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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귀속된지 200주년 맞는 루이지애나 (영문 관련 기사) - 2003-12-25


지난 12월 20일 토요일, 미국 남부 뉴 올리언스 시 잭슨 광장에서는 1803년 루이지애나 영토가 프랑스에서 미국 영토로 귀속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뉴 올리언스 시에는 “프랑스 구역”이라고 알려진 옛 시가지가 있는데 그곳에는 파티 분위기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곳에는 째즈와 소란스런 술집 그리고 기독교 사순절을 시작하는 연례 축제로 시끌 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때는 이 곳이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리고 카빌도라고 알려진 낡은 스페인 빌딩안에서 1803년 12월 20일에 뉴올리언스시와 루이지애나 영토를 공식적으로 인계 인수 하는 의식이 거행됐습니다.

카빌도 박물관 스티브 슐켄스 대변인은 지난 1803년 12월 20일 이 곳에서 있었던 일을 재현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이 기념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계획하는 것은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고 미국의 보병부대, 포병부대 그리고 군악대들의 화려환 장관들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이런 화려한 재연은 200년 전, 피에르 라우사 프랑스 특사가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았던 모든 단계를 거슬러 올라갈 것입니다.”

실제 루이지애나 이양식에 주요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직접 이 재현의식에 참여하는데, 여기에는 1803년 영토 이양이 이뤄졌던 카빌도 빌딩 2층의 방에서 연기자들이 문서를 서명하는 장면도 재현됩니다.

그리고 옥외 잭슨 광장에서는 당시 프랑스군과 미군의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프랑스 국기를 내리고 미국 국기를 올리는 행동을 재연합니다. 프랑스, 스페인, 아이티의 대표들과 외교관들과 함께 미국 정부 관리들도 재연 과정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슐켄스씨는 프랑스가 이 영토를 매각하긴 했으나, 스페인들도 그 당시 루이지애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는 루이지애나를 1763년 스페인에게 양도했고, 그래서 그 후 40년동안 스페인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루이지애나를 구매하기 전 20일동안 프랑스가 이 지역을 다시 차지했었습니다.”

스티븐 슐켄스씨는 아이티에서 프랑스에 통치에 반대하는 노예들의 반란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통치자가 이 거대한 지역을 매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아이티는 루이지애나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티 전쟁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그가 카리브해로부터 캐나다까지 그의 제국을 건설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자 루이지애나를 매각한 것이기 때문에, 아이티는 루이지애나 매각에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아이티에서 패배후, 루이지애나를 소유하는 것은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가 미국에 양도한 루이지애나 영토 대부분의 영역은 아메리칸 인디안들이 흩어져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시시피 강 주변, 즉 뉴 올리언스와 세인트 루이스는 1 세기 이상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스티븐 슐켄스씨는 미국에 이 땅을 양도한 것은 1세기 이상 이 지역에 거주해온 프랑스와 스페인 인들에게 걱정을 안겨주었다고 말합니다.

“프랑스인들과 스페인들은 미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이 지역의 소유자가 된 변화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용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거주했습니다. 특별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들이 전혀 익숙치 않은 국가와 교회의 분리 개념 아래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지 우려했습니다.”

슐켄스씨는 카톨릭 성직자 단체들이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루이지애나주가 미국 영토가 되는 작업이 완료된 후, 수도원과 이 지역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물어봤다고 말했습니다. 토마스 재퍼슨 대통령은 토지와 재산은 이전 소유자가 계속 보유할수 있다는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루이지애나 구매는 역사상 가장 큰 토지 거래이며, 미국에 대해서는 매우 유리한 갑싼 구매였습니다. 한 핵타아르당 1페니로 총 천 오백만 달러가 프랑스에 지불됐으며, 오늘날 십여개의 미국주들은 루이지애나 영토로부터 분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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