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작원으로 지난 1987년 대한항공, KAL 여객기 폭파 사건을 저질렀던 김현희 씨가 은둔생활 12년 만에 11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부산에서 지난 1978년 북한 당국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다구치 야에코 씨 가족을 만났는데요,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987년 북한의 사주로 KAL 858기를 폭파한 범인 김현희 씨가 10일 부산 벡스코 전시장에서 일본인 납북 피해자인 다구치 야에코 씨의 가족을 공개적으로 만났습니다.
김 씨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7년 전국 공안검사를 대상으로 한 특별강연 이후 12년만의 일입니다.
다구치 야에코 씨는 지난 1978년 일본에서 북한에 납치된 뒤 2년 동안 김 씨와 함께 살면서 일본어 선생 역할을 한 ‘이은혜’와 동일인물로 알려졌습니다.
부산 벡스코 전시장에서 다구치 씨 가족과 면담한 뒤 기자회견을 가진 김 씨는 그동안 한국 내 일각에서 제기돼 온 KAL기 폭파 사건의 조작설을 정면으로 부인했습니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이 KAL기 사건은 북한이 한 테러이고 저는 더 이상 가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 씨는 “대부분의 KAL기 폭파 사건 유가족들은 당시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알고 있다”면서 “20년이나 지난 사건을 누가 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또 “유가족들이 KAL기 폭파 사건을 북한이 저지른 테러 사건임을 인정하고 다른 목적이 없다면 면담에 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씨는 전임 노무현 정부 시절 KAL기 사건의 진상을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일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 채 “현 정부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는 지난 2003년 한국의 한 TV 방송국에서 KAL기 사건의 조작 의혹을 제기할 당시 “국가 정보원이 나를 방송국에 출연시켜 바보로 만들려 했다”고 최근 한 월간지를 통해 주장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후반기인 2006년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 등이 참여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가 재조사를 벌여 북한 공작원에 의한 사건임을 재확인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한국 정보 당국은 이 사건의 조작설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AL기 폭파 사건은 지난 1987년 11월29일 승객과 승무원 1백15 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 여객기가 버마 근해에서 공중 폭파된 사건입니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북한 대남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기내에 두고 내린 시한폭탄과 술로 위장한 액체 폭발물에 의해 폭파됐다고 발표했었습니다. 김현희 씨의 나이는 당시 25살이었습니다.
북한은 이 사건으로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김 씨는 다구치 씨 생사 문제와 관련해 “1987년 1월부터 10월까지 북한 초대소에서 생활하며 들은 것은 ‘다구치 씨를 어디로 데려갔는데 어디인지는 모르겠다’는 것이었다”며 “사망한 게 아니라 다른 곳에 간 것으로 생각했고 1986년 결혼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측은 그동안 다구치 씨가 198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유골은 호우로 유실됐다고 밝혔지만 다구치 씨 가족과 일본 정부는 북측 설명에 의혹을 가져왔습니다.
김 씨는 다구치 씨 장남 고이치로 씨에 대해 “어머니를 많이 닮아 잘 생겼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다구치 씨가 제가 이렇게 가족을, 아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아들을 만나는 걸 안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생각하고 또 이 자리에 다구치 씨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 김 씨와 다구치 씨 가족 면담은 김 씨가 지난 1월 NHK 등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구치 씨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다구치 씨 가족이 이를 수용하면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면담 성사를 위한 협력을 요청해 이뤄졌습니다.
김 씨는 KAL기 폭파 사건으로 사형판결을 받았고 1990년에 특별사면됐습니다.
이후 책 집필과 강연 활동 등을 하다가 전직 국가안전기획부 직원과 결혼한 1997년 12월 이후 공식활동을 전면 중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