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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이야기 미국사 104] 켄사스-네브래스카 법안 (1)


미합중국 북부에서는 캔사스-네브래스카 법안에 대한 반대가 심했다.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공개 집회가 열렸다. 실업인들이 이 반대 집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더글러스 의원이 노예제에 대한 논쟁을 다시 시작한 것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실업인들은 이 논쟁이 자칫 경제를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북부지역 교회 목회자들도 캔사스-네브래스카 법안을 반대 하는 데 하나로 뭉쳤다. 수 많은 사람들이 반대 서명을 해 국회에 보냈다. 더글러스 상원의원은 목회자들을 비난하며, 종교인들이 정치에 관계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남부 지역에서는 캔사스-네브래스카 법안에 별다른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남부인들은 이 법안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 법안이 노예제에 명분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분쟁을 가져 올 수도 있다고 믿었다.

상원에서 캔사스-네브래스카 법안을 둘러싼 논쟁이 한 달 이상 계속됐다. 스테픈 더글러스 상원의원은 이 법안이 통과 될 것으로 확신했다.

1850년대. 이 시기는 미국에서 점차 긴장이 높아가던 시기였다. 이전에는, 미국인들은 대부분 미시시피 강 동쪽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서부로 이동했고, 서부지역에 정착민들이 늘어나자 많은 지역들이 공식적인 준주로 편입된 다음, 다시 새로운 주로 승격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준주와 주에서 어떤 법을 시행할 것인지, 또 법은 국회에서 제정할 것인지 아니면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투료를 통해 결정 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서부 지역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법적인 문제는, 노예문제였다.

미국에서 노예는 가구나 가축처럼, 하나의 재산으로 간주됐고, 많은 지역에서 노예제도는 합법적이었다. 흑인 노예를 소유한 사람들은 서부로 이주할 때 노예를 포함해 그들의 전 재산을 가지고 가려고 했고, 노예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노예제가 서부로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미국의 초기 지도자들은 노예제를 없애려고 할 경우, 미국이 둘로 분열될 거라고 생각했다. 초기의 지도자들은 타협책을 모색했고, 적당히 타협하는 쪽이 합중국을 분열시키는 것 보다 나은 방법이라고 믿었다. 1820년 국회는 미주리 타협안을 통과시켰다.

미주리 타협안은 합중국의 지도를 가로 질러 하나의 선을 그은 것으로, 선 남쪽에서는 노예가 합법이고, 선 북쪽에서는 미주리 주를 제외하고는 노예가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미주리 타협안이 제정된 지 30년이 지난 뒤인 1850년. 노예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타협안이 등장했다. 1850년의 타협안은 일부 서부 준주에서 노예를 국가적인 문제로 다루지 않고, 그 지역의 문제로 한정했다. 이 타협안은 준주의 주민들이 노예제가 합법이냐 불법이냐 하는 문제를 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했다. 1850년 타협안이 제정되고 몇 년 뒤, 이 법은 국회에서 새로운 논쟁을 불러왔다.

“노예 문제를 결정 할 수 있는 주민들의 권리는 1850년 타협안으로 생긴 준 주에만 해당되는 겁니까, 아니면, 앞으로 생겨 날 모든 준주의 주민들에게 해달되는 겁니까. 이 문제를 두고 의원들끼리 아무리 논쟁을 벌인들, 답이 나오지가 않습니다. 나오지가 않아요.”

“1820년의 미주리주 타협안과 1850년 타협안으로는, 서부 지역 광대한 땅에 새로 생기는 주들의 노예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캔사스-네브레스카 법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

1854년 국회는 서부의 광대한 지역에 두 개의 준주를 만드는 법안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북부는 네브래스카 준 주, 남부는 캔사스 준주로, 이 새 준주 주민들은 노예제 채택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갖게 했다. 하지만 1820년 미주리 법안이나, 1850년 타협안, 그리고 1854년의 켄사스-네브래스카 법안 중 어느 것도, 미국의 노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었다.

프랭크린 피어스 대통령 역시, 여러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노예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치는 정책들은 피해 갔다. 피어스 대통령은 켄사스-네브래스카 법안이 노예제에 대해 더 큰 국가적인 논쟁을 불러오지 않을지 우려했지만, 이 법안은 상원의 큰 지지를 받고 통과했다.

캔사스-네브래스카 법안의 지지자들은 수도 워싱턴에서 새벽까지 축포를 쏘며 승리를 자축했다. 이 법안에 반대 했던 한 상원의원은 의사당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가 그 소리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은 지금 마치 큰 일을 해 낸 듯, 승리를 자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 때문에 고통받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울리는 메아리는 노예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치지 않을것입니다. ”

새 법안은 캔사스와 네브래스카 주민들에게 노예제가 합법인지, 아니면 불법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투표는 해당 준주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의해 결정되게 됐다. 네브래스카에서 노예를 소유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았지만, 캔사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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