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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와 전력 부족 가장 어려워' - 전쟁중 바그다드에 남은 중국 학자들 체험담 - 2003-04-22


이라크 전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됐을 당시, 세명의 중국인 학자들은 바그다드에 잔류하면서 자신들의 연구활동을 계속했습니다. VOA 기자가 이들 중국인 학자 세명의 체험담을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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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우 교수는 이라크 전쟁 발발 당시, 중국 대학에서 안식년 휴가를 받아 이라크 바드다드에 있었습니다. 폭탄이 비오듯 하고 , 하늘이 지독한 검은 연기로 가득 찼을 때 장 교수는 바그다드에 잔류하기로 결정한 몇 안되는 외국인 교수 가운데 한명이었습니다.

미국의 소리 방송 기자가 바그다드 국제 관계 연구소에서 이들 세명의 중국인 학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났습니다. 장교수는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에 남기로 결정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라크 군 체계의 전투 가능성을 보다 잘 파악하고, 자신들의 정부를 향한 이라크 인들의 자세를 연구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남기로 결정했었습니다. 바그다드에 머무르는 동안, 물론 위험은 있었습니다만, 저는 제 개인적 안전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고 느끼진 않았습니다. 잔류했던 사실은 분명히 그만한 보람과 가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살아 남으면서 먹은 음식들은 모두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확보했던 것들이었습니다. 식수와 전력 부족문제는 바그다드 생활중 가장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장 하우 교수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중화 인민 공화국의 다른 두명의 학자가 똑같은 집념을 보여주었습니다. 구 야첸 교수는 바그다드 중동 정책 연구소에 남아 있었으며, 허 핑화 교수는 바그다드 전략 연구소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전쟁기간 동안, 이 학자들은 종종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식사는 매우 간단해서 대개는 하루에 즉석 국수 두그릇이 전부였습니다. 제대로 된 음식을 요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공습이 시작되면서, 이들 중국인 학자들은 가족들을 안전한 이웃 나라들로 보냈습니다. 이들은 전세계와의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인공 위성 전화와 자신들의 부서에 설치되어 있던 특별 전화선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텔레비전 송신 중단으로 인해 다른 이라크의 지역 상황은 알지 못했습니다. 장교수는 연합군이 공격했을 때, 이라크 병사들의 사기는 저하되어 있었으며, 사담 후세인이 자랑했던 용감한 전사들의 모습과는 전혀 닮지 않았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장 교수는 여러해 동안의 사담후세인 정권치하 압제가 이라크인들이 해방된 후 폭동사태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바그다드 전략 연구소의 허핑화 교수는 바그다드의 약탈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후세인의 두 아들의 궁전과 정부 건물, 그리고 후세인의 공개된 궁전에 대한 약탈행위는 이라크 국민들이 압제하에서 좌절됐던 정신 상태와 분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폭도들의 박물관과 외국 대사관 약탈은 매우 위태로운 일입니다. 외국 대사관들의 자동차와 문서, 사무집기들이 불타버렸습니다. 문화와 역사적 유물과 문헌들의 파괴행위가 가장 불안한 일입니다.”

이들 중국 학자 세명중 누구도 중국인 소유의 상점들이 약탈당했다는 이야기는 못들었다고 말합니다.

구 교수는 길지 않은 지난 몇해동안 이라크와 중국이 다져온 튼튼한 관계가 이번 전쟁 기간중 이라크 거주 중국인들이 그 같은 대접을 받는데 기여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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