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선언 10주년, 풀리지 않는 납북자 문제

지난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만나 악수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북-일 평화선언’을 발표한 지 오늘로 10년이 됩니다. 평화선언에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 방안이 포함돼 있지만 아직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일본간 지난 10년간의 협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유미정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진행자) 유미정 기자,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선언을 발표한 지 벌써 10년이 됐군요.

기자) 예, 그렇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002년 9월 17일 북한을 전격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오랫동안 부인해 왔던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북한은 구체적으로 납치 피해자 13명 가운데 4명은 생존, 8명은 사망, 1명은 입북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또 일본 측이 조사를 의뢰하지 않았던 소가 히토미 씨의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생존을 확인했습니다. 북한은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 후인 2002년 10월 15일, 생존해 있다고 밝힌 납북자 5명을 일본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들의 귀국은 24년만에 이뤄졌습니다.

진행자) 고이즈미 총리와 김 위원장은 그로부터 2년 뒤에 다시 만났죠?

기자)예, 2004년 5월 22일 제 2차 북-일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당시 회담에서 안부가 불분명한 일본인에 대해서 북한 측이 진상 규명을 위한 즉각적이고도 철저한 조사를 재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1차 정상회담 직후 생존자 면담과 안부 미확인자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북한에 사실 조사팀을 파견했었는데요, 일본 정부는 북한이 제공한 정보가 처음부터 제한적이었고 내용면에서도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의문점을 지적하고 더 많은 정보 제공을 요청했지만 충분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진행자)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2차 정상회담을 마치면서, 납북 일본인 피해자들의 가족을 데리고 귀국했지요?

기자) 네, 고이즈미 총리는 1차 정상회담 후 일본에 귀국한 납북 일본인들의 북한 잔류 가족들 가운데 5명을 데리고 귀국했습니다. 이어 두 달 뒤인 7월18일에는 소가 히토미 씨의 남편 찰스 젠킨스 씨와 자녀 3명의 귀국이 이뤄졌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그러면 정상회담 이후 안부 미확인자 조사에 관한 양측간 협의는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기자) 2차 정상회담 직후인 2004년 8월과 9월, 그리고 11월에 북-일 실무자 협의가 열렸는데요, 일본 측은 8명은 사망, 2명은 입북 확인 불가능이라는 북한 측의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특히 북한 정부가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 씨의 유골이라고 전달한 뼈의 일부에서 메구미의 것과는 다른 유전자 DNA가 검출됐다는 감정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일본 측은 또 납북된 것으로 의심되는 실종자 5명의 명단을 제시하며 관련 정보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이들의 입북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이후 납북자 문제를 둘러싼 북-일간의 협의는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중단됐지요?

기자) 네, 북한이 2006년 7월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그리고 10월에는 핵실험을 실시하자, 일본 정부는 미국 등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한 대북 제재를 실시합니다. 탄도미사일에 대응해서는 만경봉 호의 일본 입항 금지를 포함한 9개 항목의 제제 조치, 그리고 핵실험에 대응해서는 모든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와 북한으로부터의 모든 수입 금지 등을 포함한 4개 항목의 제제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다가 북한이 다시 납북자 문제에 대해 재조사를 약속하고 나섰지요?

기자) 예, 일본은 북한이 납치 문제를 포함한 현안 해결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경우 대북 제재 일부를 해제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밝혔고, 이에 북한은 2008년 6월 납치 문제 재조사를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8월에 열린 북-일 실무자 협의에서는 납치 문제 재조사를 위한 '조사위원회' 설치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당시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사임하자, 새로 들어선 정부가 북-일간 합의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보겠다며 조사를 보류했습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북-일간에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 게 언제인가요?

기자) 예, 일본은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고 2009년 9월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면서 납북자 문제 해결에 전력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 정권은 총선 공약으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제시했었는데요, 납치 문제 담당상을 새로 임명해 이 문제를 전담하도록 했습니다.

진행자)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이뤄진 정권교체 이후 일본이 납치 문제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일본의 민주당 정권은 지난 몇 년 동안 북한 측과 비공식 물밑접촉을 꾸준히 진행해 왔는데요, 결국 김정은 체제 출범을 계기로 지난 달 말 북한과의 정부간 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2008년 이후 4년만의 일인데요, 이 대화는 북한 내 일본인 유골 반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과장급 협의였습니다. 이 협의에서 양측은 국장급으로 대화의 격을 높이고 빠른 시일 내에 중국 베이징에서 "쌍방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항을 의제로 광범위하게 협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합의가 이뤄진 건가요?

기자) 일본 측은 납북자 문제를 의제화 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북한은 이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예비회담에서 일본인 유골 반환 문제를 논의하게 될 본회담의 실무적인 문제 만을 논의했다는 겁니다. 북한은 특히5명의 생존자를 송환한 것으로 일본인 납치 문제는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양측의 견해차 때문에 북-일 정부 당국간 본회담은 현재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양측의 입장차가 워낙 커서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진행자) 예, 북한과 일본간 평양 평화선언 10주년을 맞아 북-일 관계 현 주소에 대해 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