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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백년사 (9) 더 나은 삶을 찾아 본토로! 제 1편-미 본토 서해안으로 진출한 한인들 - 2003-03-01


1898년 하와이가 미합중국과 병합하면서 하와이에서도 미국법이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법률의 시행으로 한인을 포함한 하와이의 많은 노동자들이 미 본토 이주의 자유를 얻게 됐습니다.

미국 본토 서해안 철도 회사들이 철로 부설 사업에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 많은 한인들이 서부로 건너갔습니다. 철도일이 아니더라도 캘리포니아의 농사일, 오레곤, 몬타나, 유타주의 광산일등은 영어가 부족하고 전문 기술이 없던 당시 동양인 노동자들에게는 더할수 없이 반가운 일자리였습니다.

1904년부터 미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1907년 동양인들의 공식적인 본토 이민이 금지되기 전까지 3년간 약 천여명의 한인들이 샌프란시스코로 발을 디뎠습니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샌 화퀸 계곡에 있는 다뉴바와 리들리, 새크라멘토와 델라도는 한인의 정착 중심지였습니다.

본토에 이주해온 한인들은 서로의 권익을 보호하고 유대를 긴밀히 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를 결성했는데, 19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산 안창호를 중심으로 결성된 '친목회'는 최초의 한인 사회단체로서 후일 '공립협회'의 모체가 됐습니다.

또한 '한인 국민회'는 한인 사회의 교육과 경제 발전을 도모했으며, 1913년 역시 도산 안창호를 중심으로 창단된 '흥사단'은 무실, 역행, 충의, 용감 4 원칙과 지-덕-체 3대 실천 규범에 따라 조국의 독립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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