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선언 번역 논란…당시 청와대 “종전선언을 위한 회담 올해 추진” 확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후 판문점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남북 정상이 채택한 판문점선언의 영문 번역본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새롭게 공개된 공식 번역본에 따라 남북이 올해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올해 4월 한국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합의가 ‘연내 종전선언’이 아닌 ‘종전선언을 위한 회담을 올해 추진한다’고 외신 기자들에게 밝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 함지하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이번 논란을 요약해 보면 판문점선언의 어떤 영문 번역본을 보느냐에 따라 합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당시 번역돼 최근까지 통용되던 청와대용 ‘번역본’, 9월6일 남북이 공동으로 유엔에 제출해 11일 공개된 ‘번역본’, 그리고 북한이 공개한 번역본이 있는데요. 유독 ‘종전선언’과 관련한 3조3항의 내용에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청와대의 번역만을 보면 남북은 종전선언을 위한 3~4자 회담 개최를 “합의”했다는 것이고요. 남북이 유엔에 제출된 번역은 연내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겁니다.

진행자) 판문점선언 원문, 그러니까 국문 자체가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습니까?

기자) 네,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 당시에도 외신기자들 사이에 작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저는 남북 정상이 만났던 4월27일 VOA 특파원으로 한국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한국 주재 외신 기자들이 소통을 하던 청와대 외신기자용 ‘단체 카톡방’ 즉 모바일 메신저 채팅 서비스에 미 유력 일간지 한국계 특파원이 한국어로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종전선언을 올해 한다는 겁니까? 아니면 회담을 올해 추진한다는 겁니까?” 그러자 청와대 관계자는 곧바로 “종전선언을 위한 회담 올해 추진합니다”라며 국문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내려줍니다. 이후 이 특파원은 “올해 부분과 협정부분 분명히 해주세요. 올해 회담추진이라고 (청와대 모) 비서관님이 말했으니 그리 이해하겠습니다”라고 거듭 글을 올립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4월 27일 외신 기자와 청와대 관계자의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내용. 판문점선언 3조 3항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청와대 관계자가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다.

진행자) 종전선언을 언급한 3조3항이 ‘연내 종전선언’이 아니라 ‘종전선언을 위한 회담’을 한다는 뜻이라고 청와대가 확인해 준 거군요?

기자) 네, 한글 원문 자체가 두 가지 해석을 낳을 수 있었던 만큼 원문을 영어 등 외국어로 번역해서 기사화해야 하는 외신기자들은 올해 ‘종전선언’한다는 뜻이냐, 아니면 ‘종전선언을 위한 회담’을 한다는 뜻이냐를 명확히 해야 했던 겁니다. 그런 만큼 기자들은 해당 채팅 서비스에서 3조3항을 ‘먼저 번역해 달라’며 이 부분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당시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 관련 웹사이트에 3조3항과 관련해 틀린 번역을 올렸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기자가 ‘3번’ 즉 3항이 영문과 한글이 다르다는 문제를 지적한 건데요. 그러자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가 “3번 확인/수정 중입니다”라며 최종본을 파일형태로 올리겠다고 밝힙니다.

진행자) 함 기자를 비롯해 당시 해당 채팅 서비스에 접속한 기자들은 청와대의 이 같은 해석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 채팅 서비스에는 약 140여명의 외신 기자들이 있었는데요. 대부분 종전선언과 관련해선 ‘회담을 합의했다’는 해석으로 기사를 작성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청와대 관계자가 분명히 종전선언을 위한 회담을 올해 추진한다는 뜻이라고 확인해줬으니까요. 이는 한국 언론들도 마찬 가지였는데요. 아마 같은 내용으로 브리핑을 받았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만약 청와대가 처음부터 ‘종전선언 연내 합의’라는 해석을 내렸다면, 당시 VOA를 비롯한 여러 언론들의 기사 내용은 달랐을 겁니다.

