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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 한국 노근리 사건 소재로 신간 소설 출간 ‘라크와 터마이트’


이번에는 미국내 문화계 소식을 전해 드리는 ‘문화의 향기’ 시간입니다. 오늘은 과거 한국의 노근리 사건을 소재로 한 신간 소설 ‘라크와 터마이트 (Lark and Termite)’에 관해 전해 드리고요. ‘혁명의 길’이란 뜻의 새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도 소개해 드립니다.

미국 작가가 과거 한국 충청북도 영동군 노근리에서 발생했던 미군의 민간인 공격 사건을 다룬 소설을 펴냈습니다.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미군이 한국 피난민들을 공격해 숨지게 한 사건인데요. 이 사건은 지난 1999년 AP 통신의 보도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제인 앤 필립스(Jayne Anne Phillips)씨가 이 사건을 소재로 ‘라크와 터마이트’, 라는 제목의 새 소설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시죠? 부지영 기자, 부탁합니다.

“여기 있으면 안전할 겁니다.” 비행기 소리를 듣자마자 레빗은 굴다리를 향해 돌아서며 이 말을 생각한다. 하지만 폭격이 시작됐을 때 그는 피난민 행렬에서 쳐져 있었고, 한 팔에는 남자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는 굴다리를 향해 달리라고 영어와 완벽한 한국어로 소리친다. 철로 아래 쌍굴다리로 피하라고…… 하지만 비가 오듯 폭탄이 떨어지고 기관총이 작렬하는 가운데 아무도 레빗의 말을 듣지 못한다. 미군 에프-80 전투기 서너 대가 급강하를 하며 지나가자, 일렬로 걷고 있던 피난민들이 차례로 쓰러진다. 아이들을 안고 가던 여자와 노인네들이……”

1950년 7월 26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한국전쟁 초기 혼란스런 상황에서 미군 전투기들이 한국인 피난민 행렬을 공격합니다. 피난민들을 호송하던 로버트 레빗 상병은 이들이 굴다리 안으로 피신하도록 돕지만 빗발치는 총알을 피하지 못합니다. 피난민들과 함께 굴다리 안에 몰린 레빗 상병……. 미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곧 세상에 태어날 아기를 떠올리며 죽어갑니다.

그리고 9년 뒤인 1959년 7월 26일,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한 마을.

“난 터마이트의 의자를 마당의 나무 아래 옮겨놓는다. 노니가 그를 안고 나온다. 나무는 씨로 가득 차서 씨주머니가 늘어져 있다. 씨앗은 곧 공기 중으로 날아갈 것이고,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노니는 집안에 꽃가루가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을 모두 닫을 것이다. 그러면 터마이트는 밖에 나가 의자에 앉아있고 싶어할 것이고, 내가 다림질이나 설거지를 하기 위해 그 애를 집안에 두기라도 하면 내내 내보내 달라고 조를 것이다.”

미국 작가 제인 앤 필립스 씨의 네 번째 소설 ‘라크와 터마이트’는 한국 충북 노근리와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950년 7월 한국 전쟁 당시 노근리에서 죽어가는 레빗 상병의 얘기와 함께, 9년 뒤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아홉 살이 된 그의 아들 터마이트와 여덟 살 위인 이복 누나 라크가 겪는 얘기가 나란히 펼쳐집니다.

레빗 상병이 숨질 무렵에 태어난 터마이트는 눈이 잘 안 보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단지 마당의 의자에 앉아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걸 좋아하는데요. ‘라크와 터마이트’를 쓴 작가 필립스 씨는 웨스트 버지니아 주 출신으로 오래 전 기억을 되살려 소설을 썼습니다.

//필립스 씨//
“예전에 고향의 친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그 때 어느 집 마당에 남자 아이가 앉아있는 걸 봤어요. 여덟 살 내지 아홉 살쯤 된 아이였는데 마당의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건식 세탁에 쓰는 파란색 봉지를 쥐고 불고 있었어요. 그 아이가 누구냐고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잘 모르겠다면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그런 모습으로 앉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 오랫동안 그 아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어요. 아마 그 아이가 누구였는지,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제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게 아닌 가 싶어요.”

그렇다면 노근리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필립스 씨//
“거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죠. 이미 아이들 세계에 관한 부분을 쓴 뒤였는데요. 아이들 얘기에서 쌍굴다리가 중요하게 다뤄지거든요. 1999년 9월에 AP 통신 기자들이 쓴 기사가 나오면서 노근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요. 그 때 시사주간지 타임 지 표지에 노근리 쌍굴다리 사진이 실렸는데, 제가 소설에서 상상했던 쌍굴다리와 너무 비슷한 거에요. 그 사진을 보자마자 깨달았죠. ‘아, 터마이트의 아버지는 노근리에서 죽는 거구나’하고요.”

