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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의 과거 방중 배경과 결과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과거 중국 방문 사례들이 관심이 끌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모두 4차례 중국을 방문했는데요, 김 위원장의 과거 방중 배경과 결과를 최원기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집권한 이래 모두 4차례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2000년 5월 중국을 방문한 것과 관련, 전문가들은 당시 다음 달로 예정됐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중국 측에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탈북자 출신인 서강대 안찬일 교수입니다.

“정상회담의 의제라든지 내용, 합의 사항을 중국과 조율했을 겁니다. 최초의 정상회담이니까, 중국과 긴밀한 협력을 의논하기 위해 갔을 겁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그로부터 8개월 뒤인 2001년 1월 다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김위원장은 상하이의 푸동지구와 상하이 증권거래소, 그리고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 공장, 그리고 순처우 현대 농업개발구역을 차례로 돌아봤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이 천지 개벽을 했다’며 중국의 발전상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서부 남가주대학 한국학연구소의 데이비드 강 소장은 중국이 북한에 중국식 개방을 권유했고, 김 위원장 역시 깊은 인상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방문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온 김정일 위원장은 일련의 경제 활성화 조치를 취했습니다. 우선 김 위원장은 `노동신문’을 통해 ‘신사고’를 강조했습니다. 그 후 김위원장은 2002년7월 물가와 임금을 현실화 하는 ‘7.1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내놨습니다.

또 2002년 9월에는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하는 한편 개성공단지구법도 제정하는 등 경제적 변화를 추진했습니다. 다시 서강대 안찬일 박사입니다.

“나름대로 중국의 길을 따라가려고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취하고 그 시범지역으로 신의주를 선택해 중국인 화교 출신과 협력해서, 최고인민회의에서 법령까지 만들고 책임자까지 임명했는데, 어쨌든 그 후 중국과 북한 관계가 친밀하면서도 경계하는 묘하게 흘러온 것이 아이러니한 대목입니다”

2004년4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6자회담이 핵심 의제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 북한이 핵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자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김정일 위원장을 베이징으로 불러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합니다.

이에 따라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은 인내심과 융통성을 발휘해 6자회담에 참여하고 회담이 성과를 거두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그 결과 두 달 뒤인 2004년 6월 베이징에서 제3차6자회담이 열렸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6년 1월 다시 중국을 방문합니다. 2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중국의 대표적인 개방 지역인 광동성과 후베이성을 방문해 전자, 컴퓨터 등 중국의 첨단산업 현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중국은 당시 북한에 공장을 지어주는 등 경제협력 문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그 해 10월 북한이 전격적으로 핵실험을 강행하자 북한과 중국 관계는 최악의 상태가 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수뇌부는 지난 10년 간 김정일 위원장에게 핵을 포기할 것과 개방 조치를 통해 경제를 살릴 것을 줄곧 촉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두 차례 핵실험을 실시한 것은 물론 경제도 개방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워싱턴의 민간 연구기관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김정일 위원장이 또다시 중국을 방문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중국식 개방 정책을 택하거나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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