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 버니지아주의 한 고등학교 졸업식장. 졸업생들의 가족과 친지, 친구 등 8천명이 가득 메운 졸업식장에 보랏빛 가운을 입은 5백 명의 졸업생들이 들어서자 식장에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울립니다.
졸업 증명서를 받는 미국 학생들의 이름 사이로 익숙하지 않은 한국 이름이 호명됩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작은 체구의 다부지게 생긴 조셉 군이 단상에 올라 교장 선생님에게서 졸업장을 받습니다.
학교 생활을 잘 마쳤다며 받는 졸업장이지만 4년 전 알파벳ABC 도 제대로 모른 채 두려움과 설레는 마음으로 미국 땅을 홀로 밟았던 조셉군에겐 이 졸업장이 매우 특별합니다.
“그냥 꿈만 갖아요. ABC 도 제대로 모르고 (미국에) 온 게 엊그제 같은데, 학교도 졸업하고. 제가 북한에서 학교 같은 것 생각도 안 봤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니까.”
함경북도에 살던 조셉군은 14살 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홀로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어머니는 식량난 속에 실종됐고, 고지식했지만 자신보다 늘 가족과 이웃을 먼저 배려하던 아버지가 영양실조로 숨진 뒤였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던 이 소년의 마지막 희망은 돈을 벌어 가족을 살리겠다며 중국으로 팔려간 하나밖에 없는 누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조셉군은 기적적으로 조선족 기독교인과 한국인 기독교 선교사를 만나 따뜻한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6살이던 2007년 2월 미국의 한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난민 지위를 얻어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두려움과 설렘으로 시작한 낯선 이국땅의 삶은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조셉군이 정착 초창기 한 집회에서 고백한 말입니다.
“미국이란 국가는 저에게 자유가 무엇인지 가르쳐준 스승이며 저의 두 번째 조국입니다. 미국에서 제일 좋았던 일은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마음껏 소리높여 부를 수 있었던 겁니다. 또 밖에 나가 맘껏 운동하며 제가 즐길 수 있었던 것을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평탄하고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던 겁니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잠을 자지 못하다 늦은 새벽에 잠이 들어 학교 버스를 놓친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낯설고 물 선 미국땅에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4년 만에 받는 고등학교 졸업장. 조셉군은 졸업식 내내 돌아가신 아버지와 가족이 그리웠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닐까요. 아버니, 어머니, 누나. 저 북한에서 공부를 진짜 안 했어요. 그래서 제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면 믿기지 않아 할거예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였기에 조셉군은 난민단체의 안내로 미국인 수양 어머니 샤론씨를 만나 그녀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맘이 저를 친자식처럼 대해 주시니까 (감사해요) 제가 잘나서 친구가 많은 게 아니고 인복이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 복이 없는 건 아닌데…옆에 안 계신 대신에 친구들이라도 와 줬으니까 감사한 거죠.”
조셉 군 말대로 동네 친구들 뿐아니라 멀리 미 서부와 동부 등 여러 주에서 친구들이 졸업을 축하해 주기 위해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조셉 군은 여름 방학 때마다 자신의 미국 입국을 도와 준 대북인권단체 LiNK의 본부가 있는 서부 캘리포니아주에서 견습생,즉 인턴으로 일하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이날 졸업식에는 또 다른 특별한 축하객들이 식장을 찾았습니다. 바로 같은 도시에 살며 조셉을 친 자식처럼, 동생처럼 사랑해주던 탈북자들이었습니다.
탈북자 별이 엄마: “조셉이가 미국에 와서 훌륭히 정착하고 이젠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너무너무 기쁘고 좋아요. 앞으로 조셉이가 더 잘되게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길 무척 바라는 거예요. 오늘 졸업식장에 와서 너무너무 기뻐요.”
탈북자 신 모씨: “여기 온 첫 세대죠. 처음으로 (조셉이) 졸업을 하는데, 너무 너무 감동스럽고,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요. 진짜. 졸업할 때 보니까 눈물이 막 나오드라구요. 이제 다 컸구나. 앞으로 우리 민족의 의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졸업식이 끝난 뒤 조셉의 수양 어머니 샤론씨는 인근 식당에서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습니다.
샤론 씨는 조셉 뿐아니라 소말리아와 버마 출신 난민 등 7명의 난민 청소년을 난민 단체의 자금 지원을 받아 자신의 집에서 직접 키우고 있습니다.
샤론씨는 무사히 졸업하게 된 아들 조셉과 소말리아 출신 딸 랄마를 보며 연실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샤론 씨는 조셉이 너무나 훌륭한 아들이라며 그가 자기와 함께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고 애정 어린 농담까지 건넵니다. 그러면서 조셉은 21살이 돼 자기의 길을 개척해 나가지만 조셉과의 모자 관계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샤론 씨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소말리아 출신의 졸업생 랄마 양도 조셉이 매우 자랑스러운 친구라고 말합니다. 랄마 양은 북한과 소말리아의 다른 점을 자세히 비교하며 조셉이 대단한 친구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습니다.
내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말리아가 가장 힘든 나라로 알았었는데 조셉을 통해 북한 관련 영화 ‘크로싱’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소말리아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하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지만 독재자가 문제인 북한은 기본적인 자유조차 없다는 데 놀랐고, 그런 곳에서 홀로 탈출한 조셉이 대단하다는 겁니다.
능숙한 영어로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하는 환한 얼굴의 조셉 군. 하지만 마음 속에는 늘 조국 북한이 있습니다.
“북한의 많은 사람들한테 주어지지 않은 기회가 저한테 주어졌는데, 헛되이 하면 제가 그분들에게 얼굴 들기도 힘들 것 같으니까.열심히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거죠.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북한의 친구들을 기억하며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조셉군은 올 가을 새 학기부터 미 북동부의 한 대학에서 제3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의 눈에 과거와 같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 조셉군의 얼굴에는 도전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뿜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돈도 벌고 공부도 많이 해서 일단 저같이 가치 없는 사람들도 그냥 상황을 잘못 만나서 그런거지 원래 그 사람들한테도 잠재성이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어요.”
4년 전 미국에 난민으로 입국한 탈북 고아 김조셉 군이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고아로 미국에 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탈북자는 조셉 군이 처음인데요. 지난 11일 열린 졸업식에는 미국인 양어머니와 동료 탈북자들, 난민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조셉 군의 졸업을 축하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