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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베트남 개혁개방 23년] 1. 넘치는 활력


베트남이 경제성장을 위해 '도이모이'로 불리는 개혁 개방에 나선 지 이 달로 23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빠른 속도의 성장을 이루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아 온 베트남은 이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베트남 현지 취재를 통해 베트남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성장의 원동력을 살펴보는 특별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개혁개방으로 활력이 넘치는 베트남의 모습을 소개해 드립니다. 이연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23년 전인 1986년 12월, 베트남의 공산 정권은 오랜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기 위한 극적인 조치를 발표합니다. 그 해 취임한 구엔 반 린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전당대회에서 개혁개방으로 알려진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하고, 이로써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외개방과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꾀하게 됩니다.

베트남어로 `쇄신'을 의미하는 도이모이 정책의 결과는 지금 수도 하노이와 호치민 등 주요 도시 어디에서든 확연히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 달 19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농다거리.

출근시간이면 항상 도로를 가득 메우는 오토바이들은 도이모이 정책이 가져온 경제의 활력을 상징합니다.

백화점 직원인 올해 28살의 짠호앙장 씨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면서 생활이 크게 나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2~3년 전과 비교해도 생활수준이 크게 나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래도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경제 중심지인 호치민 역시 하루가 다르게 도시의 모습이 변하고 있습니다. 시내 곳곳에서 보도블록 교체 공사에서부터 백화점과 호텔, 아파트, 교량 등 대형 건설공사까지 크고 작은 공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치민 시민들은 특히 사이공 강 남쪽에 건설되고 있는 '뚜띠엠 신도시'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20년 예정으로 4년 전 시작된 '뚜띠엠 신도시' 공사가 완성될 경우, 총 13만의 상주인구에 유동인구가 1백만 명에 달하는 새로운 금융중심지로, 호치민 경제발전의 상징이 되리란 것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올해 27살의 풍만득 씨는 뚜띠엠 신도시 완공 이후의 발전상을 생각한다면 지금까지의 발전상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라면서, 신도시가 중국 경제발전의 상징인 상하이 푸동 신도시와 흡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도이모이가 자리잡기 시작한 1993년 작은 수출입 업체로 시작한 젤렉심코 그룹은 현재 4개 부문에 40개 계열사를 거느린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정부의 민간기업 육성정책 덕분입니다. 베트남 최초의 민간기업인 젤렉심코 그룹의 공동창업자인 다오 만 캉 이사는 운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1986년에 대학에 입학해 1990년에 졸업했다는 캉 이사는 당시 대학졸업생들의 유일한 희망은 공무원이 되거나 국영기업체에 취직하는 것 뿐이었다며, 하지만 도이모이 정책으로 사업을 할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도이모이에 따른 적극적인 대외개방은 지금 젊은이들에게도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최초로 진출한 외국대학인 호주의 명문 RMIT(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 호치민 분교를 올해 가을에 졸업한 쯔웽 뜨 씨는 외국계 기업 취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뜨 씨는 지금은 과거에 비해 좋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며, 도이모이가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뜨 씨에 따르면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 대기업에 취직할 경우 월급은 2백 달러에서 2백50달러 정도입니다. 하지만 외국어에 능통한 명문대학 졸업생이 외국계 기업에 취직할 경우 월급은 5백 달러에서 1천 달러에 이릅니다.

이처럼 사업으로 큰 돈을 번 자영업자들이나 외국계 대기업에 취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신흥 부유층이나 중산층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호치민의 한 백화점 가전제품 매장에서 만난 올해 48살인 부 반 띠엔 씨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이모이'정책이 시행된 1986년 이전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먹을 것 조차 충분치 않아 배급 받은 쌀로 죽을 만들어 먹거나 감자 같은 것을 섞어 먹어야 했고, 그 마저도 실컷 먹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띠엔 씨는 당시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을 경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애를 써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웃사람들이 닭 잡는 소리를 듣고 찾아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도이모이'가 시작된 이후에는 베트남 전체가 먹는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생활 수준도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고, 띠엔 씨는 말했습니다.

띠엔 씨는 특히 자신은 대학을 다니지 못했지만 딸과 아들을 모두 대학교육까지 시킬 수 있었다는 데 자부심을 표시했습니다.

띠엔 씨는 대학을 졸업한 딸과 아들이 각각 은행과 외국인 회사에 근무하면서 월 3백70달러와 5백 달러를 받고 있다며, 자신의 월급까지 합치면 가족 전체소득이 연간 1만 5천 달러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띠엔 씨는 요즘 베트남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평판 TV를 유심히 살핀 끝에 일본 소니 사의 8백 달러짜리32인치 TV를 골랐습니다.

최근 호치민에서 '삶을 더 풍요롭게"라는 주제로 열린 자동차 전시회는 12만 여명이 몰리는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베트남 자동차공업협회의 보 카일 타이 이사는 이제 오토바이가 베트남 사람들의 꿈이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습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소득이 높아지고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실제 판매도 늘었다는 것입니다.

호치민과 하노이를 오가며 자영업을 하고 있다는 올해 34살의 웬 훠징 씨는 자동차 구입에 앞서 서로 다른 차들을 비교해 보기 위해 전시회장을 찾았다면서, 차 값으로 7만 달러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베트남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레 당 쯔웽 박사는 도이모이로 인해 베트남의 빈곤 인구는 크게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도이모이의 첫 번째 가시적인 성과로 쌀 생산이 증가하면서 1982년에만 해도 무려 58%였던 빈곤률이 지금은 14%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쯔웽 박사는 도이모이의 설계자 가운데 한 명으로,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경제고문과 기획투자부 차관을 역임했습니다.

물론, 베트남은 아직도 개발도상에 있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2008년 1인당 국민소득은 1천24달러로, 비로소 처음으로 유엔이 정하는 빈민국 대열에서 벗어났습니다. 부유층이나 중산층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2~3개 직업을 전전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베트남 정부에 경제자문을 제공하고 있는 쯔웽 박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베트남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습니다.

쯔웽 박사는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회체제와 총인구의 약 70%가 30살 미만의 젊은층으로 구성된 인구, 풍부한 천연자원,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지정학적 위치 등을 베트남의 강점으로 꼽았습니다.

'베트남은 나의 조국'이라는 제목의 베트남 노래입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베트남의 모습을 담은 이 노래는 그동안 전세계에 베트남을 홍보하는데 널리 사용돼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트남 정부는 이 노래를 대신해 베트남을 대표할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베트남 관광청의 부떼민 국장은 새 노래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로 자리매김한 베트남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보다 빠르고 경쾌한 노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소리 이연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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