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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고은 시인 영문 시선집 미국서 발간


(진행자) 미국 내 문화계 소식을 전해 드리는 '문화의 향기' 시간입니다. 부지영 기자와 함께 했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소식을 갖고 나오셨나요?

(기자) 네, 오늘은 여러분을 시의 세계로 모시려고 하는데요. 먼저 시 한 편 소개해 드릴 테니까 한 번 들어보시죠. "내려갈 때/보았네/올라갈 때/보지 못한/그 꽃"……. 어떠세요?

(진행자) 짧지만 아주 좋은 시네요. 뭔가 의미도 깊은 것 같고요.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얘기 아닐까요?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마음을 비워야만 볼 수 있게 된다, 뭐 그런 의미인 것 같은데요.

(기자) 해석이 더 멋지십니다. 그런데 이 시를 쓴 시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진행자) 설마 부지영 기자가 쓴 시는 아니겠죠?

(기자) 제가 이렇게 훌륭한 시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시는 고은 시인의 작품인데요. 지난 2001년에 발간된 '순간의 꽃'이란 시집에 수록돼 있죠. 고은 시인 하면 외국에 가장 잘 알려진 한국 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세계 20여 개국에 고은 시인의 시가 번역돼 나와 있고요.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는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여 받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그랬죠. 노벨 문학상 후보에 정식으로 오르기도 했고요. 아직 수상은 못했지만 매년 노벨 문학상 발표 시기만 되면 이름이 오르내리는 시인 아닙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아마 북한 문학계에도 낯설지 않은 이름일 겁니다.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니까 말이죠. 민족공통어 사전을 만드는 사업 관계로 북한도 여러 차례 방문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은 시인은 그야 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고은 시인의 작품을 집대성한 영문 시선집이 최근 미국에서 발간됐습니다. 제목이 'Songs for Tomorrow', '내일의 노래'인데요. 오늘은 이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행자) 부탁합니다.

가수 양희은이 불러서 널리 알려진 노래 '세노야'……. 이 노래가 고은의 시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겁니다. //music// 고은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는 이 밖에도 여러 곡이 있는데요. 이처럼 알게 모르게, 고은 시인의 작품은 한인들의 정서와 생활 속에 녹아 있습니다.

1958년 현대시에 '폐결핵'이란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고은 시인, 지난 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았는데요. 그 동안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영문 시선집 'Songs for Tomorrow (내일의 노래)'가 최근 미국에서 발간됐습니다.

//가흐 씨//
"이 시집은 1960년대에 쓰여진 초기 작품에서부터 2002년까지 나온 작품들 가운데 선별해 모은 것인데요. 고은 시인의 인생이나 작품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죠."

작가이자 편집인인 개리 가흐 씨는 서강대학교 교수인 안토니 수사, 김영무 시인과 함께 공동으로 영문번역을 했는데요. 작품 선별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흐 씨//
"작품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형식이나 성격이 굉장히 다양해서 힘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은들'이라고 복수로 부르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죠. 도저히 한 사람이 썼다고 믿기가 어렵기 때문인데요. 그처럼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내일의 노래'는 가흐 씨가 안토니 수사, 김영무 시인과 공동으로 발간한 세 번째 시집인데요. 세 사람은 앞서도 '만인보'를 영문으로 번역한 'Ten Thousand Lives', '순간의 꽃'을 영문화 한 'Flowers of Moment'를 발간했습니다.

//가흐 씨//
"앞서 '순간의 꽃' 시집을 영문으로 번역할 때도 그랬어요. '순간의 꽃'에는 짧은 시 1백85편이 실려 있는데요. 그런데 그 시가 다 달라요. 각 시가 연결되지 않고 서로 다르거든요. 그런 게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죠."

"노를 젓다가/노를 놓쳐버렸다/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이 같이 아름다운 시들이 담긴 '순간의 꽃' 영문판은 북가주 문학상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나온 '내일을 향한 노래' 역시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가흐 씨는 번역 과정이 세 단계로 진행됐다고 설명합니다.

//가흐 씨//
"한국어 원어민인 김영무 교수가 있고, 안토니 수사, 즉 안선재 교수가 두 번째 단계로 번역을 맡았죠. 그 다음에 제가 들어가서 편집자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흐 씨는 고은 시인의 시를 읽으면 한국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가흐 씨//
"한국인이 아닌 사람에게 고은의 시, 특히 이번에 새로 나온 시 모음집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안내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은은 일제시대 때 몰래 한국어를 배우며 자랐고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느낀 전쟁의 참혹함, 이를 극복해내는 인간의 정신 등을 시에 반영했습니다. 한 때 승려 생활을 하면서 불교의 선을 담은 시를 썼고요. 허무주의와 생에 대한 절망으로 넘치는 시를 썼는가 하면, '화살'을 비롯해 국사독재를 비판하는 참여주의 시를 쓰기도 했죠. 또 전작시집 '만인보'가 있는데요. '만인보'는 인간 정신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거든요."

