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5월 10일 오늘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철도가 마침내 완성됩니다.
남북전쟁 종전후 4년만의 일이었습니다.
미 동부에서 서부까지의 거리는 4,800킬로미터,
이것을 철도로 연결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대 역사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역마차로 위험을 무릅쓰고 대륙을 횡단하던가, 아니면 배를 타고 파나마를 돌아 서해안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1869년 오늘, 동부에서 서부 방향으로 철도를 깔아온 유니언 퍼시픽의 철도와, 서부에서 동쪽으로 온 센트럴 퍼시픽의 철도가 유타주 프로먼토리에서 마침내 연결된 것입니다.
미국에 철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830년이었습니다.
1862년 링컨 대통령은 태평양 철도 법에 서명하지만 전쟁 중이었던 당시, 막대한 노동력과 자본이 필요한 철도 건설은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남북 전쟁이 끝난 1865년이후에야 본격적인 대륙횡단 철도 건설이 시작될 수 있었고 그 결과, 1860년대 중후반경에는 미국 대륙의 절반 정도를 기차로 여행할 수 있게 됩니다.
철도 건설 작업은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힘들고 위험한 일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이에
회사측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합니다. 오늘날 서부지역에 아시아계 특히 중국인들이 많은 이유도 바로 이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빠른 속도로 대륙 횡단 철도작업을 진행합니다.
마침내 대륙횡단철도의 완성으로 단시간에 동서가 이어지고 철도는 미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됩니다.
대륙횡단 철도완공은 또 동부지역에 비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발전이 뒤진 서부지역의 불만을 해소시켜주는데 일조합니다.
광부나 목축업자에 이어 수많은 농민들이 서부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태평양 연안이 급속도로 발전한 것입니다.
철도는 산업문명의 상징으로 19세기 미국의 산업자본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948년 5월 10일 오늘
한국에서 최초로 민주주의 선거 원칙에 따른 선거가 실시됩니다.
8.15 해방 후, 통일된 독립 국가 수립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미. 소 공동 위원회의 실패에 이어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했고, 이에 유엔은 한국 임시 위원단을 구성해 한반도에서 선거를 통해 조속히 통일된 정부 수립을 결의합니다. 소련은 유엔의 제안은 반대하고,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북한 입북 거부로 유엔은 우선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만 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토록 결정합니다. 결국 UN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아래 1948년 오늘,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실시된 것입니다.
5.10총선거 후 제헌 국회가 5월 31일 개원됐고 이로부터 두 달뒤인 7월 20일, 이승만과 이시영이 대한민국 제1공화국의 정, 부통령으로 선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