진행자)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뿐 아니라 청와대가 곧바로 공개한 영문 번역도 같은 내용을 반영하지 않았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따라서 당시까지만 해도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과 청와대의 영문 번역은 일치했었습니다. 미 터프츠대학 이성윤 교수도 11일 VOA에 최초 채택된 판문점선언 문구 자체에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청와대의 영문 번역본이 이런 오해를 해소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청와대는 당시 번역문을 관련 웹사이트에 게재하면서 ‘비공식(unofficial)’이라는 전제를 달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2달 뒤인 6월 청와대가 영문으로 발행한 ‘남북정상회담 결과집(Results of the 2018 Inter-Korean Summits)’에도 동일한 번역본이 실렸습니다. 청와대 공식 문건에 ‘비공식 번역’을 싣는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고, 실제로 해당 번역엔 ‘비공식’이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그런 만큼 VOA도 이 책자에 실린 번역본을 근거로 기사를 작성했고요.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12일 저와 통화하면서 ‘비공식’이라는 말이 빠진 건 담당 부서의 실수라며, 주의 조치하겠다고 해명했습니다.

청와대가 6월 발행한 '평화를 향한 여정' 영문판 28페이지에 실린 판문점선언 3조 3항 (붉은 네모 안)

진행자) 그런데 문제의 번역본이 비공식이라고 해서, 그 이후 청와대가 공식 번역본을 내놓은 건 아니었잖아요? 적어도 9월11일 남북이 합의한 공식 번역본이 공개되기 전까지는요.

기자) 이 때문에 ‘CNN’ 등 일부 외신들은 판문점선언 전문을 공개하면서 청와대가 발표했다는 것을 근거로 해당 번역본에 ‘공식(official)’이라는 표현을 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그건 해당 언론들이 실수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문제는 9월11일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공식 번역본’이 유엔에서 공개되기 전까진 외신 기자들은 물론 비한국어권 인구는 종전선언에 대해 기존의 해석, 즉 ‘종전선언을 위한 회담에 합의했다’는 내용이 판문점선언에 담긴 것으로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행자) 외신과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 정부는 어떻습니까? 남북 정상의 합의 내용을 분명 한국 정부차원에서도 배포를 했을 텐데요.

기자) 판문점선언의 공식 번역이 9월에야 공개된 점을 감안하면 이 또한 궁금한 사항입니다. 이 때문에 VOA는 미 국무부와 백악관 등에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번역본을 받았는지 문의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같은 질문을 청와대에도 했는데요.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시간으로 13일 “미국 등 유관국에는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구두로 충분히 전달해 왔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문서로 전달하지 않고, 구두로 했다는 건가요?

기자) 판문점선언 번역본을 제공하고, 내용을 구두로 전달했다는 건지, 아니면 구두로만 전달했다는 건지 정확히 알 순 없습니다. 이 부분은 추가 취재를 통해 더 밝혀져야 할 것 같은데요. 문서가 아니라 구두로 전달받았는가라고 13일 국무부에 다시 물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종전선언에 있어 남북이 어떤 합의를 이뤘는지, 그 의미가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에게 이 내용이 어떻게 전달됐는지 좀 더 확인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진행자) 번역 문제로 넘어가 보면요. 일각에선 북한 측 입장을 따랐다, 이런 주장도 나오고 있군요.

기자) 종전선언을 연내에 한다는 것만큼은 북한 번역과 유엔에 제출된 공식 번역이 사이에 차이가 없습니다. 다른 부분은 북한이 공개한 것과 유엔에 제출된 것이 동일하진 않습니다. ‘합의’라는 단어를 넣어서 설명을 하면 이해가 빠를 텐데요. 북한의 번역본에는 총 3개의 합의가 등장합니다. 연내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했고, 정전협정을 평화합의안으로 대체하기로 합의했고, 지속 가능하고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3자,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반면 유엔에 제출된 번역에는 2개의 합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연내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했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3자,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입니다.

