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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사태 속 출산한 탈북 여성의 고된 삶


지난 3일 한국 의정부에서 가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 3일 한국 의정부에서 가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자료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한국 내 탈북자들의 고된 삶을 한층 더 짓누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신종 코로나 사태 속에서 갓난 아기와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한 탈북 여성이 겪고 있는 역경과 소망을 들어봤습니다.

지난 2017년 10월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 송예정(가명)씨는 요즘 벌써 50일 가까이 집밖 외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제공한 서울의 11평짜리 소형 임대아파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갓난 아기와 ‘창살 없는 감옥’에서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송 씨가 아기를 낳은 것은 지난 2월18일. 한국에서 ‘슈퍼 전파’의 진원지가 됐던 신천지 대구교회의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한국에선 이후 한동안 하루 수 백명씩 신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전 사회적으로 공포감이 퍼져나갔습니다.

송 씨는 출산 후 아기와 함께 집에 돌아온 뒤 감염 우려 때문에 두문불출했습니다. 생필품 구매도 모두 인터넷으로 하고 있습니다.

양강도 북-중 접경지대에서 살던 송 씨가 중국으로 탈출한 것은 지난 2015년. 이후 태국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한국으로 들어온 송 씨는 요즘 중국에서 8개월 동안 갇혀 지낸 일들이 떠오릅니다.

브로커의 손에 중국의 한 가정으로 팔려간 뒤 감금되다시피 지냈던 시절이 ‘신종 코로나’ 사태로 겪고 있는 현재와 닮았기 때문입니다.

송 씨에겐 무엇보다 한 달가량 조산해 인큐베이터까지 들어가야 했던 연약한 아기가 무서운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게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녹취: 송예정 씨 (음성변조)] “일단은 출산을 할 때도 코로나 때문에 마음이 많이 조이고 아기가 ‘코로나19’ 감염될 확률이 있지 않을까 많이 걱정을 했는데 일단 아기를 건강하게 잘 낳았고 지금 상태에서도 일단 밖에 나가지 못하니까 많이 우울증이 온 것 같아요.”

더욱이 산후조리가 필요한 송 씨는 같은 탈북자 출신인 남편의 얼굴도 못보고 지냅니다. 정육점을 하는 남편이 혹여 아기에게 전염병을 옮길까 봐 비좁은 아파트에 들어오지 못하고 고시원에 묵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위안을 삼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송 씨의 하루하루를 짓누릅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로부터 받는 월 60만원의 수급비로 아파트 임대료 9만원을 포함해 모든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가 정한 월 최저임금이 180만원 가량인 걸 감안하면 아기 분유값 대기도 벅찬 금액입니다.

남편이 5개월 전 시작한 정육점도 처음엔 장사가 좀 되나 싶었지만 신종 코로나 사태가 덮치면서 지금은 간신히 월세만 내는 형편입니다.

[녹취: 송예정씨] “60만원, 핸드폰비 나가고 관리비 나가고 애기 분유도 또 사야 되고 기저귀도 사야되고 하려면 진짜 너무 빡빡하게 살죠.”

먹고 살기 어려워 홀로 탈북길에 나섰던 송 씨는 북한에 두고 온 어머니와 지난 2월 브로커를 통해 전화 연락이 닿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신종 코로나’ 유입을 막기 위해 지난 1월 말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송 씨는 중국을 막아놓으면 당장 먹을 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접경 지역 고향의 사정을 잘 알기에 어머니에 대한 근심이 큽니다.

[녹취: 송예정 씨] “쌀이 일단은, 북한은 쌀이 없잖아요, 중국을 막아놓으면. 쌀이 없으니까 일단 돈이 생기면 그냥 쌀을 사는데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았어요.”

송 씨는 한국에선 전염병에 대한 국가의 의료 지원이 감사할 정도로 잘돼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송 씨는 북한에 살면서 결핵 같은 전염병들을 익히 들었지만 이를 퇴치하려는 당국 차원의 조치를 접해 본 경험이 없었다고 합니다.

송 씨는 적어도 한국에선 전염병에 걸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송예정씨] “북한은 솔직히 그런 코로나 자체가 있어도 그냥 앉아서 죽어도 국가에서 약이 나오는 일이 없는데 그래도 한국은 검사 같은 걸 다 무료로 해주고 그러잖아요. 많이 보답하고 싶죠.”

한국 정부는 최근 한국 내 ‘신종 코로나’ 확산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라며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당초 4월5일에서 2주간 연장했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의 지난 4일 브리핑입니다.

[녹취: 박능후 장관] “대다수 전문가들은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를 느슨하게 할 경우 현재까지의 성과가 모두 사라질 수 있고 외국과 같이 코로나19 감염이 급격하게 확산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는 현재와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간 더 연장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정부로선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걸 알면서도 송 씨에겐 신종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 지 모를 기나긴 어둠의 터널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송 씨에게도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고 아기가 좀 자라면 한국에서 취득한 미용사 자격증을 갖고 미용실에 취업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송 씨는 “고시원에서 고생하고 있는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며 “가능하다면 북한에 두고 온 어머니와도 함께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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