고은 시인은 한국의 역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에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가흐 씨는 설명했는데요. 고은 시인이 남북한 간의 이해를 돕기 위한 민족공통어사전 발간작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도 그 좋은 예란 겁니다.

(진행자) 부지영 기자,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은 시인하면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잖아요. 가흐 씨는 고은 시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혹시 질문해 보셨나요?

(기자) 네. 그렇지 않아도 물어봤더니 고은 시인이라면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선정위원회가 결정하는 일이니만큼 알 수 없다는 건데요. 한국은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문학적인 나라란 게 가흐 씨의 의견입니다. 훌륭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도 아직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진행자) 정말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번역돼서 전 세계에 더욱 널리 알려지면 좋겠죠? 부지영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기자) 고맙습니다. 고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조동진의 '작은 배' 들려드리면서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진행자) 이번에는 새 영화 소개 순서입니다. 6년 전 텍사스주에서는 아무 죄도 없는 젊은 여성이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약 밀매에 가담했다는 혐의였는데요. 경찰은 이 여성이 유죄를 인정하면 석방해 주겠다며 압력을 가하죠. 하지만 이 여성은 결코 굴하지 않고 당당히 제도에 맞서 승리를 거둡니다. 이 같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나왔습니다. '어메리칸 바이올렛 (American Violet)', '미국의 제비꽃'이란 제목의 영화인데요. 김현진 기자, '미국의 제비꽃', 어떤 영화인지 소개해주시죠.

23살의 미혼모인 디 로버츠,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과 식당 종업원 월급으로 근근이 딸 넷을 키우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디는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체포됩니다.

검찰은 디가 학교 인근에서 마약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말하는데요. 디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기다리게 되는데요. 2000년 당시 텍사스 주법은 아무런 증거가 없더라도 단 한 사람의 제보만 있으면 기소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디에게 유죄를 인정하라고 압력을 가하는데요. 그러면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해주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집으로는 돌아갈 수 있지만 평생 범법자란 멍에를 쓰게될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다고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싸우려면 계속 구치소에 있어야 하고, 아이들 양육권 마저 잃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갈림길에 선 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당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텍사스 지방 당국의 작전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대부분 디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흑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검찰의 압력에 따라 유죄를 인정하곤 했는데요.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민권 단체 '미국시민자유동맹 (ACLU)' 이 디를 돕기 위해 나섭니다. 이 같이 공정치 못한 일이 또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함께 싸우겠다는 거죠.

이 같은 영화 속 얘기들은 텍사스 주의 헌이란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인데요. 실제 사건의 주인공인 레지나 켈리 씨는 영화 속 내용 가운데 98 퍼센트가 사실이라고 밝힙니다.

믿기 어려운 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대부분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란 건데요. 영화에서 묘사되지 않았지만 더 심한 일도 있었다고 켈리 씨는 설명했습니다. 켈리 씨는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친어머니 역시 검찰의 요구를 따르길 바랬다고 하는데요. 검찰이란 엄청나게 강력한 기관의 보복을 받게 될 지 모르니,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며 설득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켈리 씨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옳은 일은 어디까지나 옳은 일이고, 그릇된 일은 그릇된 일이란 교육을 받고 자랐을 뿐만 아니라, 딸들에게도 모범이 돼야 했다는 겁니다.

영화 '어메리칸 바이올렛'의 극본을 쓴 빌 헤이니 씨는 6년 전 라디오에서 켈리 씨의 얘기를 들은 뒤, 텍사스로 켈리 씨를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기록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는데요? 하지만 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극영화로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헤이니 씨는 사람들이 웃고, 울고, 감동을 받는 등 몰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 대단한 여성의 얘기를 통해 관객들이 영감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는데요. 한 평범한 미국인이 지역사회를 위해 용기를 낸 것이라며, 사람들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얘기라고 헤이니 씨는 설명했습니다.

평범한 식당 종업원이었던 레지나 켈리 씨는 제도에 당당히 맞서 승리를 거두고, 결국에는 텍사스 주의 법을 바꿔놓게 되는데요. 레지나 켈리 씨를 모델로 한 영화 '어메리칸 바이올렛'의 주인공 디 로버츠 역은 신인 여배우 니콜 베하리 씨가 맡아 열연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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