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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인류 역사를 바꾼 전염병 – 천연두 편


안녕하세요? 화제가 되는 뉴스를 중심으로 그에 얽힌 역사를 돌아보는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시간 부지영입니다.

최근 신종독감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요. A형 독감, 돼지독감이라고도 불리는 신종독감은 지난 3월에 멕시코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급속도로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사망자 수만 해도 이미 3천4백 명을 넘어섰습니다. 신종독감에 감염됐던 사람들 가운데는 코스타리카 대통령, 한국의 유명 연예인도 포함돼 있는데요. 전염병 앞에서는 권력도, 인기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한 시대를 호령했던 영웅이나 통치가들도 전염병 앞에 맥 없이 무릎을 꿇은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전염병으로 인해서 한 나라나 민족의 운명이 바뀐 경우도 있지 않을까 문득 호기심이 듭니다.

그래서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오늘 시간에는 전염병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 그 중에서도 천연두가 미친 영향을 살펴볼까 하는데요. 오늘 도움 말씀에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입니다.

1774년 4월 27일, 사냥을 나갔던 프랑스 왕 루이 15세는 극심한 피로와 두통을 호소했다. 인근 트리아농 궁에서 휴식을 취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고…… 다음 날 고열과 함께 증세가 악화되자 주치의는 급히 환궁할 것을 권유했다.

“큰 일이다. 폐하가 쓰러지셨어……”
“뭐라고? 국왕 폐하께서 병환이라고?”

궁전의 모든 의사들이 전력을 다해 진료했지만 왕의 병세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데……

5월 3일, 전신에 퍼진 붉은 반점을 바라보며 루이 15세는 차마 누구도 입에 올리지 못하던 말을 내뱉는다.

“내 병은…… 천연두다……”

“태자 전하, 비 전하, 어서 방을 나가십시오. 왕위 계승자에게 전염되면 큰일입니다. 국왕 폐하의 병환은 천연두입니다.”

그리고 1주일 뒤인 1774년 5월 10일, 오후 3시……마치 천둥과 같은 발소리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뒤흔든다.

“왕이 서거하셨다!”
“새로운 왕의 시대가 왔다!”
“새 국왕 루이 16세 만세! 왕비 마마 만세!”

프랑스 왕 루이 15세가 천연두에 걸려 숨지자, 당시 19살이던 왕태자 루이 어귀스트와 18살 왕태자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프랑스의 새 국왕과 왕비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즉위한 루이 16세는 자물쇠 만들기만 좋아했을 뿐 국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요.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 역시 사치에만 열중해서 왕실의 재정은 파탄에 이릅니다. 분노한 민중은 삽과 쟁기를 들고 베르사이유 궁으로 몰려들었고, 결국 두 사람은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만약 루이 15세가 천연두에 걸리지 않고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권좌에 올랐더라면…… 부르봉 왕가와 프랑스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요. 과거 천연두란 병마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던 인물은 비단 루이 15세만이 아닙니다.

이집트 왕 람세스 5세,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청나라의 순치 황제 등 수많은 통치자들이 천연두에 걸려 사망했는데요. 1980년 세계보건기구가 공식적으로 천연두 박멸을 선언하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5억여 명이 천연두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홍혜걸 박사//
“이 병은 바리올라라고 하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성 질환입니다. 우리 말로는 천연두, 또는 두창이라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이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굉장히 강하고, 감염자들에게 생명을 앗아가는 독성도 높은 그런 바이러스입니다. 특히 감염되면
2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서 전신에 발진이 나타납니다. 발부터 머리 끝까지 빨간색 반점이 생기고, 나중에 수포가 생기고, 그 다음에 농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사망하게 되는 그런 병이죠.”

천연두는 수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18세기말 영국 외과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개발해 천연두 예방의 길을 열기까지, 그 누구도 천연두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했고요. 한반도에서도 여러 차례 천연두가 창궐했습니다.

//홍혜걸 박사//
“중국의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말기 무렵에 천연두가 대유행을 한 것으로 기록이 돼있거든요. 그 때가 아시아로 처음 몰려오게 된 거고, 그러다가 6세기 정도, AD 6세기 정도에 마한, 그러니까 삼국시대 이전 시대로 추정을 하고요. 그 때 (우리 나라로) 전달된 것으로 문헌상 남아 있습니다.”

약 60 년 전인 한국전쟁 기간 중에도 천연두가 크게 퍼져, 4만 명 정도가 이 병에 감염됐다고 하는데요. 한국에서는 지난 1960년에 발생한 3 명의 감염환자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천연두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치사율 30 퍼센트, 감염된 사람 3명 가운데 1명은 죽게 된다는 무서운 전염병 천연두…… 겨우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얼굴이 얽거나 시력상실, 지체부자유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하는데요. 이 병은 지중해 전체를 지배하며 고대 최고의 강국으로 군림했던 로마 제국의 몰락과도 어느 정도 상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홍혜걸 박사//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 현제였죠?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죠. 이 분도 AD 180년에 게르만 토벌 도중에 천연두에 걸려서 사망한 것으로 돼있습니다. 실제로 이 분이 돌아갈 이 시기에 로마에서 대유행을 해서요. 수만 명이 사망한 걸로 돼있고, 이 때부터 로마 군이 세계 곳곳으로 영역을 넓혀갈 때마다 천연두도 같이 따라다니면서 로마의 국력을 고갈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죠. 물론 천연두 하나뿐이겠습니까마는 천연두도 로마 몰락의 중요한 원인으로 역사가들을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중남미 대륙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아스텍 제국과 잉카 제국이 유럽인들에게 허무하게 무너진 것도 바로 천연두 때문이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인들의 침략과 함께 천연두의 침략 또한 시작됐던 것입니다.

