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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화폐의 역사 (1)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의 부지영입니다. 지난 해 말 북한이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큰 혼란이 벌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이전 화폐와 새 화폐의 교환 비율이1백 대 1이었다고 하던데요. 주민 한 사람당 구권과 신권을 교환할 수 있는 한도와 교환기간이 정해져 있어서요. 그 이상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용이 없고요. 또 교환기간을 넘기면 더 이상 사용할 수도, 바꿀 수도 없어서 구 화폐는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 취급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일부 동요의 움직임도 보인다고 하던데요. 이처럼 지폐가 한 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변하는 현상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가 따로 상품으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신용을 기반으로 한 명목화폐이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예전에는 달랐습니다. 초기 화폐는 순금이나 순은으로 만든 금화, 또는 은화가 대부분이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데요.

인류는 도대체 언제부터 화폐를 만들어 사용했고, 그 동안 화폐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이번 주부터는 화폐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껏 치장한 인간 제물이 가파른 계단을 올라 신전 꼭대기에 올라서자, 흥분한 군중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네 명의 사제가 돌로 만든 제단 위에 제물을 눕히고 두 팔과 두 다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얼굴과 몸에 피를 바른 무시무시한 표정의 제사장이 다가와, 날카로운 돌 칼로 제물의 가슴을 가르고, 아직 살아서 펄떡거리는 심장을 꺼내 불타는 화로 속에 던져 넣었다.”

네, 수백 년 전 멕시코 중앙고원을 지배했던 아스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현재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태양신을 숭배했던 아스텍 인들은 매일 산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지냈는데요. 희생자들은 용맹한 무사 출신인 전쟁 포로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 겨울의 축전 때는 부유한 상인들이 특별히 제물을 사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아스텍 상인들은 자신의 부와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인간 제물을 사서 신전에 바치기도 했다. 면 외투 40벌에 인간 제물을 사들인 상인은 여러 달 동안 자신의 집에서 제물을 먹이고 입히며 호강을 누리게 했다. 그러다가 제삿날이 다가오면 직접 인간 제물을 데리고 신전 꼭대기에 올라가는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의식이 끝나면 상인은 심장 없는 시신을 집으로 가져와, 여자들을 시켜 요리하게 한 뒤, 손님들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었다.”

아스텍 인들은 식생활에서 단백질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같은 식인 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부유한 상인이 특별히 사들인 인간 제물은 그나마 호강하다가 잔칫상에 오르게 되지만, 전쟁 포로로 잡힌 제물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의식이 끝나면 이들의 시신은 신전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요. 여러 토막으로 나뉘어 인근 시장에서 식재료로 팔렸습니다.

“당시 아스텍 인들은 시장에서 거래를 할 때 초콜릿을 사용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씨를 돈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예나 인간 제물을 살 때는 면으로 만든 외투를 사용하기도 했다. 아스텍 인들이 ‘쿠아치틀리’라고 불렀던 이 면 외투는 카카오 씨 수십 개, 어떤 것은 카카오 씨 수백 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카카오 씨와 같은 실물화폐는 물물교환 사회에서 보충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장작 한 묶음과 옥수수 한 바구니를 맞바꿀 때, 장작 한 묶음이 카카오 씨 5개의 가치가 있고, 옥수수 한 바구니가 카카오 씨 6개의 가치가 있다면, 장작 한 묶음을 가진 사람은 카카오 씨 한 개를 얹어서 옥수수 한 바구니와 바꿨다는 겁니다. 물건과 물건을 맞바꾸는 물물교환은 수천 년 전부터 이뤄졌습니다.

//이글턴 씨//
“사람들이 언제부터 물건을 교환하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닭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쌀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때, 서로 상대방의 물건이 필요하다면 물물교환을 했겠죠. 하지만 이런 물물교환은 상대가 원하는 물건을 갖고 있지 않으면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화폐: 역사 (Money: History)’란 책의 공동저자인 캐서린 이글턴 씨의 설명이었는데요. 이글턴 씨가 지적한 것처럼 ‘바터’, 즉 물물교환의 문제점은 서로 상대편이 원하는 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데 있었습니다.

//웨더포드 박사//
“사람들이 바터 (barter), 즉 물물교환에 관해 많이 얘기하는데요. 바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나 친척들끼리 물건을 바꾸긴 했죠. 그러다가 나라에 공물을 바치는 식으로 변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앞서 경제학자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초기 경제에서 물물교환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나 친척들 사이에서 행해졌고, 어떤 면에서는 의무감 때문에 물건을 바꿔준 경우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학자로 ‘돈의 역사’란 책을 쓴 잭 웨더포드 박사의 설명이었는데요. 그 동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물물교환은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물건을 맞바꾸는 것보다 화폐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편리하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았는데요. 영국 대영박물관의 화폐 담당 전시책임자로 ‘화폐’란 책을 쓴 캐서린 이글턴 씨 따르면, 돈의 역사, 화폐의 역사는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글턴 씨//
“인류가 거래 내용을 기록에 남기기 시작했을 때부터 화폐가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이집트 기록을 보면 돈 거래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요. 기원전 1천8백 년 경에 만들어진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을 보면, 돈을 주고 받는데 관한 규율이 나와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요. 당시 이미 일종의 화폐가 널리 사용됐다는 걸 보여주고 있죠.”

