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석탄 거래 시도 당사자들 상반된 주장…“제 3국 통한 불법 거래 가능성 여전”

북한 라선항에 선적을 앞둔 석탄이 쌓여있다. (자료사진)

유엔 보고서에 불법 석탄 거래 당사자로 지목된 한국 회사 관계자가 북한 석탄인지 몰랐고 실제 거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그러나 이 회사와 인도네시아 브로커 간 북한 석탄 거래 시도를 지적한 인도네시아의 보고를 주목하고, 석탄의 행방을 조사 중입니다. 함지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발표한 올해 보고서에는 북한산 석탄 2만5천500t을 실은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 호가 지난해 4월 인도네시아에서 억류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299만 달러어치에 달하는 이 석탄이 환적될 예정이었고, ‘에너맥스’라는 이름의 한국 회사가 석탄의 ‘최종 목적지’이자 ‘수령인’으로 확인됐다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조사 결과도 소개돼 또 다른 석탄 거래 정황이 드러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산 석탄의 구매자로 지목된 ‘에너맥스’의 이 모 대표는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이 대표는 14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3월 인도네시아의 브로커로부터 인도네시아산 석탄에 대한 거래 제안을 받은 뒤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이후 석탄 납품일이 지켜지지 않아 거래를 취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보고서에 공개된 당시 거래 계약서에는 ‘에너맥스’가 구매자로, 홍콩의 ‘노바 인터네셔널 무역회사’가 판매자로 나와 있습니다. 이에 ‘노바 인터네셔널’ 측은 전문가패널에 자신들은 해당 계약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이 대표는 인도네시아 브로커가 아닌 홍콩 회사와 계약을 맺은 이유에 대해 “인도네시아 브로커의 요구에 응한 것뿐”이라며 브로커 측이 절세를 위해 홍콩 회사를 이용하려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석탄이 (지난해) 5월까지 들어오지 않고, 환적 이야기가 나와 이상한 감을 느꼈지만 인도네시아에 북한 석탄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해당 석탄을 납품하려 했던 한국의 거래처에 자신이 속은 것 같다고 설명했고, 결국 거래는 없었던 일이 됐던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대표가 언급한 인도네시아 브로커는 인도네시아 국적자인 하미드 알리입니다.

올해 전문가패널 보고서 역시 알리를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리는 지난해 12월19일 전문가패널 측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이 대표와는 상반된 주장을 펼쳤습니다.

보고서 부록에 공개된 알리의 이메일에 따르면 그는 북한 국적자 정성호로부터 러시아산 석탄 판매에 대한 중개 요청을 받은 뒤, 에코 세티아모코라는 인물을 소개합니다.

정성호는 이후 석탄 환적 비용으로 76만 달러를 지불했는데, 알리는 정성호 측이 판매 계약이나 환적과 관련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와이즈 어네스트’ 호를 인도네시아로 보내 억류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세티아모코가 선박과 화물의 억류의 해제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해당 석탄을 구매하고 비용을 지불했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에너맥스’ 관계자가 연락을 취해왔다는 게 알리의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에너맥스’ 측은 신속하게 환적을 마친 뒤 이 선박을 한국의 포항으로 보내달라고 종용까지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알리는 자신들이 당시 석탄 거래의 브로커 역할을 맡지 않았다며, (당시 에너맥스의) 거래 역시 인도네시아가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석탄의 소유주와 이뤄진 만큼 자신들은 ‘에너맥스’를 모른다고 이메일을 통해 밝혔습니다.

알리의 주장을 종합하면 자신들은 러시아산 석탄 판매에 대한 중개 요청을 받았을 뿐, 에너맥스와는 거래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또 에너맥스가 자신이 아닌 제 3자에게 석탄 비용을 지불했다고 주장한 점을 근거로 이번 거래의 연관성을 부인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지난해 3월11일 와이즈 어네스트 호가 북한 남포 항에서 석탄을 싣고 있는 장면(왼쪽)과 지난해 4월9일 인도네시아 인근 바다에 머물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유엔 안보리 보고서에 공개됐다.

그러나 이 대표는 자신들이 석탄 비용을 지불했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습니다.

구매 계약을 체결한 석탄의 운송이 지연돼 ‘돈을 냈는데 왜 보내지 않느냐’고 말한 것일뿐 실제 석탄 값을 지불한 적은 없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당시 알리 측과의 거래가 처음이었던 만큼 계약금 조차 함부로 보낼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대표는 이번 사건이 불거진 이후 전문가패널과 한국의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과와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조사를 받았으며, 돈 거래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회사의 재무제표도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알리 측과는 해당 석탄의 원산지 증명서를 주고 받는 단계에도 가지 않은 만큼 실제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문제의 석탄이 한국으로 반입되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한국 외교부는 12일 VOA에 “(한국) 정부는 에너맥스를 통해 해당 석탄이 수입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면서 한국 기업들에 대한 적절한 주의 의무 환기 차원에서 “향후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거래에 관여할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위반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고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전문가패널은 보고서에 “인도네시아 정부와 알리 그리고 세티아모코에게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2만5천500t의 석탄이 압류돼야 하며, 브로커들도 석탄을 판매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통지했다”고 명시한 바 있습니다.

다만 전문가패널은 해당 석탄이 선박에서 하역됐다는 어떤 확인도 받지 못했다며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유엔 안보리 전문가패널에 제출한 북한 석탄 환적 사건 관련 서한.

미국 측도 이번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난해 9월 유엔 안보리에 보낸 서한에 따르면 지난해 7월2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주재 미국 대사관은 인도네시아 정부에 형사사법공조(MLA in Criminal Matters)를 요청했고, 관련 서류 목록 제출 요건을 포함한 해당 요구에 대한 처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VOA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알리에게 이번 사안을 문의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편 이번 사건을 통해 북한산 석탄이 제 3국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석탄으로 속여 북한산 석탄이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사례가 이번 보고서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북한 측은 다른 사업을 가장해 현지 브로커에게 접근한 뒤, 이들을 통해 석탄 판매를 시도한다는 정황 또한 이번 보고서가 지적한 사실입니다.

실제로 전문가패널이 공개한 알리의 이메일에는 최초 북한 대사관 측이 정성호라는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 알리에게 접근했으며, 이후 정성호가 자신의 방문 목적을 ‘조선문화센터’ 설립 가능성 타진 때문이라고 소개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정성호는 노후 선박의 폐선작업과 관련된 사업을 알리에게 제안했지만, 이후 폐선작업 대신 북한산 제품에 대한 유통사업을 논의했고, 이 때 석탄 판매를 요구했다는 설명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북한산 석탄은 인도네시아산 석탄으로 둔갑했고, 한국 측 석탄 수입업자에게 판매가 시도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7년 한국으로 유입돼 지난해 큰 논란이 일었던 북한산 석탄 역시 러시아산으로 둔갑하는 과정을 거치는 등 전체적으로 비슷한 수법이 이뤄졌습니다.

실명을 밝히길 거부한 석탄 업계 관계자는 14일 VOA에 “상대 브로커가 원산지 증명을 속이는 방식으로 거래를 시도한다면 북한산 석탄은 제 3국에 유입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현지 석탄의 시세보다 조금만 낮춘다면, 업자들마저 속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지난해 석탄 반입 문제가 크게 불거진 이후 원산지 증명에 대한 한국 세관 당국의 확인규정이 강화돼, 상황이 조금 개선된 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세관 당국이 원산지 증명서를 육안으로 확인한 뒤 통관을 시켰지만, 지금은 해당 국가에 원산지 증명을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