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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164주년...낡은체제 갇힌 북한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지 내일 (28일)로 164주년이 됩니다. 소련과 중국 등 과거 공산주의 맹주국들은 속속 시장경제로 체제를 전환하고 지금은 북한과 쿠바만이 외롭게 남아 있는 상황인데요. 공산주의의 어제와 오늘을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전세계 공산주의 운동은 지금으로부터 164년 전인 1848년2월 발표된 ‘공산당 선언’에서 시작됐습니다.

공산주의 사상가인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작성한 이 선언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노동자,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역이 되는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공산당 선언은 23쪽에 불과한 작은 소책자였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이 성공하면서 공산주의는 유럽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중남미 등 제3세계로 들불처럼 확산됐습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래리 닉쉬 박사의 말입니다.

[녹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래리 닉쉬 박사]”KARL MARX ABOUT WHT HE CALL…

래리 닉쉬 박사는 19세기는 산업혁명 초기로 근로환경과 노동자들의 처우가 워낙 나쁜 때여서 자본가를 타도하자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큰 호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공산혁명은 당시 봉건적인 제도와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에 놓여 있던 아시아 국가들에 큰 희망이 됐습니다.

중국은 러시아 혁명 4년 뒤인 1921년 공산당을 결성해 항일운동과 공산혁명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1949년10월 국민당 정권을 타이완으로 축출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는데 성공합니다.

러시아 혁명은 일제 식민 치하에서 신음하던 한반도의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일본 유학생 등을 통해 공산주의 이념을 접한 지식인들은 박헌영 등의 주도로 1925년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을 결성합니다. 탈북자 출신인 한국 서강대 안찬일 교수의 말입니다.

[녹취: 서강대 안찬일 교수] “말하자면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써 그런 사회주의 혁명이론이 유익하다 이렇게 받아들여졌고, 일본에 유학한 사람들이 마르크스 이론을 사회변혁의 한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이고…”

세계 최대 국가인 러시아와 최대 인구국인 중국이 공산화 되자 공산주의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등으로 확산됐습니다. 이로써 공산정권은 한 때 전세계 인구의 40%를 장악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산국가들은 1990년대들어 하나 둘씩 붕괴되거나 체제 전환에 나섭니다.

우선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1991년12월 붕괴됐습니다. 소련은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사임과 함께 해체됐습니다.

[녹취:고르바초프]

고르바초프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소련의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은 소련이 붕괴된 것은 크게 2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우선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은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였는데, 실제로는 공산당 간부들이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어 인민들을 억압하는 사회가 됐다는 것입니다. 안찬일 교수의 말입니다.

[녹취: 안찬일 교수] “소련 공산당의 멸망 원인은 간단합니다. 그 사람들은 당초 무산자가 권력을 쟁취해서 정권이 노동자, 농민을 대표한다고 말했지만 볼쉐비키 혁명 이후 그 사람들이 옷만 갈아 입은 새로운 착취계급이 된 것입니다.”

또 다른 요인은 경제난입니다. 중앙통제경제 체제를 채택한 소련은 기술자를 비롯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그레그 브레진스키 교수의 말입니다.

[녹취: 조지 워싱턴 대학 그레그 브레진스키 교수]” DISCOURAGING INNOVATION…”

소련은 통제체제 하에서 컴퓨터 등 새로운 기술혁신을 이루지 못한데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군사 분야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입하는 바람에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말았다는 겁니다.

소련이 몰락의 길을 걸었다면 중국은 공산당을 유지한 채 체제 전환의 노선을 선택했습니다.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덩샤오핑은 192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면서 공산주의 이론에 심취한 중국의 1세대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마오쩌둥 시절 공산주의의 비효율과 문화대혁명의 광기를 경험한 덩샤오핑은 1978년 개혁개방 노선을 펴기 시작합니다.

[녹취:덩샤오핑 육성]

덩샤오핑은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은 중국의 현실을 감안해 마르크스주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체제 전환은 중국의 눈부신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졌습니다. 중국은 80년대 이래 매년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지난 해에는 국내총생산(GDP)이 6조5천억 달러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의 경제대국이 됐습니다. 또 1978년 1백 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소득은 5천 달러를 넘었습니다. 다시 안찬일 교수입니다.

[녹취: 안찬일 서강대 교수] “지금 중국의 13억 인구 중에 5억이 핸드폰을 갖고 있고 인구의 70%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자본주의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죠.”

공산주의의 양대 축인 소련과 중국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거나 체제 전환에 나서자 다른 공산국가들도 하나 둘씩 공산주의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습니다.

1989년 동서독이 서독의 주도로 통일된 이래 폴란드,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유고는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습니다.

또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베트남도 1986년부터 ‘도이모이’ 정책을 통해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습니다. 쿠바 역시 최근 정치범을 석방하고 사유재산과 상행위를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결국 공산국가 중 아직까지 시장경제 등 체제 전환을 이루지 못한 나라는 북한 뿐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지도부가 정권을 유지하고 경제도 살리기 위해서는 체제 전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소리, 최원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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