진행자) 그래도 판문점선언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이 김정은 국무위원장보다 앞에 나와 있는데, 유엔에 제출된 ‘공식’ 번역본에는 순서가 바뀌어있지 않습니까?

기자) 이와 관련해 한국 외교부는 유엔 문서상 2개 이상의 국가가 명시될 경우, 국호의 영문 알파벳 순서에 따라 작성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판문점선언' 3조 3항의 3가지 영문 번역

[한글 원문]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청와대 번역] “During this year that marks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actively pursue t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Koreas and the United States, or quad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Koreas,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th a view to declaring an end to the War, turning the armistice into a peace treaty, and establishing a permanent and solid peace regime.”

3자, 4자 회담 개최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
- 종선선언 하기 위해
-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 체제 구축하기 위해

[북한 번역·조선중앙통신] “The north and the south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Agreement, replace the Armistice Agreement with a peace accord and actively promote the holding of north-south-U.S. tripartite or north-south-China-U.S. four-party talks for the building of durable and lasting peace mechanism.”

1. 연내 종전선언 하기로 합의
2. 정전협정을 평화합의안으로 대체하기로 합의
3. 지속 가능하고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3자, 4자회담 개최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

[유엔 제출 번역] “The two sides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 that marks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Agreement and actively promote the holding of t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sides and the United States, or quad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sides,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th a view to replacing the Armistice Agreement with a peace agreement and establishing a permanent and solid peace regime.”

1. 연내 종전선언 하기로 합의
2.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3자, 4자회담 개최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

진행자) 전문가들의 입장도 들어봤죠?

기자) 민감한 사안이어서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는데요. 우선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터프츠 대학 이성윤 교수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했습니다. 남북이 올해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를 이번 유엔에 제출된 문서에 남겼다는 겁니다. 특히 종전선언을 단기간 내 이루자는 메시지를 유엔에 보내고, 미국을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연구원도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에 대해 약간의 유연성을 만들고 싶어했던 것 같다며 이번 사안을 분석했고요. 스티븐 노퍼 코리아소사이어티 부회장도 종전선언과 새로운 현실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식이 달라졌고, 이에 대한 의지 또한 강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진행자) 결국은 종전선언을 빨리 이뤄야 한다는 남북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거군요?

기자) 네, 브루스 베넷 랜드 연구소 선임연구원이 12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최초 번역본과 공식 번역본 사이에 의미 변화에 주목하면서 “남북이 평화협정을 이루겠다”고 하는 더 강한 의지가 공식 번역에 담겼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의도에도 집중했는데요. 북한은 한국에서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의 주둔, 그리고 미-한 동맹의 정당성을 없애는 게 목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의 주둔에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지만, 김 위원장은 협정이 맺어지면 미국과 한국 내에서 미군 철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북한이 전쟁을 끝내자고 말하는 상황에서도 핵 무기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하고 확장하고 있다며, 종전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진행자) 이번 논란을 보도한 데 대해 일부 한국 언론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번에 유엔에 제출한 판문점선언 번역본이 합의에 충실한 번역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일부 언론들이 이 같은 주장을 그대로 보도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현재 미국과 북한이 ‘종전선언’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 속에서 이번 사안을 바라봐야 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북한과 이룬 합의가 어떤 내용이냐는 것입니다. 지난 4월 청와대 관계자는 물론, 당시 공개된 번역본, 그리고 6월에 발행된 ‘결과집’은 남북의 합의가 종전선언을 위한 회담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달 제출된 유엔 번역본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미 합의가 이뤄진 판문점선언이 왜 또 한 번의 합의를 거치면서 ‘종전선언’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낳을 수 밖에 없었는지 여전히 궁금증은 남아 있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함지하 기자와 함께 종전선언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을 내렸던 판문점선언 번역본과 관련한 내용을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