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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북-중 국경의 두 얼굴 III] 강화된 경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북-중 국경지역이 얼어붙고 있습니다. 경비가 대폭 강화된 가운데, 중국 당국은 도심지 등에서의 탈북자 단속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도시로 가는 기차와 버스 여행객들은 공안 요원들이 수시로 검문을 하는 바람에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현지 취재를 통해 보내드리는 특집방송 `국경의 두 얼굴,' 오늘은 세번째 순서로 북-중 국경지역의 경비 상황과 탈북자 단속 실태를 전해드립니다.

[개울 물 흐르는 소리와 사람들 소리...]

북한의 한 섬과 중국이 개울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압록강 유역의 한 작은 마을. 국경 경비를 서는 북한군 초병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선물도 줄 수 있어 한국인들 뿐 아니라 중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곳입니다.

저희 '미국의 소리' 특별취재팀은 지난 2005년 가을 이 곳을 방문해 북한 병사들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었습니다.

병사 1: "친구 돈 좀 주라! 담배에 넣어 주면 되요."

하전사: 이거 담배도 없구만. 우리 시계하고 기념품 줘야 함다."

지난7월 중순에 다시 찾은 이 지역은 2년 반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개울 앞 둑으로 섬을 휘돌아 길게 세워진 2 미터 높이의 철조망. 그리고 산기슭 전봇대에 걸터 앉아 북한을 마냥 주시하고 있는 감시 카메라들이 취재팀을 먼저 맞았습니다.

인민폐40원의 입장료를 받고 북한군 병사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중국인 리우 씨 부부.

2005년 11월 철조망 공사가 시작된 뒤 관계가 조금씩 서먹서먹해지다가 이듬해 10월 북한 정부가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긴장이 더해졌다고 말합니다.

중국인 부인 리히 씨: (북한 측 병사들을 보며)"어이 친구 빨리 오라우!"

리 씨 부인이70여미터 거리의 북한 측 초소에 서 있는 두 명의 병사들에게 빨리 오라고 소리를 칩니다. 예전 같았으면 재빨리 달려와 돈과 시계 등을 달라고 막무가내로 졸랐을 텐데 병사들은 멀뚱멀뚱 쳐다만 볼 뿐 움직이지 않습니다.

"빨리 오라우…"

서 너번 북한 병사들을 부르던 리 씨 부부는 취재팀에게 인민폐50원을 내고 배를 타고 가서 만나라고 제안합니다. 자기들이 판매하는 시계 등 기념품을 사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입니다.

북한 병사들과의 만남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념품도 배도 탈 수 없다고 말하자 리 씨 부부는 자신할 수 없다며 제안을 접습니다. 이 부부는 사실 북한 병사들을 과거처럼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기를 한 것입니다. 친분이 있는 사람을 통해 질문을 계속 던지자 속내를 조금 털어놓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북-중 국경수비대 간에 긴장이 고조돼 북한 병사를 만나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남편 리 씨는 북-중 양측 간에 조약이 체결돼 있어 내부사정으로 한 쪽이 경비 강화를 부탁하면 다른 쪽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리 씨는 운좋게 북한 초병들의 순찰시간과 맞으면 잠시 거리를 두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며, 하지만 언제 그런 시간이 올지 자신도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일부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초소 근처까지 가서 건너편에 기념품을 던져줍니다. 초병들은 눈치를 살핀 뒤 재빨리 와서 물건을 갖고 갑니다.

리 씨 부부는 관광객이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며,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돈벌이가 조금 괜찮아지지 않겠냐며 피식 웃습니다. 결국 취재팀은 북한 병사들을 만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단동 부둣가 뱃소리. 배경음]

신의주가 훤히 건너다 보이는 단둥의 압록강 휴양지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환경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과거 이 곳은 선주에게 일정한 돈을 주면 배를 빌려 건너편 신의주에 가깝게 다가가 북한주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7월부터 단둥시가 새로운 정책을 펴고 있었습니다.

[선착장 안내인의 말-중국어]

선착장의 한 안내인은 시 정부에서7월부터 모든 배의 운영권을 회수해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동안 운행이 너무 방만하고 무질서해 배와 항구의 소유권을 가진 시 정부가 이를 다시 회수했다는 것입니다.

