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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 ‘남북한 선거제도 큰 차이’


북한에서는 8일 '3기 김정일 체제'를 예고하는 최고인민회의 12기 대의원 선거가 실시됐습니다. 북한의 대의원 선거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 해당하지만 한국의 선거 방식과는 크게 다르다고 한국 내 탈북자들은 지적하는데요, 탈북자들이 보는 남북한 선거제도의 차이를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 해당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8일 북한 전역에서 일제히 치러졌습니다.

북한의 선거제도는 남한과 비교할 때 절차상으로는 비슷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게 탈북자들의 얘기입니다.

북한 헌법상 최고 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선거일 두 달 전에 선거 날짜를 공고하고, 선거일 발표 이후 열흘 이내에 중앙선거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이어 선거일 보름 전에 선거인 명부 작성과 공시를 거쳐, 선거일 사흘 전 후보 등록을 마칩니다.

후보등록이 선거일 사흘 전에야 이뤄지므로 선거운동 기간이 남한에 비해 상당히 짧은데다, 단일후보이므로 한국처럼 후보자가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투표를 독려하는 식으로 선거운동이 전개됩니다.

북한 함흥 시에서 교원으로 근무했던 탈북자 김강일 씨는 “후보자가 직접 나서 선거운동을 하는 한국과 달리 북한은 선거 일자가 확정되면 가장 말단 주민 조직인 인민반이나 교원들, 사회단체를 동원해 찬성투표를 독려하는 행사들을 연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997년에 탈북한 이애란 씨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한국에서 여러 후보들이 거리를 누비며 지지를 호소하거나 TV방송에서 상대 후보와 토론을 하는 모습은 북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양강도에서 태어나 2005년에 탈북한 이명학 씨는 “지난 해 총선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내온 후보들의 선거공약집을 꼼꼼히 읽은 뒤 지지후보를 결정했다”며 “유권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선거전에 각 후보자들마다 선거유세를 하고 이념이나 정책이 다른 정당 사이에 홍보 경쟁을 하다 보니 선거에 참여하게끔 유발하게 됩니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면 나한테 유리하겠구나를 마음 속에 갖게 되고 그 당이 당선됐을 때 내가 일조했다는 그런 긍지가 생기고 나도 한 표를 던짐으로써 내 이익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북한 선거와 남한 선거 때 갖는 마음가짐의 차이입니다.
선거날의 표정도 사뭇 다릅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투표가 이뤄지는 남한에 비해 북한은 명절날 같은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기 때문입니다.
2005년에 탈북한 함흥시 출신의 정영일 씨는 “아침 일찍 투표를 끝내고 각자 볼일을 보러 가는 남한과는 달리 북한에서 선거일은 명절과도 같다”며 “인민반장의 지시로 옷도 가장 좋은 옷으로 골라 입고 이웃들과 함께 음식을 해먹는다”고 전했습니다.
만 17살 이상의 북한 유권자들은 당국에 의해 조성된 `축제' 분위기 속에 미리 받은 번호표와 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공민증을 갖고 주민투표소로 갑니다.

투표장에 나오지 않거나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탈북자들은 전합니다.

탈북자 김강일 씨는 “한국에선 투표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지만 북한에선 투표를 하지 않거나 반대를 하면 반체제 행동으로 간주돼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심하면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에 간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에선 지역구별로 후보가 한 명 밖에 없고 정당도 조선노동당 밖에 없지 않습니까 한국은 다당제로 여러 정당에서 후보들이 나오지만 북한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선거장에 지역주민들 이름을 다 붙여놓습니다. 만일 아무 이유 없이 선거에 불참했다 하면 정치적인 보복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차성주 사무국장도 “찬성투표를 할 경우에는 투표 용지를 투표함에 그냥 넣고, 반대할 경우에만 기표소에 들어가 반대 의사를 하게 돼 있어 주민들이 반대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북한 당국이 말하는 100% 찬성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100% 투표율을 확보하기 위해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출장과 여행 등 주민 이동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함경도에 살던 탈북자 이옥희 씨는 “선거를 앞두고 국경지역 단속을 더 강화하거나 여행증명서를 발급하지 않는 등 당국의 통제가 더욱 심해진다”며 “선거는 일종의 내부 체제결속을 위한 하나의 행사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투표율이 저조한 남한사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탈북자 정영일 씨의 말입니다.

“남한에 와서 민주주의 선거가 돼서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것은 좋지만 한국 국민들은 너무 자유롭다 보니 선거에 많이들 안 참가하시더라구요. 너무 민주주의를 중요시 하다 보니깐 문제가 될 것도 같습니다. 원래 다 참가해서 반대할 것은 반대해야 하면서 주권을 다 행사해야 하는데… 그에 비해 북한(주민들)은 주권을 다 행사하고 싶은데 강제적인 방법이 동원되니깐 안타깝고…”

정 씨는 “여러 후보가 출마해 누구나 평등하게 투표할 수 있는 한국 선거문화가 좋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자유로워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을 볼 때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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