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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간첩 사건] 어떻게 볼 것인가?


탈북 간첩, 원정화 사건의 파장이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 내 탈북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시선이 차갑게 변했다고 걱정하고 있으며, 인권단체들은 탈북자 구호 활동의 위축과 제3국 주재 탈북자들의 한국 입국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과거 서독 역시 동독 난민 출신 간첩 사건 등으로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은 동독 출신 학자들로부터 한국의 탈북 간첩 사건에 대한 견해와 동독의 경험을 들어봤습니다. 오늘부터 세 차례에 걸쳐 전해드립니다.

진행자: 탈북 간첩 원정화 사건에 대한 한국 언론들의 최근 보도를 보면 한국사회가 이번 사건으로 상당히 놀란 듯 한데요.

답: 네, 1970, 80년대 반공교육을 받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간첩'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대부분 매 학기마다 반공 포스터 그림을 그리고, 반공 웅변대회, 반공 표어짓기 대회가 치러졌던 기억을 갖고 있을텐데요. 이전 세대의 반공교육은 더 심했죠. '간첩'이란 단어는 이전 세대의 '일제 순사'보다 더 악랄하고 무서운 이미지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2008년에도 탈북자를 가장한 간첩이 한국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다는 데 대해 한국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겠죠. 잊혀졌던 간첩신고 번호 113을 외우던 시절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데요. 한국처럼 분단 상황과 간첩 사건, 통일을 먼저 경험한 독일 출신 학자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습니다.

동독 출신으로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했던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의 루디거 프랭크 교수는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을 이해한다면서도 실상을 좀 자세히 들여다 보면 현 상황에 대한 여론의 해석이 그다지 적절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프랭크 교수는 독일 통일 과정과 남북한 현대사를 깊이 있게 연구해 온 대표적인 유럽 지한파 학자인데요. 어떤 면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까.

답: 간단히 말해 한국인들이 과거 '간첩'이란 단어에 무서움을 느끼던 그 때와 지금은 세상이 변했는데 여전히 같은 시각에서 간첩 사건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세상인데, 직접 사람을 보내 현장에서 정보를 캐는 직파 북한 간첩이 이전과 같은 정도의 파괴력을 갖기란 실제로 힘들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프랭크 교수는 하지만 한국 여론의 반응은 당연한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ACT 2: Of course they are overreacting

프랭크 교수는 한국 언론이 물론 과장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어느 나라라도 간첩 사건이 나면 마찬가지로 반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랭크 교수는 언제 어디서나 다른 누군가 어깨 넘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일은 매우 불쾌한 것이며, 특히 분단된 한국에는 언제나 존재해왔던 위험요인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여론의 민감한 반응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프랭크 교수의 말대로 한국에는 언제나 북한 간첩이 존재해온 것이 사실인데요. 하지만 탈북자를 가장한 간첩은 처음 발각된 것 아닌가요?

답: 지난 2004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자 이 모 씨가 북한에 들어갔다 북한 당국에 검거돼 대남공작 교육을 받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자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씨는 지난 1997년 6월 탈북 후 중국에서 붙잡혀 강제송환된 뒤 북한 보위사령부로부터 중국 내 탈북자 동향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다시 중국으로 나옵니다. 이 씨는 이후 2003년 1월 한국으로 입국합니다. 그러나 북한에 있는 동생들을 탈북시키기 위해 중국을 거쳐 지난 다시 2004년 4월 압록강을 넘었다가 다시 북한 당국에 잡히고, 5월 초까지 대남공작 교육을 받고 탈북자 동향을 수집하라는 지시를 받은 뒤 인천항을 통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자수했습니다. 당시에도 한국 언론들은 첫 탈북자 위장 간첩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었는데요. 이 씨는 한국 내에서 간첩 행위를 하기 전에 자수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탈북 간첩은 아닌 셈입니다. 그러나 지금 말씀 드린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은 탈북자들이 쏟아져나온 지난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탈북자들을 통한 중국, 한국 내의 간첩 활동을 시도해왔다는 것입니다.

진행자: 이 씨의 경우를 보면 애초에 간첩으로 직파된 게 아니더라도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가 북한으로 재입국했다가 이후에 간첩 교육을 받고 내려온 사례가 더 있을 것 같은데요.

답: 네, 탈북자 가운데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또 이 씨처럼 북한 내 가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다시 북한에 입국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재입북, 재탈북 사례는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때 탈북자의 해외여행을 규제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인권침해 논란 때문에 흐지부지 됐었습니다. 탈북자 숫자가 30만 명까지 추산되는 시점에서 탈북자들이 북한에 비밀리에 재입북하는 사례가 많다는 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한국 언론들의 해석처럼 탈북 간첩이 우후죽순 한국으로 재입국할 수 있다는 우려도 가능하지만 정 반대의 해석도 가능한 것입니다.

진행자: 정 반대의 해석이라면 한국에서 북한으로 간첩 활동을 위해 입북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답: 맞습니다. 한국 내에 직파 간첩이 얼마나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듯이 북한 내 한국 간첩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릅니다.

프랭크 교수는 탈북자들이 북한을 나왔다 또 간헐적으로 오갈 수 있다는 것은 탈북 간첩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올 수 있는 위협요소도 되지만 거꾸로 보면 한국 측 간첩이 쉽게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 아니냐며, 문제는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져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간첩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 등을 통해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는 반면 북한에 대한 정보는 직접 입북을 통하지 않고는 얻기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프랭크 교수는 한국 간첩 1명이 북한에 들어가 얻는 정보는 북한 간첩 10명, 20명이 한국에 들어와 얻는 정보만큼의 가치가 있고, 훨씬 더 귀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현재 탈북자들이 중국 국경으로 쏟아져 나오고, 또 한국 내 탈북자들의 정착이 늘고 있는 상황이 안보 상으로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군요.

답: 네, 간첩의 목적이 정보수집이며, 어떤 질의 정보를 얼마나 얻어 보내느냐만 따지고 볼 때는 정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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