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미국 의회에서 열린 북한 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 총회. 여러 나라 의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오길남 박사 가족의 사연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아빠 난 혜원이야요. 며칠 전에 아버지와 함께 생일을 즐겁게 보내는 꿈을 꿨어요. 조국에도 훌륭한 아버지가 계신데 아버지 사랑이 그립습니다. 아버지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너무 오랜만에 아빠라고 소리내어 부르니 눈물이 납니다.”
사회를 맡은 한국 자유선진당 소속 박선영 의원은 북한에서 보냈다는 오 박사의 딸 혜원 양의 목소리를 듣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합니다.
“가슴이 많이 아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이) 사진 속에 나오는 (사이) 정말 귀엽고 예쁜 혜원이 규원이 지금 어떻게 돼 있을까? 생각하면 더 마음이 저리시리라 생각합니다.”
한국 국적의 오길남 박사는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5년 북한 정부의 교수직 제의에 속아 가족을 데리고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정말 바보였습니다. 북행을 결정한 것은 정말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고 바보스런 짓이었습니다.”
오 박사는 대남방송에 강제 투입되고 유럽의 한국 유학생을 포섭하라는 지시를 받자 크게 실망해 벨기에에서 탈출했습니다. 부인 신숙자 씨가 유럽에서 탈출해 자신들을 구출하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 박사의 탈출 직후 부인 신숙자 씨와 두 딸은 15호 요덕 관리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요덕에서 오 박사의 가족을 본 탈북자들의 증언입니다.
“옥수수 밀가루 같은 것을 가질러 갔다가 보면 눈이 커요. 이 여자가 얼굴이 하얗고” “그럼요 직접 보고 실물이 더 예뻐요. 아이들이 살색이 하얗고.” “와플을 만들어줬지요. 그 때는 그게 와플인지 몰랐고 그 분을 독일댁이라고 불렀죠”
오 박사의 사연은 최근 신숙자 씨의 고향인 한국 경상남도 통영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출 운동을 펼치면서 널리 알려져, 한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로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 박사는 이달 초 독일을 방문해 외교부 관리로부터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약속을 받은 데 이어 지난 주 미국에서도 다양한 행사에 참석해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미국의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 등이 최대한 돕겠다는 약속을 했고,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면담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보좌진과 유엔의 인권 담당자는 조사를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오 박사와 함께 독일과 미국을 방문하며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요덕 관리소 출신 탈북자 김태진 씨는 국제사회에서 오 박사 가족 송환을 위한 풀뿌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 뿐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북한대사관에 엽서를 만들어서 넣는 자국민들이, 우리가 아니라, 그런 운동이 확산되고 있어요. 그럼 북한으로서도 머리가 아프죠. 그 나라에서 북한의 이미지가 실추되잖아요. 그럼 김정일이 야 시끄러우니까 보내라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지난 10년 간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펼쳤지만 오길남 박사만큼 관심과 주목을 받은 사례는 없다고 말합니다. 킹 특사와 유엔 관계자 면담에 오 박사와 동행한 북한 반인도범죄 철폐를 위한 국제연대(ICNK) 사무국의 권은경 간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불 보듯 뻔한 것은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증인이 없어서. 탈북자 증언을 내세워도 크게 어필을 못했는데, (오 박사의) 이런 명확한 사실 때문에 인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죠.”
북한 전문가들과 인권단체들은 특히 오 박사의 사연에 북한의 반인도범죄에 해당하는 정치범 관리소 문제, 유인 납치 문제, 어린이 수감 문제 등 핵심요소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버타 코헨 객원 연구원은 오 박사 가족의 송환 운동이 북한 관리소의 전반적인 인권 유린 문제를 제기하는 첫 관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명확한 피해자와 관리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진 가족, 그리고 여러 증언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워싱턴에 있는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오길남 박사 가족을 통해 정치범 관리소 문제를 새롭게 제기할 수 있는 길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증거가 명확한 일부 피해자들에 대한 송환 노력과 캠페인은 관리소 전반의 인권 유린를 제기하는 것 보다 해법이 쉽고 정부 간 협상에도 이 사안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한국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는 오 박사의 두 딸처럼 10살 때 할아버지의 죄 때문에 요덕 관리소에 수감돼 10년을 살았습니다. 강 대표는 어린이들이 그런 형벌을 받는 것은 북한 정권의 비도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죠. 그런 고통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그런 형벌을 가하다는 것은 체제의 비도적적인, 비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그런 대목이죠.”
유엔은 앞으로 몇 주 안에 오길남 박사 가족의 문제를 다룰 담당 부서를 선정할 예정입니다. 오 박사는 또 일부 국가의 협조로 조만간 제네바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 박사의 부인과 두 딸이 과연 확대되는 국제 캠페인을 통해 자유세계로 귀환할 수 있을지 국제사회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혜원이 규원이 그리고 아내 신숙자가 이 한국 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나를 북한으로 보내고 맞바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여러분들이 제 딸을 좀 해방시켜 주는 데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