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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본 2004년] 폭력사태로 점철된 이라크의 한해 - 2004-12-25


2004년은 이라크에 대한 큰 기대속에 시작됐습니다. 지난 해 12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체포됨으로써 이라크 저항분자들의 폭력사태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복귀할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가라앉을 것으로 생각됐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좀더 평화롭기를 바라는 기대가 실현되기는 커녕 예상했던 것 보다 폭력사태가 더 많은 한 해가 됐습니다.

2004년 연말특집, 이 시간에는 올 한 해동안 이라크에서 일어났던 큰 사건들을 되돌아보는 보도를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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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은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에게 저항분자 폭력사태의 해로 기억될른지도 모릅니다. 매일같이 수 십건의 자살 자동차 폭탄공격이 벌어져 이라크 시민들과 경찰관, 방위군 병력 그리고 미군과 다른 외국군병력이 살해된 현장으로 구급차들이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달려가곤 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라크 시민들의 견해를 면밀히 살펴온 바그다드 방송, 라디오 디즐라의 카림 유세프 국장은 올해 너무도 많은 무고한 이라크인들이 저항분자들의 손에 살해됐기 때문에 2004년은 테러리즘의 한 해로 본다고 말합니다.

올해 저항분자들의 박격포와 로켓포 공격은 이라크 전역에서 계속 벌어졌으며 이라크 임시 정부의 주요 지도자들이 암살됐습니다. 이라크 임시 정부 기관들과 외국 대사관 그리고 다른 여러 외국 기관들이 들어있는 바그다드 시내의 삼엄하게 경비되고 있는 이른바 안전지대인 그린 존도 저항분자들로부터 수없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저항분자들은 또 2004년에 들어서면서 외국군과 외국기업체들이 이라크에서 철수하도록 만들려는 목적에서 납치테러를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외국 정부들은 저항분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그 결과 저항분자들은 여러 명의 인질들을 참수하는 만행을 자행했습니다.

테러리스트 단체의 우두머리 격인 요르단인 아부 무삽 알-자르카위는 이 같은 납치사건의 대부분을 일으킨 것으로 믿어지고 있으나 지병수배된 채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라크 임시 정부의 내무부 고위 자문인 사바흐 하딤씨는 2004년을 기대가 무산된 한 해라고 지적합니다. 하담씨는 2004년은 이라크 정부의 출범과 선거실시, 이라크 국민들에게 필요한 공공 서비스 제공 등 여러 면에서 많은 것들이 기대됐었기 때문에 순탄하게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그런 기대들이 실현되지 않았으며 보안상의 문제들도 그렇다고 덧부쳤습니다.

이라크 주둔 미군에게도 2004년 초에 곤혹스러운 사태가 닥쳤습니다. 미군이 관리하는 아부 그라이브 형무소에서 미국군인들이 수감자들을 학대한 사건이 불거져 나온 것입니다. 미국 군인들이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하는 광경의 사진들과 비디오들이 공개됐습니다. 수감자를 학대한 미군 병사들 가운데 한 명이 재판에서 유죄판결과 함께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다른 용의자들은 재판에 게류 중입니다.

6월 27일에는 미국이 설치한 이라크 통치위원회가 공식 해산되고 유엔 주관으로 구성된 이라크 임시정부에 이양됨으로써 이라크는 주권을 되찾았습니다.

2004년에는 또 이라크의 두 가지 큰 위기가 벌어졌습니다. 바그다드 남부도시로 성지인 나자프에서 시아파 회교도 사설 민병대가 도시 전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바그다드 서부의 팔루자 시를 수니파 회교도 반정부 세력과 저항분자들이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 두 도시는 미군과 이라크 방위군에게 접근금지 구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이라크 임시 정부가 나자프 시의 과격 민병대와 협상을 벌여 이라크 방위군과 경찰이 나자프 시의 질서를 회복시킨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팔루자 시에서는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장저항분자들이 여러 달 동안 도시르 장악하던 끝에 11월 1만 4천 명에 달하는 미군과 이라크 방위군이 집중공세 작전을 전개함으로써 저항분자들을 분쇄했습니다.

팔루자시 탈환을 위한 미군과 이라크 군의 공세작전은 성공을 거두어 저항분자들의 지휘통제소가 파괴되자 수 천 명의 저항분자들이 도주했습니다. 그러나 도주한 저항분자들은 수도 바그다드 북쪽의 모술시와 서쪽의 라마디 같은 이라크의 다른 여러 도시들과 심지어 바그다드에서 공격을 벌이고 있습니다.

2004년도 이라크의 큰 정치적 진전은 275명의 임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가 2005년 1월 30일에 실시되기로 확정된 것입니다. 이 총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200여 정치단체들이 결성됐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몇몇 정당들은 안보를 이유로 총선거 실시 연기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임시 정부당국은 총선거를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확고한 결의를 표명했습니다. 미국은 총선거 실시 이전에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규모를 15만 명 수준으로 유지할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2004년에 이라크 일부 지역에서는 비교적 안정이 유지되고 있으나 여전히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라크 국민들은 휘발유를 사는데 몇 시간 씩 기다려야 하고 가정용 전기공급이 전혀 안되던가 아주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라크 국민들의 대다수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가운데 실직자가 수 백만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임시정부 관계관들은 이라크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이라크 관계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국민이 계속 전진하려는 결의로 있다고 말합니다.

2004년은 비록 저항분자들의 폭력의 해로 기억되는 가운데도 많은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또한 저항분자들이 국가를 내란으로 몰아 넣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해로 기억될 것이라고 이라크 관계자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2005년 새해에는 이라크의 임시국회 총선거 실시에 이어 새로운 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와 영구 국회 총선거가 실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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