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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북한, 소련식 붕괴 안 되려면 중국식 개혁 착수해야”


12월은 소련이 붕괴된 지 20주년이 되는 때입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붕괴는 북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는데요. 소련 붕괴가 북한에 미친 여파와 그 교훈을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소련이 붕괴된 지 20주년이 됐습니다.

소련은 지난 1985년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등장할 무렵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을 입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경제난과 체제 피로 현상을 겪고 있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트(개방)을 통해 소련을 개혁하려 했습니다. 또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 군을 철수하고 미국과 화해, 데탕트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국가통제 체제를 완화하고 지방과 기업의 자율권을 확대하려 했습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우크로포트 씨는 고르바초프가 민주 인사는 아니었지만 소련 체제를 효율적으로 만들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완화하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5년에 걸친 고르바초프의 개혁 조치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제난은 계속됐으며 누적된 사회적, 민족적 갈등이 불거지는 바람에 소련방 공화국간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91년 8월 군부 쿠데타로 힘을 잃은 고르바초프는 사임을 발표하고, 소련은 69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고르바초프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자신은 소련의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탈북자들은 소련의 붕괴가 북한에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여파를 미쳤다고 말합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이자 북한을 세우다시피 한 소련이 하루아침에 망하면서 북한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는 겁니다. 세계북한인총연맹 안찬일 대표의 말입니다.

“소련은 공산주의 종주국인데 소련이 붕괴됐다, 공산당이 깃발을 내렸다고 해서 그런 이념이 정당성을 잃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크게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정영태 박사는 소련의 붕괴는 중국과 함께 북한의 안보를 지탱하는 한 축인 북한-러시아 동맹이 와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남한이나 미국으로부터 군사 공격이 있을 때 소련이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군사동맹이 있었는데, 그런 단단한 동맹을 잃어버려서 안보적 상실감이 컸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련의 붕괴는 또 북한의 경제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때까지 소련은 북한에 연간 50만t의 석유를 ‘우호 가격’으로 공급해 왔는데, 소련이 붕괴되면서 석유 공급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북한경제는 소련의 붕괴를 시작으로 뒷걸음쳤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연간 1~2%씩 성장하던 북한경제는 91년에 마이너스 3.5% 성장을 시작으로 8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합니다.

소련이 붕괴되자 당시 김일성 주석은 새로운 전략적 활로를 모색했습니다. 그 해 12월 북한은 한국과 ‘남북한간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는 한편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창설을 발표했습니다.

또 김일성 주석은 이듬해인 1992년 김용순 비서를 워싱턴에 보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타진합니다.

소련이 붕괴하자 북한 당국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주민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선전, 선동 활동을 펼쳤습니다. 다시 탈북자 이숙 씨의 말입니다.

“북한은 소련이 붕괴하자 소련 주민들이 거지가 되고 장사꾼으로 전락하고 훈장도 내다팔고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고 집중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소련의 붕괴를 ‘남의 일’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북한이 스스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을 하지 않을 경우 소련처럼 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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