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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특집 - 2부] 10년의 전쟁, 돌아온 영웅들


추석 연휴 직후 전달될 예정이었던 한국 정부의 대북 수해 지원 물자가 늦춰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9일 지휘자 정명훈 씨의 평양 방문을 승인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펜타곤이 테러 공격을 받은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9/11테러를 주도한 국제 테러단체 알카에다와의 전쟁이다. 이 전쟁을 위해 많은 미군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파병됐다. 파병됐다가 돌아온 병사도 있고, 영광의 상처를 안고 돌아온 이들도 있으며 영영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도 있다. 이 전쟁도 어느덧 10년이 됐다.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Ft. Lewis) 미군기지. 젊은 병사들이 임의로 꾸며놓은 마을에서 가짜 총을 들고 훈련에 임하고 있다. 몇 분안에 적을 찾아 격파하는 훈련이다. 이들은 이제 몇 달 후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돼 실제 아프간의 마을에서, 실탄이 든 총을 들고 적과 싸우게 될 것이다.

이들 군인 중 일부는9/11 테러 당시10대 청소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서너번씩 다녀온, 전투현장에서 뼈가 굵은 군인들이 됐다. Mason Ward 대위를 포함한 이들은 9/11 테러 이후 맞서게 된 새로운 적, 테러분자들에 대처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1: 2001년 이후 미국의 군대가 바뀌었습니다.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하면서 군사작전의 속도도 극적으로 바뀌었죠.)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미군은 더 빠르고 효과적인 최신 무기들을 갖추었다. 그리고 군인들은 어떤 복합적인 전투도 이길 수 있는 병사들로 훈련되고 있다. 새로운 전술을 가지고, 새롭게 훈련된 군인들은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라크로 향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6천명 이상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4만 4천명 이상이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영광의 상처를 입고 돌아온 이들 4만여명의 부상병들은 지금 전쟁으로 무너진 자신들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Jesse Williams 병장은 이라크에 세번째 파병됐을 때, 자동차 폭탄이 터지면서 부상을 입었다. 부인 사만다가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20살. 갓 태어난 아들을 안고 있었다.

(여1: 남편의 사고 소식은 정말 끔찍했어요. 눈앞에 캄캄해졌죠.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냥 앉아서 기다리고, 걱정하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요. 다시는, 다시는 그런 일을 또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윌리엄스 병장은 바그다드의 병원에 이송돼 뇌수술을 받았다. 이라크 전투 현장에서 뇌손상은 흔한 일. 하지만 그날 집도한 의사는 뇌수술을 처음 해보는 의사였다. 1차적인 수술을 대충 받은 윌리엄스 병장은 그 후 미국으로 이송됐고 두개골의 절반을 드러내야 했다. 수술 이후,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남2: 회복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다시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 좋은 군인, 좋은 아들이 될 수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포트 루이스 기지의 의사인 애덤 스몰 병장에 따르면 미군들의 경우 집중적인 재활훈련과 최신 의약품 등을 통해 육체적으로는 회복될 가능성이 높지만, 정신적인 상처는 오래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윌리엄스 병장은 비록 머리에 플라스틱 인공뇌를 붙이고 평생 전쟁의 악몽에서 살아가게 됐을지라도, 군인으로의 삶에 전혀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남2: 때때로 이런 불행한 일이 있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군인입니다. 군인의 삶엔 때로 이런 희생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많은 군인들이 아프간으로, 이라크로 떠났다. 그들은 군인이라면 희생도 마땅하기에 자원해서 전쟁터로 향했다. 그 리고 영광의 상처를 안고 돌아왔다. 미국인들을 그들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Ft. Lewis) 미군기지내 한 식당. 14살 소녀 제니퍼 허긴스가 아빠와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다. 제니퍼는 9/11 테러가 났을때 네 살이었다. 테러가 난 이후 아버지 베리 허긴스 대령은 가족을 떠나4년 이상을 전쟁터에 가 있었다. 그렇기에 제니퍼는 이렇게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여2: 아빠와 이렇게 외식도 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아빠가 파병을 나가시면 이런 시간을 또 가질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아빠와 하는 순간이 제겐 보석과 같은 시간이랍니다.)

허긴스 가족은 파병을 종종 나가는 아버지로 인해 더욱 끈끈한 가족애를 갖게 됐지만, 대부분의 파병 자녀들은 부모의 장시간 부재로 인해 우울증이나 불안증세를 겪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은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허긴스대령의 부인 미셸도 5년전 남편이 자살폭탄 공격을 받아 부상했을 때, 딸 제니퍼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여3: 아빠가 전쟁터에서 미끌어져 넘어지셨어 라고 했죠. 9살난 딸의 얼굴을 보면서, 누군가가 아빠 앞에서 자살 폭탄을 터뜨렸고 그 때문에 아빠가 다치셨어 라고 말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또 이야기 했죠. 아빠가 1년에서 1년 반 정도 또 집에 못돌아 오실거야 라구요)

이처럼 미국 군인들의 전쟁터로의 파병은 남겨진 가족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오코너씨는 지난 8년동안 남편이 세번이나 파병됐었다.

(여4: 남편이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항상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요. 남편이 떠날 때마다 마음 속 한 구석엔 이런 두려움이 늘 있지만, 마음 속에 묻어둬야만 하는거죠. 남편이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아무도 남편을 문 밖으로 내보내지 못할겁니다.)

미국의 군인들은 전원 자원병들이다. 하지만 자원해서 싸우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한 고충과 고통을 오히려 쉽게 감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선택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또 이라크로 떠난 군인들, 그리고 기꺼이 그들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가족들. 전쟁의 상처가 주는 아픔이 큰것을 알지만, 이 전쟁으로 9/11 테러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전쟁터로 떠나고 또 떠나보낸다. 미군과 그의 가족들. 10년의 전쟁이 만들어낸 또 다른 희생자들이자 진정한 영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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