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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에 불안과 환희 공존' - 미국에 정착한 한 이라크인 의사의 이야기 - 2003-04-16


2000년도 미국 국세조사에 따르면, 9만명의 이라크인들이 미국에 이주해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죽음이나 박해가 두려워 사담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탈출한 난민들입니다. 그중 한 사람인 아딜 아와드 박사로부터 그의 일생과 그의 모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반응을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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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라크 사람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로 채워진 새 시대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으나, 그와 동시에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환희와 불안이 엇갈리는 느낌을 가집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할 때, 이 전쟁은 매우 중요하며 또 매우 필요한 전쟁입니다. 이라크 사람들은, 너무 지나치게 고통을 겪었고 또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딜 아와드 박사는, 바그다드에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남부 이라크의 한 군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잔혹성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1994년 사담 후세인은, 그의 반대자들의 귀를 절단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라크 의사들은 그 절단 수술을 하도록 강요 받았습니다. 수많은 의사들이 죽이거나 투옥하겠다는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그 같은 절단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일부는 거절했는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와드 박사는, 사담 정권의 잔혹성을 목격하고 고통을 겪다가, 북부 이라크의 쿠르디스탄에서 싸우는 이라크 야당과 합류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1996년, 사담의 군대는, 이 지역을 침공했고, 아와드 박사를 포함한 수천명의 야당 투사들은, 이라크 와 터키 국경의 한 작은 마을로 파신했습니다.

미국은 이들을 그곳으로부터 철수시켰습니다. 마침내, 아와드 박사는, 미국 중서부의 네브래스커주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그는 그곳에 살면서 앞서 그가 이라크에서 열심히 시청했던 영화나 텔레비전 쇼에서 보았던 미국 생활에 대한 이미지가 신속히 변화했다고 말합니다.

“헐리우드 영화는, 주로 액션과 폭력 그리고 성에 중점을 둡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보면, 사람들이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똑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돌보고 가족간의 유대가 강하며 또 가족을 사랑합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생활로 세계의 다른 그 어떤 사회에서와 같이 행복과 우울한 나날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다른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아딜 아와드 박사는, 미국에서 의사 자격을 다시 따기 전에는 개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번역가로서 그리고 후에는 난민 정착 기관에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는 또한 이라크계 미국인 단체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저명한 이라크계 미국인으로서 , 아와드 박사는 3월 초에, 백악관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죠지 부쉬 대통령을 만나게 됐습니다.

“나는 백악관을 방문한 12명의 이라크계 미국인들 가운데 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대통령에게 이라크에서의 나의 경험을 얘기했고, 나는 그 기회에 대통령에게 귀를 절단 당한 사담 정권의 피해자들을 찾도록 미군에 지시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나는 그 수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라크 밖에서 그들의 귀를 성형 수술해 줄 것을 대통령에게 제안했습니다. 나는 대통령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사담 정권의 끔찍한 행위를 전세계에 알릴 뿐만 아니라 중동 사람들에게 미국을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와드 박사와 그 부인은 아홉살 그리고 세살난 두 아들이 있습니다. 작은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큰 아이는 이라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딜 와하드 박사는, 그의 아들들은, 네브래스커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다른 미국 아이들과 똑 같지만 그들은 이라크인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뿌리는 이라크인이고, 집에서의 주된 언어는 아랍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라크계 미국인들이 안정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나는 내 아이들이 내가 살았던 것과는 다른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나는 물론, 내 아들들이 내가 이라크에서 봤던 끔찍한 일들을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 아들들이 계속 미국에 살면서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기를 바랍니다. 다시 이라크에서 공헌하고 싶으면, 그 때쯤이면 그들에게 문호가 활짝 개방되리라고 생각하며, 자유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나날들이 이어질 것을 희망합니다.”

아와드 박사 그 자신은, 미국에서의 경험을 살려서, 이라크에서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것에 기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까운 장래에 이라크는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필요로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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