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중국 개혁개방 30주년 특집] 개혁개방과 북한


중국이 다음 달로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지난 25일부터 `중국 개혁개방 30년'을 조망하는 특집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네 번째, 마지막 순서로 중국의 개혁개방이 북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봅니다. 김연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지난 2006년 1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당시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남부 광둥성의 광저우와 션젼 경제특구를 방문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두 경제특구는 수많은 수출기업이 들어서 있는,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 입니다. 이 곳에서 김 위원장이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직접 확인한 만큼, 북한의 경제개혁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북한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했던 1978년 당시만 해도 떨떠름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자본주의 국가들에 손을 내밀어야 했습니다. 태국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무역참사관을 지낸 홍순경 씨의 말입니다.

"동구가 무너지고 사회주의 시장이 파괴되면서 북한으로서는 무역을 자본주의 나라들 하고 해야 하는 형편이 됐는데, 그래서 동남아로 많이 머리를 돌렸죠. 그러나 북한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제한되고 부족하다 보니까 무역고는 점점 줄었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 당국은 무역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중국식 개혁 조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수출과 수입을 모두 계획하는 사회주의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던 겁니다. 홍순경 씨의 말입니다.

"계획이 떨어지면 계획을 수행하느라고 기업소인들이 손이야 발이야 하면서 수출품 받아내서 겨우 수출하면, 그 돈이 국가에 들어가고. 또 수입품을 들여오자면 돈이 없어서 애를 먹고, 그렇게 세월 보냈죠."

이렇게 수출과 수입이 겉돌다 보니 무역을 통해 경제를 확대재생산하는 체제가 북한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대신 가공이 별로 필요 없는 지하자원이나 농수산물 같은 1차 상품을 수출하고, 공업제품들을 수입하는 무역구조가 뿌리내렸습니다. 중국식 개방과는 거리가 멀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중국을 모방한 경제특구 사업도 성과가 별로 없었습니다. 북한은91년 말 함경북도 라진 선봉에 경제특구를 설치해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각종 우대 조치를 내놓았지만, 투자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세계은행에서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총재의 수석자문관을 지내면서 북한경제를 담당했던 브래들리 밥슨 (Bradley Babson)씨의 말입니다.

90년대 당시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는 대규모 식량난과 경제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 입장에서 볼 때 투자위험이 매우 높은 나라였다고 밥슨 전 자문관은 말했습니다. 큰 돈을 들여 외국에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중장기적인 투자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추진된 개성공단 사업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미국 의회조사국에서 개성공단 문제를 다뤄 온 딕 낸토 (Dick Nanto) 박사는 남북한 관계 개선과 북한이 경제난을 타개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 중국의 대북 개혁개방 압력 등이 개성공단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개성공단은 무엇보다 한국의 현대그룹과 토지공사가 공단 조성을 주도했기 때문에 개별 투자기업들로서는 그만큼 투자위험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도 북한의 정치적 외풍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우선 북 핵 문제로 인한 정치적 긴장 때문에 공단 규모가 본격적으로 확장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교류와 경제협력이 크게 줄면서 사업 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있다는 지적이 높습니다.

북한 당국의 경제개혁 조치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2002년 이른바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내놓았습니다. 국가가 정한 물건 가격을 현실에 맞게 크게 올리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거기에 맞춰 올렸습니다. 시장을 합법화하고, 지방과 기업소에 권한을 대폭 위임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이제까지 나온 조치 가운데 가장 획기적인 경제개혁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관리할 능력이 안 되는 부분만 민간에 넘겼을 뿐 국가 전체적인 경제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브래들리 밥슨 전 세계은행 자문관은 지적합니다.

밥슨 전 자문관은 돈을 맡기거나 빌릴 수 있는 은행제도가 들어서지 못하고 있고, 정부의 재정 지출과 수입이 계획경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북한의 경제개혁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북한이 중국과 달리 개혁개방에서 이처럼 한계를 보이고 있는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습니다.

우선 국가 규모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중국은 국토가 방대하기 때문에 경제개방을 해도 그 파급효과를 경제특구와 주변지역으로 한정시킬 수 있지만, 북한과 같은 작은 나라는 개방의 효과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수 있습니다. 체제 위협을 걱정하는 북한 지도부가 개혁개방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북한의 시장 잠재력이 중국에 비해 워낙 작기 때문에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군사적 위협을 중시하는 시각에서는 북한이 중국에 비해 외부 위협에 훨씬 취약하기 때문에, 폐쇄적인 체제 아래서 개혁개방을 도모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그러나 노르웨이 국제평화연구소의 스타인 퇴네손 (Stein Tønnesson) 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결단이라고 강조합니다.

북한과 중국, 베트남의 개혁개방 사례를 비교연구해 온 퇴네손 소장은 30여년 전 중국 지도부 안에서도 개혁개방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지만,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이 체제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결단을 내렸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개혁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지도자의 굳건한 믿음과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는 겁니다. 퇴네손 소장은 중국보다 훨씬 작은 베트남도 지도부의 결단으로 개혁개방에 나섰던 만큼, 국가 규모는 개혁개방에 큰 걸림돌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중국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주변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도 중요합니다.

워싱턴 소재 미국평화연구소 (USIP)의 존 박 (John Park) 연구원은 북한이 세계경제에 통합돼 경제발전을 이루려면 점진적인 개혁 보다는 정치, 외교, 경제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일본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핵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야 경제 문제도 근본적으로 풀릴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은 중국,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과거 미국과 전쟁을 치른 나라입니다.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미국과 외교관계를 정상화 한 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부터 정상적인 교역 상대국으로 인정받고 세계무역기구 (WTO) 에도 가입해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 북한과 크게 다른 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