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북한 농업 해법, 가족농 등 구조개혁부터 시작해야”

지난해 5월 북한 삼봉협동농장에서 농민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

북한이 식량을 증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가족농 등 구조개혁에 있다고 전문가들이 진단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농업을 `주타격 전방’이라며 증산을 독려하고 있지만, 농업을 정치논리로 보는 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농업을 “경제건설의 주타격 전방”이라고 강조한 후 농업 증산을 대대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조선중앙방송] “지금 각지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올해 여러분의 올해 생산투쟁을 물심양면으로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떨쳐나섰습니다. 정면돌파전의 주타격 전방 농업 부문에서 이룩되고 있는 혁신적인 소식들은…”

북한 당국은 지난해 대풍작을 거뒀다고 주장하며 농업의 과학화, 기계화, 종자 혁명 등의 구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경작지를 인공위성 등을 통해 다각도로 분석하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들은 북한의 지난해 곡물생산량이 평년 수준이었다며, 북한을 다시 식량부족국가에 포함시켰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주타격 전방’ 구호나 기계화·과학화를 외치지 않아도 농업구조를 개혁하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 조지타운대학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22일 VOA에, 북한이 집단(협동)농장을 해체하고 가족농으로 전환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 would say it’s very simple. They need to decollectivize, maybe not all at once decollectivize but they need to be moving steadily toward the collectivization. What that means is family farms.”

모든 집단농장체제를 한 번에 해체하지 않더라도 과거 중국처럼 경작지를 농가에 분배하고, 자율 생산과 판매를 허용하면 생산량을 크게 늘일 수 있다는 겁니다.

브라운 교수는 북한처럼 산악지대가 많고 토양도 좋지 않아 벼농사마저 변변치 않았던 중국 산둥성이 20여 년 전 가족농으로 전환한 뒤 5년 만에 생산량이 50% 증가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런 구조개혁 후에 어떤 기술과 기계를 사용하고 도입할지, 무슨 작물을 재배해 판매하거나 다른 곳에서 수입할지를 결정하는 게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류란 겁니다.

북한 주재 외교관 출신인 바실리 미헤예프 러시아 국제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아태연구센터장도 21일 VOA에, 북한은 개혁에 실패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 집권 시절의 소련과 비슷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미헤예프 센터장] “It’s absolutely similar to the Soviet Union’s situation after Gorbachev took power. What was main difference between Russia and China? Why China succeed it? Because private property was allowed in China.”

옛 소련은 사유재산을 절대 허용하지 않아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결국 체제 붕괴로 이어졌지만, 개인농과 자유로운 생산을 허용했던 중국은 정권을 유지하며 식량 문제까지 해결했다는 겁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이 시도했던 포전담당 책임제는 외부에서 예상한 가족 중심이 아니라 규모를 줄인 분조관리에 그쳤고, 생산량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출신인 한국 국민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에서, “포전담당제가 시작됐을 때 분조가 바로 농민가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 당국이 수확물 분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당국자나 군대가 여러 구실을 내세워 약속보다 더 많은 식량을 가져가 농민들의 불만이 많고, 처음처럼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중국 내 북한 소식통은 21일 VOA에, “군량미와 수도미 등 중앙당과 도 당의 요구가 늘어 농민이 인센티브를 기대하기 힘들고, 지방 관리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생산량을 축소 신고해 빼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습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태영호TV)에서 “북한 농업전선의 정면돌파전은 구조개혁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태영호 전 공사] “진정한 자력갱생은 바로 농민들이 농장 포전을 자기집 포전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구조를 만드는 겁니다…말로만 분조관리제, 포전도급제 하지 말고, 1946년 3월 토지개혁을 했을 때처럼 땅을 세대별로 다 나눠주고 총적 관리와 지도를 농장관리위원회가 하면 됩니다. 농민들의 생산물도 시장가격에 근사한 가격으로 국가가 사들이면 2~3년 내로 농업생산이 쭉 올라갑니다.”

사회주의 경영 방법으로 정면돌파하지 말고 중국과 베트남처럼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외부의 지원이나 제재 해제 없이도 농업 생산이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김영훈 선임연구위원은 제도 개혁뿐 아니라 취약한 농업생산 기반과 농자재 공급이 함께 가야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영훈 위원] “현 상황에서 북한이 사회주의 제도를 개혁해도 물적 토대, 물질 자본이 크게 뒷받침되거나 아니면 일시적으로 3~5년 간 생활필수품과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 상태로 외부에서 조달되지 않으면 지금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겠죠.”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은 22일 VOA에, 북한의 슬픈 현실은 당국이 농업의 과학화와 기계화 구호를 외치지만, 농업의 대부분을 사람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농업 모든 분야에서 기계화가 이뤄진 미국이나 한국과 달리 북한은 지금도 사람과 소가 농사를 짓는 모습을 농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기반이 아주 빈약하다는 겁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Tractors are not working well. they are too heavy. There is not enough fuel. There is nothing enough spare parts.”

소바쥬 전 소장은 북한이 선전하는 트랙터들은 작동이 잘 안 되고 무거우며, 연료와 부품도 부족해 총체적인 난국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농업전문가인 이중용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북한은 트랙터가 경지 면적 20~30헥타르당 한 대 정도 보급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쓸만한 게 없다며, 남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한국 정부의 협력 제안을 거부한 채 농업 구조개혁에 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들은 거의 매일 농업생산은 “민족자본, 국가존엄을 지키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