“아스텍의 패배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페인 군대가 우연히 가져온 생물무기 천연두로 인해 도시 전체가 참혹한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병으로 허약해진 아스텍 인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1519년 11월 스페인의 헤르난도 코르테스는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트란에 도착하면서, 천연두를 앓고 있던 흑인 노예를 데려왔고, 이 노예에 의해 천연두가 원주민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전염병의 공격에 원주민들은 전의를 상실했고, 스페인 군대는 손쉽게 승리했습니다.

//홍혜걸 박사//
“이 부분은 정말 역사의 어떤 잔인한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인데요.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멕시코의 아스텍을 정복전쟁을 했잖아요? 사실은 뭐 절대적으로 병력 숫자라든지 이런 것들은 스페인 쪽이 훨씬 불리했지만 스페인이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코르테스가 사용한 전략 중의 하나가 천연두를 퍼뜨리는 거였어요. 이미 유럽의 군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조상 대대로 천연두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력을, 항체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되는데요. 원주민들, 남미 원주민들은 전혀 면역력이 없는 새로운 바이러스였기 때문에 아주 치명적이었죠. 당시 중남미 원주민의 90 퍼센트가 천연두로 사망한 걸로 돼 있습니다. 오죽하면2천5백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1백60만 명으로 단 2년 만에 줄어들었겠습니까? 결국 1521년에 국가가 망하기까지 했죠.”

중미의 아스텍 문명은 물론, 남미 안데스 산지를 지배했던 잉카 제국의 멸망까지 가져온 천연두…… 북미 지역의 원주민들은 좀 더 강한 내성을 보이는 듯 했으나, 천연두를 이용한 영국군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1763년 북아메리카의 영국군 참모총장인 제프리 앰헐스트는 헨리 보우켓 장군에게 보냈다. 이 편지에서 앰헐스트는 천연두 환자의 농을 담요에 묻혀 이를 비협조적인 인디언 부족들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수천 명의 원주민 인디언들이 쓰러졌다.”

//홍혜걸 박사//
“이 부분은 뭐 남미에서만큼 드라마틱하게 많은 원주민들이 사망하고 그런 증거는 많지 않습니다만, 몇몇 문헌에 따르면 확실히 아메리카 북미 대륙에서도 인디언들에게 영국군들이 고의적으로 말이죠. 예컨대 영국에 협조하지 않는 인디언들 부족에다가 천연두 균이 묻은 담요를 일부러 보내서 퍼뜨리게 했다는, 그리고 그렇게 획책한 편지가 발견이 된 바 있습니다. 실제로도 인디언들이 쇠락을 거듭한 것에 아마 천연두도 한 몫을 한 게 아닌가, 천연두가 북미든 남미든, 유럽인들의 정복전쟁을 도와주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났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천연두에 걸렸다고 해서 모두가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뤘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천연두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사형선고와도 같은 의사의 말에 여왕은 벌컥 화를 내며, 의사를 쫓아내는데…… 하지만 의사의 진단은 사실이었다.”

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천연두 때문에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데요.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 신교도였던 엘리자베스 1세가 이 때 사망하고, 로마 가톨릭 교도였던 사촌 메리 스튜워트가 왕위를 물려받았더라면 지금 영국의 국교는 성공회가 아니라 가톨릭교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신화 역시 이뤄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란 연설로 유명한 링컨 대통령, 노예해방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 역시 천연두를 앓았습니다.

“1813년 11월, 역사적인 연설을 위해 게티스버그로 향하던 링컨 대통령은 열차 안에서 피로와 두통을 호소했다. 그 뒤3주 동안 발진과 함께 심한 고열에 시달렸고, 의사들은 가벼운 천연두 증세로 판단했다.”

당시 의사들의 진단과는 달리, 요즘 학자들은 링컨 대통령의 천연두 증세가 꽤 심각했던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만약 당시 링컨 대통령이 천연두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했더라면, 남북전쟁의 결과나 미국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 (WHO)는 천연두 박멸을 공식적으로 선언합니다.

//홍혜걸 박사//
“지금 천연두만이 유일하게 멸종된 감염 질환으로 기록이 되고 있죠. 1980년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 박멸 선언을 했는데요. 마지막 환자가 77년 소말리아에서 발생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에, 1년 뒤에 영국 버밍검 의과대학 실험실에서 의학용 사진을 찍는 작가가 천연두에 걸려서 사망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어요. 왜 그런 거냐 하면 실험실에 보관하고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온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거고요.”

시두, 마마, 또는 두창이라고도 불리는 천연두…… 천연두는 지금까지 인류가 정복한 유일한 질병이지만 앞으로 이 병이 또다시 발병하지 않으리란 장담은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지난 2002년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미 중앙정보국 (CIA)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과 이란, 러시아, 프랑스가 비밀리에 천연두 균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지구상 어딘가에서 천연두를 이용한 생물무기가 개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이라크 침공에 앞서 당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생물무기 공격에 대비해 미국 군인 50만 명과 함께 천연두 예방접종을 맡기도 했는데요.

만약…… 조용히 실험실에 잠들어있는 천연두 균이 언젠가 세상에 다시 나와 인류를 위협한다면, 인간의 역사가 또 어떻게 바뀔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호기심으로 배우는 역사’, 요즘 신종독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전염병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 특히 천연두가 미친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도움말씀에 의사 출신 의학전문기자 홍혜걸 박사였고요. 다음 주 이 시간에는 14세기 중세 시대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던 흑사병에 관해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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