박 회사들이 더 깊이 개입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바바라 반 스트라텐 변호사] “In this particular case, we say that the Dutch companies have been very involved. They had their own workers walking around there. The Polish shipyard is called a partner, which is literally because they were so working so closely with Dutch companies that they considered it a partnership.”

네덜란드 선박 회사 직원들이 현장에 있었고, 폴란드 조선소는 네덜란드 회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 회사의 협력업체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항소법원이 사건을 다시 검토한다 해도, 검찰이 수사를 재개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사건을 담당하는 수잔나 호프 라 스트라다 조정관은 이번 사건에 대해 “유럽연합과 네덜란드 차원에서 (노동 착취) 기업들이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인식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수잔나 호프 라 스트라다 조정관] “We also feel that we should use this to raise awareness over to at EU level and the Dutch level that companies cannot easily get away with it.”

네덜란드 라이덴대학교의 북한 전문가인 렘코 브뢰커 교수 역시 “적어도 누군가는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착취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준다는 점에서 이번 항소가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렘코 브뢰커 라이덴대 교수] “The appeal is significant because it makes clear that the exploitation of North Korean workers abroad is taken seriously by at least some people. It brings to the footlight again what has happened and underlines the need for the clear enforcement of laws against exploitation and forced labor.”

브뢰커 교수는 아울러 이 사건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조명해주고, 착취와 강제 노역에 대한 명백한 법 집행의 필요성을 강조해준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은 외화 벌이를 위해 수많은 자국 노동자들을 해외의 열악한 작업장에 보내 강제노역을 시키고 임금을 착취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미 국무부는 지난 7월 2022 인신매매 실태보고서에서 북한을 20년 연속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로 지정했습니다.

VOA 뉴스 박승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