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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주석 사후 10년, 극심한 경제난에도 변함없는 수령찬양 - 2004-07-08


북한의 공산주의 정부를 창설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지 10년이 됐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1994년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이 처음으로 국제문제로 불거져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북한간 협상이 시작돼 1차 회담이 열린 다음 날인 7월8일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김일성 주석 사망후 10년이 지난 오늘 날 북한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알아봅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은 그 어떤 객관적 평가로도 10년전 보다 나빠져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과 의약품 결핍에 에너지 등 자원부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하부구조도 붕괴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굶주리고 있으나 1백만명에 달하는 북한 군인들에게 식량과 그 밖의 물품들이 우선적으로 제공되고 있다고 북한 주재 외교관들과 전문가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단 한 가지 변함이 없는 것은 김일성 주석에 대한 찬양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뒤 아들 김정일은 아버지의 국가주석직과 영원한 수령님 칭호를 이어받기를 거부함으로써 고 김일성 주석에 대한 찬양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들 가운데 최고권력이 부자세습으로 승계된 유일한 나라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후 극도로 악화된 경제상황과 전세계에 걸친 공산주의 이념의 소멸에도 불구하고 계속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김일성 주석 찬양의식 덕분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영화 제작과 관광알선 등으로 서방인으로선 드물게 북한을 자주 방문해 온 니콜라스 보너씨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존경심은 해방과 전쟁의 영웅으로서 김일성 주석이 받았던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북한에 거주하는 몇 안되는 서방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영국 워릭 대학교의 헤이즐 스미스 교수의 말을 들어봅니다.

“ 김정일은 일본의 한반도 점령기와 6.25 전쟁때 너무 어려서 항일투쟁이나 대미, 대유엔 항쟁에 참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찬양받을 아무런 정통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

2천2백만 명이 넘는 북한주민들은 김일성은 물론 김정일에 대한 비판이 전혀없는 국영 매스 미디어에 의해 통제되고 있습니다. 국영 미디어들은 김정일을 초인적인 표현으로 계속해서 열광적으로 찬양하고 있기 때문에 영웅과 현자나 진배없는 칭송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외국인 특히 외국 언론인들의 북한 방문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세계의 소식이 북한에 전달되지 않고 있습니다.

김정일에 대해서도 외부세계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김정일은 과대망상적이고 고급 요리를 탐하며 헐리우드 영화와 미녀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 고작입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절대권력을 장악해온 지난 10년 동안 북한 사회가 인적, 자연적 재앙으로 엄청난 곤경에 빠져 있다는 것만은 북한 주민들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는 김일성 주석 생존의 말기인 1992년에 북한의 최대 통상국이던 소련이 와해되면서 곤두박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다가 1990년대 중반에 홍수와 가뭄이 겹치면서 기근과 아사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북한 경제는 김일성 주석 말기에 얼마간 성장했지만 김정일 통치 10년 동안 북한은 생존하기 조차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다시 워릭 대학교 헤이즐 스미스 교수의 말입니다.

“ 김일성 통치시기에는 북한 정부가 주민들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의 재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이후 기근으로부터 살아남은 북한 주민들은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됐음을 알게 됐습니다.”

엄격한 자립정책에 기반을 두었던 북한에서 지난 2년 동안에 농민들의 자유시장과 물물거래가 허용되는 등 극히 미약하게나마 개혁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최근 물가를 현실적으로 인상시키고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자유경제 특구도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외부투자자는 남한뿐입니다.

북한의 시장 상황은 얼마간 바뀌고 있으나 정치적 자유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자 겸 관광알선업자인 니콜라스 보너씨는 “ 미국의 죠지 부쉬 대통령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을 악의 축 일부로 지목한후 북한에서는 모든 면에서 강경으로 다시 선회하고 김정일 체제와 군사우선주의가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개혁성향의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대미 관계는 북한 핵개발 계획 문제를 둘러싸고 최악의 상황에 빠져든 반면 일본과의 관계는 개선방향으로 나가고 있고 남한과의 관계는 지난 10년 동안 상당히 부드러워졌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아직도 전쟁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측 당국자들간의 대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양쪽의 상호 방문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국제정책이나 핵정책이 어떻게 돼 있는지 알지도 못한채 사망한지 10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김일성 수령 찬양행사에 참여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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