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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간첩 사건] 동독 난민 간첩, 서독은 어떻게 다뤘나


탈북 간첩, 원정화 사건의 파장이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동독 출신 학자들로부터 한국의 탈북 간첩 사건에 대한 견해와 동독의 경험을 세 차례에 걸쳐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번째 순서로, 동독과 서독에서 발생한 간첩 사건과 북한 간첩 사건에 대한 시사점 등에 대해 알아봅니다.

진행자: 한국에서 이번 간첩 사건이 보다 반향을 일으킨 것은 바로 탈북자로 위장했다는 때문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많은 '진짜 탈북자'들이 피해를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데요.

답: 네, 한국 정부가 앞으로 탈북자 입국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중국 등 제3국에서 한국 입국을 기다리고 있는 탈북자들의 우려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독 역시 통일 전 동독 난민들을 받아들일 때 한국과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었습니다. 서독으로 탈출하는 난민을 간첩으로 활용하는 것은 동독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동독 출신으로 독일의 통일 과정을 연구해온 미국 조지타운대학의 디터 데케 교수에게 당시 서독이 동독 난민과 간첩을 어떻게 구분했냐고 물었더니, 진짜 난민과 간첩을 구분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동독 출신인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의 루디거 프랭크 교수도 동독 난민들은 서독 입국 후 몇 주 간에 걸친 서독 정보기관의 혹독한 인터뷰를 거쳤지만 이는 간첩을 적발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동독에서 훈련을 잘 받은 간첩들의 경우 서류가 완벽하고, 인터뷰를 통해 간첩임을 분간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한국에서는 탈북자를 가장한 간첩의 활동을 막기 위해 정보 당국의 입국 심사가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지 않습니까. 구분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대안이 있겠습니까.

답: 프랭크 교수 역시 실제로 난민과 간첩을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간첩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바깥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이 있지만 그 것 역시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 국내 정보 활동을 강화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 간첩이건 미국 간첩이건, 그 어느 나라 간첩이건 간첩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는 마찬가지이고, 이는 어느 나라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설명입니다.

프랭크 교수는 간첩 문제가 탈북자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물론 북한에서 간첩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탈북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이 것이 갑작스런 중대한 안보상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늘 간첩의 위협은 있어왔고, 북한이 존재하는 한 이같은 위험은 계속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진행자: 문제는 탈북자들이 늘어날수록 이같은 위험이 점점 커질 것이라는 있지 않습니까.

답: 동독 난민 출신인 데케 교수는 건전한 회의적인 시각은 도움이 되지만 동서독의 경험에 비춰볼 때 모든 탈북자들을 의심의 눈길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데케 교수는 '아기 목욕물을 버리려고 목욕통에 든 아기까지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교화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데, 탈북자들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입니다.

프랭크 교수 역시 같은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앞으로 탈북자들의 수는 더욱 더 늘어날텐데 간첩 사건과 탈북자 정책을 연관시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프랭크 교수는 입국하는 모든 탈북자들 가운데 누가 간첩인지 가려내기는 불가능하며, 효율적이지도 않다며 이같은 접근 방식은 탈북자들에게는 비극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데케 교수는 적국의 정보국이 고위 정보를 원하면 의사결정 기구에 가장 가까운 곳에 간첩을 투입한다며, 주요 정당이나 정부, 기관 등을 집중 감시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데케 교수는 간첩 수사를 탈북자 쪽으로만 돌리면 거꾸로 한국 내 좌파 인사 포섭 등을 통한 다른 방법의 간첩 활동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동서독의 경험을 현재의 남북한 상황에 바로 대입하기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같습니다. 분단과 대치 상황은 비슷했지만 분명히 다른 면이 있으니까요.

답: 네, 그렇습니다. 데케 박사는 서독 측이 동독 난민 가운데 간첩을 가려내는 것은 실제로 간첩 행위를 줄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동독은 서독인들을 직접 간첩으로 '고용'하는 사례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케 박사는 통일 전 서독 내 대부분의 간첩은 서독 국적의 국민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만큼 포섭이 광범위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1974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군타 기욤 비서관이 동독이 심어놓은 간첩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브란트 총리가 자진사퇴했던 예가 있습니다. 귄터 기욤은 1974년 적발된 뒤 서독으로부터10년 형을 선고 받았지만 5년 후 동독과의 수감자 교환을 통해 사실상 석방, 동독에서 윤택한 삶을 누리다 사망했습니다. 동독은 이처럼 서독 정부의 고위직까지 간첩으로 포섭했으며, 특히 서독 기관의 독신 여성들을 간첩으로 고용한 사례가 많았다고, 데케 교수는 전했습니다. 총리의 여비서 등 주요 기관 여비서들에 대한 '미남계'로 주요 문서들이 동독으로 보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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