초기 화폐는 카카오 씨와 같은 실물 화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인류학자로 매칼리스터 대학 교수를 지낸 잭 웨더포드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웨더포드 박사//
“지니고 다니기 용이한 작은 물건이라면 뭐든지 단기적으로 화폐로 사용될 수 있었죠. 예를 들어 아스텍 문명에서는 카카오, 즉 초콜릿 씨가 흔히 화폐로 사용됐고요. 소량의 금이나 은, 조개 껍질, 돌, 예를 들어 소금과 같은 음식도 돈으로 사용됐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대 중국과 아프리카에서는 조개 껍질을 화폐로 사용했는데요. 내륙 지방에서는 조개 껍질이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돈과 관련된 한자에 ‘조개 패’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연유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이글턴 씨//
“생각해 보면 조개 껍질은 훌륭한 화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고, 단단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또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도 한 때 조개 껍질을 화폐로 사용했습니다.”

‘화폐: 역사’란 책의 저자인 캐서린 이글턴 씨의 설명이었는데요.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금이나 은, 구리 등을 녹여 만든 금속 조각이나 덩어리가 가장 화폐로 사용하기에 용이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처음 화폐로 사용된 금속은 은이었는데요. 일일이 무게를 재야했기 때문에 불편이 따랐습니다. 이에 따라 규격과 무게를 통일한 주화, 즉 동전이 나오게 됩니다.

//이글턴 씨//
“가장 먼저 동전을 만든 곳으로 두 곳을 꼽을 수 있겠는데요. 하나는 현재 터키가 있는 리디아였죠. 기원전 6세기 내지7세기경에 주화를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도 칼이나 다른 도구 모양의 주화를 만들었습니다. 모양은 서로 많이 달랐지만 기능은 같았죠.”

서양 최초의 주화는 현재 터키 서부에 위치했던 고대 왕국 리디아의 ‘엘렉트럼’주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디아인들은 기원전 6백40년경부터 금과 은의 자연합금인 엘렉트럼, 즉 호박금으로 주화를 만들었는데요. 처음에는 채굴한 엘렉트럼 덩어리를 일정하게 잘라 사용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 이었는데요. 차츰 일정한 규격에 맞춰 발행하게 됐고요. 사자의 머리 등 문양을 넣어 신뢰도를 높이고, 글을 모르는 사람도 그 가치를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이 같은 엘렉트럼 주화는 리디아의 마지막 왕인 크로이소스 왕 시대에 이르러 금화와 은화로 대체됩니다.

영어에는 ‘rich as Croesus’란 표현이 있습니다. ‘크로이소스 왕처럼 부자’란 이 말은 매우 돈이 많다는 뜻의 관용어인데요. 부자의 대명사 크로이소스 왕은 역사상 최초로 법정 주화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리디아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된 크로이소스 왕은 기원전 5백60년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리디아는 고급 향수와 화장품 덕택에 이미 부유한 왕국이었다. 하지만 크로이소스 왕의 부는 단순히 향수와 화장품을 팔아 얻은 것이 아니었다. 크로이소스 왕은 순금과 순은으로 만든 ‘스타테르’ 단위의 금화와 은화를 만들어 통용시켰고, 12분의 1로 쪼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와 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하게 했다.”

크로이소스 왕의 개혁으로 세계 역사상 최초로 제국 통화가 확립된 것인데요.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리디아의 아름다운 주화들은 소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통용됐습니다. 이에 따라 교역이 발달하면서 리디아는 ‘상인들의 나라’란 별명을 얻게 됐고요. 크로이소스 왕은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왕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크로이소스 왕은 다른 많은 지배자들이 빠졌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쓸 데 없이 거대한 건물을 짓고 병사들을 양성하는데 돈을 낭비한 것입니다.

“소아시아의 그리스 전 도시를 점령한 크로이소스 왕은 다음 상대로 페르시아를 노렸다.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를 것인지 여부를 고민하던 크로이소스 왕은 아폴로 신전에서 기도를 올렸다. ‘거대한 제국이 무너질 것이다’란 신탁을 받은 크로이소스 왕은 ‘거대한 제국’이 페르시아라고 확신했고, 기원전 547년 페르시아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무너진 거대한 제국은 페르시아가 아니라 리디아였습니다. 그렇게 돈이 많고 부자였던 크로이소스 왕도 결국에는 행복하지 못했고요. 나라를 망하게 한 불행한 인물로 기록됐습니다. 크로이소스 왕을 끝으로 리디아 왕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지만, 이 작은 나라가 전 세계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주변국들이 리디아의 금화와 은화를 본 따 주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요. 로마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양에서 동전 사용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됩니다.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지난해 말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한 것과 관련해 화폐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로마 시대 화폐에 관해 전해 드립니다. 다음 시간도 많이 기대해 주시고요. 저는 여기서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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