배의 이동 범위도 좁아져 과거처럼 북쪽 위화도까지 가지 못했습니다. 또 크기에 관계 없이 모든 배들은 신의주 50미터 앞에서 멈춘 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을 불과 한달 여 앞두고 취해진 조치입니다.

단둥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사업가 성한국 씨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10명 이상이 모이지 못하도록 당국이 규제해 조기축구도 못하고 있고, 비자갱신은 대개 한달 이내, 일부는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았다며 5백원 이상의 벌금을 내는 등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성씨는 말합니다. 인근 도시에서 활동하는 인도적 사업가 조민선씨 역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티벳사건과 지진이 일어나면서 중국 정부가 굉장히 민감하게 외국인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취재팀은 변경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이동할 때마다 기차역과 버스정류장에서 검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도문시 배경음]

압록강을 떠나 두만강 변경도시 도문으로 갔습니다. 도로 옆으로 체포된 탈북자들을 수감하는 수용소가 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간 크기의 공안버스가 수용소에서 나와 도문해관(세관)쪽으로 향합니다. 취재팀은 재빨리 버스를 뒤따라갔습니다.

[도문 해관의 배경음]

버스는 행정수속을 밟기 위해 도문해관에서10여분을 정차합니다. 탈북자에 정통한 중국인 안내인 주명수 씨가 해관 분리대에 바짝 붙어 버스 안을 들여야 봅니다.

주명수: "여~많네. 안에 있어요. 저게 오늘 건너 가면..수속해서 다 건너 가잖아요. 너네(탈북자들) 오늘 건너 가면 잘못되겠다. (불쌍한 듯) 참…."

버스 안은 옆 창문과 앞자리 뒤로 모두 커튼이 처져 있어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안 요원이 앞뒤로 이동할 때마다 북한 사람들이 조금씩 보였습니다.

잠시 후 공안버스가 다리를 건너 건너편 남양으로 이동합니다. 버스가 건너편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망원경을 통해 내리는 탈북자들을 비교적 선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주명수: "많이 내리네."

기자: "어떤 옷을 입었나요?"

주명수: "제가끔 옷을 입었어요. 다 탈북자죠. 쯧쯧"

탈북자로 보이는 열댓 명이 넘는 사람들이 버스에서 주춤주춤 내려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중국 당국의 탈북자 강제북송은 이렇게 올림픽에 관계 없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두망강 윗쪽을 따라 중국 쪽 마패와 북한의 삼봉이 건너다 보이는 계산툰으로 가 봤습니다. 이 곳은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0년 후반 수많은 탈북자들이 넘어온 통로였습니다. 하지만 주명수씨를 비롯해 만나는 주민마다 탈북자는 거의 못봤다고 말합니다.

주민: "없어요. 옛날에는 많았죠. 지금은 없습니다."

주민:"넘어오기 쉬운 곳엔 중국에서 다 철조망으로 막았잖아요.북한쪽에서도 군데군데 비밀초소를 많이 세웠어요. 넘어오기 힘들어요."

다행인 것은 중국 정부가 최근 탈북자 신고 포상금을16배나 올렸다는 일부의 주장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연길 시내 거리 소리]

연길 시로 들어왔습니다. 취재팀은 이 곳에서 최근 두만강을 건너온 탈북자들을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약속 이틀 전 탈북자 여러 명이 세 지역에서 공안에 체포됐고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중에는 베이징 주재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보호를 신청하고 기다리던 탈북자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2년 전 중국에서 체포돼 강제북송된 뒤 최근 다시 탈출한 탈북자 김이나 씨. 그 역시 약속시간 30분 전 돌연 나올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김 씨는 이 후 전화로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 올림픽 그거(성화 봉송) 하느라고 시내에 경찰이 엄청 많았거든요. 한 4시 정도까지 사람들도 못 지나가게 하고 그랬거든요. "

[연길 시내 거리 소음]

7월 16일.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시끌벅적하게 연길 시내를 지나갔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올림픽기와 오성기를 들고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꿈, 하나의 세계"라는 베이징 올림픽 표어 뒤에서 중국 당국은 생존과 자유를 찾아 나선 탈북자들을 체포해 계속 강제북송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성화가 지나는 날. 연길에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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