소설 ‘라크와 터마이트’는 일부 배경이 한국이니만큼 한국말이나 한국 문화에 관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필립스 씨는 동료 한인 작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필립스 씨//
“AP 통신 기사와 관련해 노근리 사건에 관한 자료를 가능한 한 다 읽었고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한인 작가 친구들의 도움도 받았죠.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제가 다니는 세탁소 주인도 한인이거든요. 한국어를 영어 철자로 표기하면서 그 분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행 작가 한 분을 소개 받아 연락을 했는데, 마침 그 때 그 분이 한국을 방문 중이었어요. 일부러 노근리에 가서 쌍굴다리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죠. 아직 한국에는 못 가봤는데요.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소설 제목인 ‘라크와 터마이트’는 아버지가 다른 남매 사이인 주인공들의 이름인데요. 종달새와 흰 개미란 뜻입니다.

//필립스 씨//
“소설에서 애들의 엄마인 롤라가 레빗에게 말하죠. 레빗 상병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 나오는데요. 딸이 무사히 잘 자라서 날아가길 바란다는 의미로 새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하죠. 터마이트는 처음 이모인 노니 집에 왔을 때 너무 몸이 작아서 마이트 (mite), 진드기란 별명을 얻게 되는데요. 항상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벌레가 움직이는 것 같다고, 나중에 흰 개미란 뜻의 터마이트로 별명이 바뀌게 되죠.”

작가 필립스 씨는 소설 ‘라크와 터마이트’의 요점은 세상이 평행으로 간다는 점이라고 설명합니다.

//필립스 씨//
“이 쪽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른 쪽 세상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거죠. 또 전쟁 자체가 학살이란 점도 이 소설이 강조하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또한, 주인공들의 관계를 통해 형제자매 간의 사랑이 얼마나 끈끈한가를 보여주는데요. 나아가 새로운 가족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필립스 씨는 거의 9년 동안에 걸친 오랜 작업 끝에 ‘라크와 터마이트’를 발표했는데요. 비평가들은 ‘시처럼 아름다운 소설’, ‘가족 간의 사랑을 밀도 있게 그린 소설’, 또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는 소설’이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문화의 향기, 이번에는 새 영화 소개 순서입니다. 미국 작가 리차드 예이츠 (Richard Yates)의 1961년 소설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가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50년대 미국 교외 주거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영화 제목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혁명의 길’이란 뜻이지만, 주인공 부부가 사는 거리 이름이기도 합니다. 1997년 영화 ‘타이태닉’에서 슬픈 사랑을 나눴던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릿이 11년 만에 같은 영화에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어떤 영화인지, 김현진 기자, 소개 부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미국…….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큰 꿈과 야심에 부풀어 있는 젊은이들인데요.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교외 주거지에 살게 되면서 두 사람의 꿈은 점차 시들어 가는데요. 프랭크는 직장 일을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일 시내로 출근하고요. 에이프릴 역시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진저리를 냅니다.

급기야 두 사람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는데요. 에이프릴은 두 사람이 원한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며, 더 이상 행복한 척 살아갈 수 없다고 외칩니다. 프랭크 역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라고 소리치는데요.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싫은데도 불구하고 매일 직장에 나가 10 시간씩 일한다는 겁니다.

주인공 에이프릴 역의 윈슬릿 씨는 프랭크와 에이프릴이 서로 대화 하는 법을 잊어버린 거라고 설명하는데요. 에이프릴이 더 이상 만족한 척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고 말을 하면서, 서로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겁니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이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닫고요. 서로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점도 알게 됩니다. 에이프릴은 모든 것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자신이 바라던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데요. 이는 상당히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윈슬릿 씨는 말했습니다.

남편 프랭크 역의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씨는 자신의 역할은 그 반대로, 전혀 영웅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프랭크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원래 품었던 포부와 현실 사이에서 옴짝 달싹 못한다는 건데요. 프랭크는 현실을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할 용기가 없다는 거죠.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연출한 샘 멘덴스 씨는 1999년 ‘어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한데요. ‘미국의 아름다움’이란 뜻의 ‘어메리칸 뷰티’ 역시 교외에 거주하는 중산층 미국인들을 주인공으로, 삶의 허무함과 무기력함을 파헤친 영화입니다. 멘데스 감독은 케이트 윈슬릿 씨의 남편이기도 한데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원작 소설은 1960년대에 쓰여졌지만, 현대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멘데스 감독은 말합니다.

멘데즈 감독은 소설과 영화 모두 1950년대 뉴욕 시와 커네티컷 주 교외라는 거대한 그림을 배경으로 시작한다고 말하는데요. 뉴욕의 그랜드 센트랄 역, 번화한 거리를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되지만, 점점 배경이 축소되면서 나중에는 빈 방에 두 사람 만 남게 된다는 겁니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50년대에 관한 영화도 아니고, 당시 여성들이 겪었을 어려움에 관한 영화도 아니라고 멘데스 감독은 설명 하는데요. 그저 빈 방에 남게 되는 남자와 여자, 두 남녀의 꿈과 사랑, 좌절을 그린 영화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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