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제재 선박, 돌연 사라져...식별장치 껐을 가능성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민간웹사이트 ‘마린트래픽’에 게재된 중국 바이취안항 인근 위성사진. 붉은 원으로 표시된 배가 유엔 대북제재에 포함된 페트렐 8호다. 사진 오른쪽 아래 'ㄱ' 모양으로 휘어진 구조물은 석탄을 하역하는 부두다.

중국 근해에서 포착됐던 유엔의 제재 대상 선박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습니다. 국제법에 따라 상시 켜둬야 하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함지하 기자가 보도합니다.

문제의 선박이 사라진 건 현지시간으로 1일 오전 6시46분입니다.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마린트래픽(MarineTraffic)’에 따르면 ‘페트렐 8’ 호는 이 시점을 끝으로 더 이상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통한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VOA’는 AIS 신호가 끊기기 약 2시간 전 ‘페트렐 8’호의 움직임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페트렐 8’호는 지난달 3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이 제재해 중국 등 유엔 회원국으로의 입항이 금지된 선박입니다. 그러나 지난달 18일부터 석탄을 취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랴오닝성의 바위취안 항에서 약 8km 떨어진 해상에 열흘 넘게 떠 있는 모습이 포착됐었습니다.

또 이보다 앞선 7일부터 17일까지 산둥성의 옌타이 항 인근에 머문 기록을 남겼고, 제재 부과 시점 이후인 6일에는 산둥성의 또 다른 항구인 웨이팡 항에 실제 입항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페트렐 8’ 호는 이처럼 지난 한 달 동안 AIS 신호를 꾸준히 보내왔었지만 1일 돌연 신호가 끊긴 겁니다.

현재로선 ‘페트렐 8’ 호가 인위적으로 AIS를 껐거나, AIS 수신이 잘 되지 않는 지역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박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AIS는 선박이 자체적으로 켜거나 끌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따라서 통상 추적을 피하고자 하는 선박들이 AIS를 끄는 방식으로 운항을 하고 있습니다.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에서 활동했었던 윌리엄 뉴콤 전 미 재무부 분석관은 지난해 ‘VOA’에 북한 선박이 AIS를 끄는 사례가 종종 확인됐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면서 파나마에서 억류됐던 청천강 호가 AIS를 끄고 운항하다가 적발된 대표적 사례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북한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AIS를 끄는 것 외에도 이름을 바꾸거나 선박의 국적 혹은 운항 회사를 바꾸는 방법을 자주 동원했다고 뉴콤 전 분석관은 지적했었습니다.

또 지난해 3월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4차 핵실험 등에 대응한 결의 2270호를 통해 북한 원양해운관리회사(OMM) 소속 선박들을 대거 제재했을 당시, 해당 선박들이 1~2일 간격으로 AIS 신호를 바탕으로 표기되는 지도에서 일제히 사라지기도 했었습니다.

국제법은 전 세계 선박들이 AIS를 상시 켜둔 상태로 운항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AIS를 끄고 운항을 한다고 해도 선박을 제재할 만한 국제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제해사기구(IMO) 관계자는 지난해 ‘VOA’에 “IMO는 제재를 가하지 않기 때문에 각 회원국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었습니다.

VOA 뉴스 함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