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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집] 악화일로 달려온 남북관계


2008년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2주 후면 어느덧 새해를 맞게 되는데요,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2008년 한 해 주요 북한 관련 뉴스를 정리하는 연말특집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여덟 차례로 나눠 보내드리는 연말특집,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대해 서울의 김환용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올 2월 이명박 새 정부가 한국에 등장하면서 남북관계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고되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전임 정부 10년 간 이어졌던 대북 햇볕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른바 '비핵 개방 3천'이라는 새로운 대북정책 밑그림을 제시하며 핵 문제 진전을 대북 협력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북한 문제를 이른바 '우리민족끼리' 정신에서 탈피해 국제 공조를 통해 풀려는 새로운 접근방식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한 달여 동안 북한은 6.15와 10.4 두 남북 정상선언에 대한 이행을 요구하는 수준에서 대남 공세를 자제했습니다. 하지만 김태영 합참의장의 대북 선제공격 발언 등이 불거지면서 북측은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서서히 높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26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지난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의 비핵화 정신을 강조하면서 핵 문제 진전을 대북정책과 연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기본합의서에는 북한 한반도 핵에 관련된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남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마도 핵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 통일부 모든 간부들이 이제까지 해오던 그런 방식의 협상 자세를 바꿔야 합니다."

북측은 이 때부터 한국의 대통령에 대한 본격적인 비난을 시작했습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4월1일자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라고 비난하고 한국의 비핵 개방 3천 대북정책도 전면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조선중앙방송도 이명박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그 무슨 대북정책 추진 4대 원칙이라는 것을 내걸고 6.15 이후 좋게 발전해 온 북남관계의 문을 걷어내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이명박이 도대체 그 누구의 개방을 운운할 체면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북측은 곧이어 남북 당국 간 대화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4월17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두자고 북한에 제의했지만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후 6.15와 10.4 두 정상선언 이행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한이 지루한 신경전을 계속하다가 7월11일 한국 측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총격 피살사건이 터지면서 남북관계는 빠르게 얼어붙었습니다.

한국의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사건 발생 직후 한국 측 당국자의 현장 조사를 통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등을 북측에 요구하며 금강산 관광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북측은 하지만 이 같은 한국 정부의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어 남북은 7월 말 아세안 지역 안보포럼에서 금강산 사건과 6.15, 10.4 선언 관련 문구를 넣고 빼는 문제로 한바탕 외교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4개월 간 당국 간 대화가 단절된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 한국 측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 한국의 유엔 대북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 등의 문제가 연이어 불거지면서 남북 사이에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이 기간 동안 남북 경제협력이나 민간단체들의 인도적 대북 지원 등 민간교류는 그나마 별 문제 없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북한 당국이 12.1 대남 강경 조치를 발표하면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북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의 통일'을 언급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북침 전쟁을 최후 목표로 선포한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개성관광과 경의선 철도 운행 중단, 남북 경협협의 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상주인력 감축, 육로 통행 제한 차단 등을 골자로 한 고강도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즉각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북한이 이런 조치들을 실행하게 된다면 그동안 쌓아온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결국 북한이 12.1 조치를 실행에 옮기면서 남북관계는 2000년 6.15 공동선언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지금의 남북관계가 내부적인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해 변할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오바마 새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전개될 미-북 관계가 남북관계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습니다.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 "2009년 남북관계는 남북 당국 간 관계를 통해선 풀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졌고 특히 북-미 관계 개선 조짐이 보일 수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의 출범으로 인해서 북-미 직접대화,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까지 상정을 하는 정권이기 때문에 특히 북-미 간 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외부변수가 강조되는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이라는 한국 정부의 태도와 미국의 오바마 새 행정부에 대한 북한 당국의 기대감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한국국방연구원 차두현 박사]

"부시 행정부 후반기 들어서 대남, 대미정책 추진 여건들이 상당히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이런 호기를 활용해서 남북한 관계에서 기싸움에서 이기겠다,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 북한의 생각이었다면 지금 북한의 입장에선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이 오히려 이런 여건을 더 강화시켜 준다는 위시펄 싱킹(wishful thinking)을 계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한으로선 대미관계 개선이 막다른 골목에 이를 때까지 현재의 대남 강경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남북 당국 간 정치적 갈등은 경제협력을 포함한 민간 교류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남북관계의 전면적 경색은 당분간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12.1 조치로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개성공단의 앞날에 대해서도 이런 맥락에서 어두운 전망들이 많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박사는 남북한이 정경분리 원칙에 대해 서로 대조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사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직접적으로 놓고 요구조건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카드로서 활용을 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하나만을 놓고 이를 살리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남북 간에 서로 좀 의견이 잘 안 맞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여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 문제도 잠복해 있는 남북관계 변수로 꼽히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 통치행위를 못할 정도로 심각할 경우 한국 측의 대북 강경책과 북측의 벼랑끝 전술이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 한 해 남북관계의 흐름이 과거 남북 대결시대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결론 내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미-북 관계나 북 핵 문제 진전과 함께 남북한 당국이 유연성을 발휘하는 상황이 올 경우 남북관계는 과거보다 오히려 진일보한 새로운 관계정립이 가능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일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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