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역사 속 오늘] 4월 5일


<!-- IMAGE -->

1964년 4월 5일

한국 전쟁 시 인천 상륙 작전을 지휘했던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1880년 미국 남부 아칸소주에서 태어난 맥아더는 제1,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능력을 인정받고 태평양 전쟁의 영웅으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이후 1950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자 맥아더 장군은 유엔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돼 한국전을 총 지휘하게 됩니다.

한국 전쟁 초기 당시 북한군은 기습 공격을 감행해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이 때 맥아더 장군은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같은 해인 1950년 9월 인천 상륙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전의 성공으로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을 중국 국경까지 몰아내게 됩니다.

그러나 곧 중공 군의 개입으로 후퇴하게 된 맥아더 장군은 만주 폭격 등을 주장하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대립하게 됩니다.

결국 맥아더 장군은 1951년 사령관 직에서 해임됩니다. 그는 이후 미국의회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퇴역하게 됩니다.

1976년 4월 5일 오늘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20만 명의 군중들이 모여 3개월 전 세상을 떠난 저우언라이 전 총리를 애도하고 장칭을 비롯한 '4인 방'을 규탄하기 위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평생을 인민 해방을 위해 산 저우언라이 전 총리는 중국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부인이었던 장칭을 비롯한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왕충원의 4인 방은 이미 세상을 떠난 저우언라이를 자본주의자로 몰아 그를 격하시키려 했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이에 대항해 "저우언라이 총리를 반대하는 자는 모두 타도하라"고 외치며 4인 방을 비롯한 극좌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게 된 것입니다.

이에 4인 방의 사주를 받은 수 천명의 공안들은 군중의 시위를 방해합니다. 그리고 이에 격분한 수만 명의 군중은 천안문 광장에 나와 자동차와 건물에 불을 지르게 됩니다.

이렇게 사태가 악화되자 중국 정부는 광장에 모인 군중들을 폭력으로 진압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광장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고, 1 천 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체포됐습니다.

후에 '혁명적인 행동'이었다는 평을 받게 된 이 사건은 이후 중국 개혁 개방을 이끈 등소평 즉 덩샤오핑의 등장으로 이어집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